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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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8월 15일 오전 10시10분쯤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는 제29주년 광복절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연단에 올라섰다. 각계 인사 1000여명은 객석에 자리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경축사를 낭독하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권총을 발사했다. 귀빈석에 앉아 있던 육영수 여사가 풀썩 단상 의자에 쓰러졌다. 머리에 총탄을 맞은 육 여사는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진 후 뇌수술을 받았으나 향년 48세로 사망했다. 총구를 겨눈 채 연단을 향해 계속 달려가던 23세 청년을 객석에 있던 공무원이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오전 10시30분쯤 경호원은 현장에서 넘어진 청년을 체포했다. ━공산주의 심취한 재일교포…VIP인 척 행사장 통과━박 대통령에게 총구를 겨누다 실패해 육 여사를 숨지게 한 23세 청년의 이름은 문세광이었다. 신장 180㎝, 몸무게 80㎏의 거구에 지독한 근시이며 권총 사격 경험이 전무했던 그는 일본 오사카에서 나고 자란 재일교포였다. 그는 1972
"야, 방이 너무 좁아. 방 좀 바꿔줘!" 1986년 8월14일 밤 10시30분. 서울 강남의 유명 룸살롱 '서진회관'은 그날따라 북적였다. 광복절인 다음 날 휴일을 맞아 모든 방은 손님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중 17호실에서 조직원 고용수의 석방을 축하하려 모인 '맘보파' 일행은 종업원을 불러 "방이 너무 좁다"며 다른 방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빈방이 없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종업원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이후 옆방에 있던 '서울 목포파' 일행과도 시비가 붙으면서 패싸움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총 4명이 살해되며 상황은 집단 살인 사건으로 번졌다. ━아수라장이 된 복도…전국구 조직 vs 신출내기 조폭━당시 서진회관은 지금의 9호선 신논현역과 언주역 중간에 위치한 대형 룸살롱이었다. 17호실에 머무른 맘보파 일행은 당시 교통사고를 낸 뒤 복역하던 중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조직원 고용수의 석방을 축하하려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맘보파는 '조폭계의 전설'
1955년 8월 13일. 서울 적십자병원에 한 20대 남성이 입원했다. 2시간여 수술을 마친 그는 남자 병실이 아닌 여자 병실로 옮겨졌다. 국내에서 처음 성전환 수술을 받은 조기철 씨였다. 이로써 그는 한국에서 '성'(性)을 바꾼 첫 인물이 됐다. 수술을 무사히 마친 조씨는 보름간의 병원 생활을 끝내고 곧장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본점) 2층에 있는 미용실로 향했다. 난생 처음 펌 시술을 받은 조씨는 당시 유행이었던 웨이브 단발머리로 변신했고,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채 활짝 웃으며 카메라 앞에 섰다. 당시 언론은 "수술 후 묘령의 처녀가 된 조양은 그동안 입원실에서 신의 섭리를 고요히 생각해 오다가 여성이 된 후 처음으로 거리에 나왔겠다"며 자신의 선택으로 성(性)을 바꾼 조씨의 모습을 전했다. 여성의 자태를 한 그의 모습에 대해서는 "파마를 하고 분을 바르고 루주도 칠하니 비로소 틀림없는 여성이 되었다", "처녀다운 한줄기 수줍음을 감추고 있었다", "파마로 더욱 이뻐 보이는
"교도소에 갔다 왔더니 누구도 받아주지 않았다. 친척과 친구도 나를 전과자라고 냉대했다. 끗발 나게 살고 싶었는데…" 1975년 8월13일 새벽 0시, 전남 광산군(현 광주 광산구)의 한 외딴집에 20대 괴한이 숨어들었다. 괴한은 자고 있던 노부를 습격해 낫으로 살해했다. 노부의 부인은 절굿공이로 때려 중상을 입혔으며, 집에서 손전등 하나를 훔쳐 도주했다. 괴한은 이후 두달여 동안 16명을 더 살해하고 경찰에 체포됐다. 유영철 이전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남긴 연쇄 살인범 김대두의 이야기다. ━빈농의 자식, 연쇄 살인범이 되다━ 김대두는 논 4마지기와 밭 1000평을 가진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부모는 그를 대도시의 이름난 중학교에 진학시키려고 했을 만큼 교육열이 높았지만, 김대두는 학업에 뜻이 없었다. 그는 큰돈을 벌고 싶다며 일찍이 생업 전선에 나섰다. 하지만 농촌 출신 저학력자에 기술도 없고, 키도 160㎝로 왜소한 그에게 사회는 녹록지 않았다. 열등감에 빠진 김대두는 범죄의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하고 바다거북이하고 둘이서 헤엄치기 시합하믄 누가 이길 것 같노?" "조오련!" 2001년 개봉한 영화 '친구'에 언급됐듯, 전 수영선수인 고(故) 조오련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있어서 바다거북이 만큼 빠른 존재였다. 수영복이 없어서 사각팬티를 입고 대회에 나갔던 소년은, 압도적인 수영 실력으로 어느 순간 주목받기 시작해 50여개의 한국 신기록을 경신하는 등 '아시아의 물개'로 우뚝 섰다. 무엇보다 그는 은퇴 후에도 대한해협 횡단, 도버해협 횡단, 울릉도~독도 횡단 등 나이를 무색게 하는 남다른 도전 정신으로 귀감이 됐다. 그러나 대한해협 횡단 30주년을 기념해 재도전을 준비하던 2009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숨지고 말았다. 향년 57세. ━수영선수 꿈 위해 자퇴 후 상경…아시안게임 접수━ 195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조오련은 어린 시절 고향 실개천과 바다에서 자연스럽게 수영을 배웠다. 중학교 1학년 때 수영선수라는 꿈을 키우기 시작한 그는 1968년
"내가 한 일이 아닙니다." 2000년 8월 10일 새벽 2시쯤 전북 익산시 약촌오거리 부근에서 오토바이를 몰던 다방 커피 배달원은 끔찍한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참고인 조사에 불려간 배달원은 자신이 본 것을 말했지만 어째서인지 경찰은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이미 그는 살인범이 돼버린 상태였다. ━경찰서 아닌 모텔 데려간 경찰…3일간 잠 안 재우고 고문━살인 사건 최초 목격자인 다방 배달원 최모씨(당시 15세)는 경찰 참고인 조사에서 "현장에서 남자 2명이 뛰어가는 모습을 봤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은 그를 범인으로 몰아갔다. 급기야 경찰은 최씨를 인근 모텔로 데려간 뒤 전화번호부를 던져주며 "진범을 찾아내라"고 강요한다. 이후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으면 폭행을 가했다. 이후 다시 경찰서로 데려간 경찰은 3일 동안 잠을 재우지 않은 채 또 폭행을 가했다. 강압 수사를 견디지 못한 최씨는 결국 자신이 범행했다며 허위 진술을 했고 재판에 넘겨지게 됐다. ━결백
8월 9일은 대한민국 마라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날로 평가받는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고(故) 손기정 선수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선 황영조 선수가 각각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날이기 때문이다. 손기정의 경우 당시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었던 탓에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서명이 필요할 때 자신의 한국어 이름을 적었으며,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국적을 한국이라고 소개했다. 나라를 잃은 아픔을 이겨내고 세계를 제패한 손기정, 56년 뒤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공식적으로 한국의 첫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따낸 황영조. 두 사람의 '영광의 날'이 모두 8월9일이었던 셈이다. ━한국인으로서 첫 금메달…올림픽 공식 기록엔 日━ 손기정은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에서 42.195㎞를 2시간 29분 19초에 주파해 금메달을 따냈다. 이는 당시 올림픽 신기록이기도 했다. 이때 손기정과 함께 출전한 남승룡도 동메달을 목에 걸어, 한국인 선수들이
2019년 8월 8일 오전 3시 서울 구로구 A 모텔. 한 남성 직원이 손님의 '숙박비가 얼마냐'는 반말을 듣고 화가 나 말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다. 화를 주체하지 못한 남성은 카운터에 있던 무게 1kg짜리 쇠망치를 챙겨 들었다. 이어 피해자의 객실 문을 열고 들어가 망치로 피해자를 살해했다. 직원은 살해 현장에서 시신을 훼손해 봉투에 담았다. 살해를 저지른 뒤 남성은 다른 직원과의 근무 교대를 하고 사건 당일 모텔 내부를 비추는 CCTV 기록을 인멸하기 시작했다. 그는 나흘 동안 본인의 숙소에 오가며 시신을 관리하기까지 했다. 사건 나흘 뒤 그는 봉투에 나눠 담은 시신을 한강에 던졌다. 모텔 직원의 이름은 장대호. 한강 마곡 철교 남단 인근에서 남성의 몸통 시신이 떠오르면서 장대호가 잔혹하게 저지른 '한강 토막살인'의 전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장대호, 고개 빳빳이 들고 피해자에 "다음 생애에 또 그러면 너 또 죽는다"━ 장대호가 피해자를 한강에 내던진 지 반나절이 지나지 않은
1998년 8월7일 금요일,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와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서 거의 동시에 폭발이 발생했다. 이 참사로 224명이 사망했고 45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당시 FBI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수사가 벌어졌다. 미국 정부는 알카에다의 배후로 지목된 수단과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 제재를 시작했다. 다만 알카에다 수장인 오사마 빈 라덴을 막기 위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후에도 알카에다는 테러를 멈추지 않았고 끝내 2001년 9.11 테러까지 일으켰다. ━한날한시 케냐·탄자니아서 울려 퍼진 '펑' 소리…사상자 4700여명━케냐 나이로비 중심부에 위치한 미 대사관의 맞은편에는 7층 높이의 사무실 빌딩이 있었다. 그 옆에는 21층 높이의 은행 건물이 있었다. 당일 오전 9시55분쯤 케냐 주재 프루던스 부시넬 대사는 대사관 앞 은행 건물 꼭대기 층에서 회의를 앞두고 있었다. 회의 전 기자회견을 진행한 뒤 취재진이 돌아간 지 몇 분
1945년 8월 6일, 일본과 태평양 전쟁(제2차 세계대전)을 벌이고 있던 미국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여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핵무기를 전쟁에 투입한 사례다. 히로시마에는 하늘을 뒤덮을 정도의 거대한 버섯구름이 만들어졌다. 폭발 시 발생하는 고열뿐 아니라 이어지는 방사선, 충격파 등에 의해 히로시마는 지옥으로 변했다. 정확한 피해 규모는 집계되지 않았으나 한국원폭피해자협회에 따르면 당시 한국인 피해자만 약 7만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원자폭탄 사용은 히로시마에 그치지 않았다. 미국은 3일 후인 1945년 8월 9일에 나가사키에도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심각한 타격을 받은 일본은 다음날(8월10일) 미국에 무조건 항복 의사를 밝혔다. ━세대를 넘어 반복된 후유증…韓 피해자들의 절규━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일본이 미국에 무조건 항복한 뒤 한국인 원폭 피해자 약 2만명이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일본에 의해 강제 징용됐던 사람이다. 이들은 고향에 정
8년 전인 2015년 8월 5일. 이날 강남대 디자인과 장모 전 교수가 검찰에 구속됐다. 제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등 이유로 수년간 가혹행위를 한 혐의(폭력행위등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였다. 이 사건은 해당 분야에서 존경받고 있던 장 전 교수가 자신의 학생이었던 직원을 감금한 뒤 폭행하고 인분을 먹이는 등 엽기적인 가학행위를 저질러 큰 사회적 충격을 줬다. ━처음에는 언어폭력…갈수록 기괴해진 가혹행위━ 디자인 분야에서 권위자로 알려졌던 장 전 교수는 2013년부터 약 2년간 자신이 대표를 맡은 디자인 관련 학회 사무국 직원 A씨(29)에게 폭행을 일삼았다. A씨는 장 전 교수 소속 대학의 제자 출신으로, 교수 밑에서 일하다 보면 교수라는 자신의 꿈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거란 희망으로 사무국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출근 후 장 전 교수의 악마 같은 민낯이 드러나며 지옥 같은 나날이 시작됐다. 장 전 교수는 일명 '쓰싸'(슬리퍼 따귀)라는 체벌을 만들어 자신의 제자에게 A
"귓속에 도청 장치가 들어있습니다 여러분! 귓속에 도청 장치가 들어있습니다! 저는 가리봉동에 사는 소창영이라고 합니다!" 1988년 8월 4일 오후 9시, MBC 뉴스데스크 방송 도중 20대 남성 소창영이 난입해 자신의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하철 요금 인상 소식을 전하던 강성구 앵커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혹감을 드러냈고, 스태프들은 급하게 이 남성을 제압했다. 이 사건은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졌고, 당시 뉴스를 보던 시청자들은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황당함을 표했다. ━도청장치 의심케 한 '감시공포증'━ 1988년 당시 24세였던 소창영은 사건 1년 전 직장 동료들과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다가 축구공이 귀에 맞아 고막이 파열됐다. 그는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이명 증상이 이어졌고, 이로 인해 "의사가 내 귀에 도청장치를 심어 놓았다"는 피해망상 중 하나인 '감시공포증'을 겪게 됐다. 감시공포증은 불안장애의 한 형태로,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고 해칠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