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의 웰빙에세이
일상 속 건강과 행복을 위한 다양한 정보와 실천법을 쉽고 친근하게 전달합니다. 몸과 마음의 균형, 웰빙 트렌드, 자기관리 팁 등 삶의 질을 높이는 유익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일상 속 건강과 행복을 위한 다양한 정보와 실천법을 쉽고 친근하게 전달합니다. 몸과 마음의 균형, 웰빙 트렌드, 자기관리 팁 등 삶의 질을 높이는 유익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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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의 원조는 '네빌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빌링(nevilling)은 네빌 고다드(1905~1972)의 이름에서 따온 말이지요. 영성가인 네빌이 생전에 가르친 대로 따라 하는 게 네빌링인 겁니다. 네빌링을 상징하는 한 마디는 '상상이 현실을 창조한다'입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시크릿과 별로 다르지 않지요. 상상하는 게 곧 간절히 원하는 것이고, 현실을 창조하는 게 곧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네빌링은 (1)상상을 통해 잠재의식을 바꾸고 (2)잠재의식을 바꿔서 현실을 바꾸는 두 단계로 진행됩니다. 관건은 역시 잠재의식이지요. 잠재의식만 바꾸면 이어서 끌어당김의 법칙이 작동합니다. 우주의 기운이 알아서 거들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잠재의식을 바꾸나? 상상을 하되 그것이 내 눈 앞에서 생생한 현실로 경험될 정도여야 합니다. 상상을 경험하라! 상상이 실제 상황 같으면 잠재의식은 그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입니다. 그와 함께 내 마음은 소망이 이루어졌다는 느낌에 기분
늘 행복할 수 있는 '있음' 스위치를 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한다. 둘, 앞으로 가질 것에 만족하고 감사한다.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면 당연히 '있음' 스위치가 켜지지요. 나는 행복한 '비두하'가 됩니다. 이미 가졌음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비잉)으로 즐겁게 일해서(두잉) 달콤한 과실들을 거두게(해빙) 됩니다. 반대로 지금 갖지 못한 것에 매달리면 '없음' 스위치가 켜집니다. 나는 채우지 못한 것(해빙)을 어떻게든 채우느라(두잉) 고단하고 고달픈(비잉) '하두비'가 됩니다. 지금 가진 것에 자족하는 소박한 삶! 심플 라이플! 미니멀리즘! 요즘처럼 욕심 사나운 세상에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채울 수 없는 욕망을 채우려고 끝없이 내달리는 삶보다는 분명 쉬운 일입니다. 다들 쉽게 사시길. 첫 번째 방법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그렇게 살기로 결심하고 실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방법은 뭔가 이상하
여기 두 사람이 있습니다. 비두하와 하두비. 누구냐구요? 비두하는 지금 있는 것에 만족해서 늘 ‘있음’ 스위치를 켜고 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두비는 지금 없는 것에 매달려서 늘 ‘없음’ 스위치를 켜고 사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누구이고 싶습니까? 우리는 대부분 하두비입니다. 늘 ‘없음’ 스위치를 켜고 살지요. 없는 걸 갖겠노라 애쓰느라 고달프게 살지요. 하두비의 삶은 ‘해빙(having) - 두잉(doing) - 비잉(being)’의 순으로 전개됩니다. 그는 삶의 세 측면인 존재, 행위, 소유 가운데 소유를 가장 우선합니다. 소유가 행복의 전제조건이지요. 그래서 해빙을 맨 앞에 둡니다. 하지만 어쩌나요. 그게 바로 함정인 것을. 그는 결코 해빙에 이를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가 맨 앞에 둔 해빙이 사실은 ‘논 해빙(non-having)’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무리 많이 가져도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가진 것에 상관없이 못 가진 것만 따집니다.
여행자와 목동이 나누는 대화 한 토막. 여행자 : 오늘 날씨는 어떨 것 같습니까? 목동 : 내가 좋아하는 날씨가 될 것입니다. 여행자 : 그걸 어떻게 아시죠? 목동 :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을 항상 얻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얻은 것을 항상 좋아하자고 결심했지요. 그러니 오늘 날씨가 어떻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날씨가 되는 거죠. 보통 목동이 아닌 가 봅니다. 도 닦는 목동인가 봅니다. 깨달은 목동인가 봅니다. 이 목동에게 날씨는 물어봤자 입니다. 안 좋은 날이 없을 테니까요. 다른 것도 물어봤자 입니다. 안 좋은 게 없을 테니까요. 자신이 얻은 것을 항상 좋아하기로 결심한 사람에게 안 좋은 것을 안길 방법은 없습니다. 전혀! 내가 좋아하는 것만 골라서 얻을 순 없는 게 인생이지요. 그런데도 인생은 즐거울 수 있는 거군요. 내가 얻은 것을 항상 좋아하기로 결심만 하면. 그 결심 하나가 인생을 바꿉니다. 그 결심 하나가 모든 불행한 것들을 날려버립니다. 내가
앞으로는 바다입니다. 에메랄드 빛 바다입니다. 마당을 질러 돌계단을 내려가면 반달 모양의 은밀한 해안이 열립니다. 살랑대는 그 바다에 풍덩 뛰어들고 싶군요. 지는 해를 바라보며 우두커니 황금빛 노을에 잠기고 싶군요. 뒤로는 언덕입니다. 푸른 언덕입니다. 그 언덕 너머로 오솔길이 구불구불 이어집니다. 언제든 그 길로 마음껏 거닐 수 있습니다. 집은 원통 모양에 원뿔 지붕입니다. 30평 남짓인데 천정이 높은 복층 구조지요. 둥근 곡면을 따라 긴 띠처럼 창이 나 있습니다. 단, 오른쪽과 왼쪽 벽면은 통째로 책장입니다. 큼직한 스피커도 양 편에 놓여 있군요. 원형의 넓은 거실은 훤히 비어 시원합니다. 바다 쪽으로 널찍한 책상이 있고, 적당한 자리에 편한 의자와 테이블도 있군요. 여기는 나의 아지트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드는 나만의 안식처지요. 나만 알고 나만 들락이는 비밀 공간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당장 눈을 감으면 조명이 탁 켜지듯 머릿속에서 환하게 그 집이 나타납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명상은 숨쉬는 명상이고, 가장 쉬운 행복은 숨쉬는 행복입니다. 과연 그런지 숨쉬는 명상부터 해보시죠. 시작합니다. 깊이 들이쉬면서 들이쉼을 음미합니다. 길게 내쉬면서 내쉼을 음미합니다. 끝! 너무 싱겁다구요? 아닙니다. 싱겁지 않습니다. 싱거웠다면 음미하지 않은 겁니다. 음미하면 절대 싱겁지 않습니다. 들이쉼은 얼마나 달콤한가요? 내쉼은 얼마나 편안한가요? 이렇게 달콤하고 편안한데 싱거울 리 없습니다. 다시 한 번 진짜로 해보시죠. 들이쉬고 내쉬고, 달콤하고 편안하고. 아쉽다구요? 그럼 한 번 더! 들이쉬고 내쉬고, 달콤하고 편안하고. 좋다구요? 그럼 한 번 더! 들이쉬고 내쉬고, 달콤하고 편안하고. 중요한 건 음미하는 겁니다. 음미하는 게 명상하는 겁니다. 음미가 곧 명상입니다. 음미 = 명상! 숨을 음미하는 순간 나는 숨과 함께 합니다. 오로지 숨입니다. 다른 것은 끼어들지 못합니다. 음미하면서 딴생각 할 수 있나요? 없습니다. 음미하면 잡념이 사라집니다.
밥 먹을 때 밥만 먹나요? 반찬도 먹고 물도 마신다구요? 그렇군요. 그런 거 다 쳐서 밥 먹을 때 밥만 먹나요? 먹기 명상을 할 때는 보통 그렇게 합니다. 찬찬히 밥 먹는 과정을 살피면서 밥만 먹습니다. 밥맛을 음미하면서 밥만 먹습니다. 실제로 해보니 매우 어렵더군요. 거의 자동이 된 일을 갑자기 수동으로 하려니까 헷갈려서 밥맛이 나지 않더군요. 몇 번 해보다가 도로 물렸습니다. 그 대신 다른 수를 쓰기로 했습니다. 밥을 아주 느긋하게 먹는 겁니다. 이것도 얼마나 느긋해야 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워서 한 가지 방편을 더 썼습니다.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먹든 제일 늦게 숟가락을 내려놓는 겁니다. 일일이 밥 먹는 과정을 살피지 않아도 됩니다. 밥맛을 음미하느라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느긋하게만 먹으면 됩니다. 지금 이 밥상에서 맨 마지막이 될 때까지 마냥 느긋하게! 이것이 결국 먹기 명상과 비슷하게 될 거라고 본 거지요. 이 방법은 나름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느긋하게 먹
왕년에 기자할 때는 넘치도록 명함을 주고받았습니다. 지금은 그럴 일이 없습니다. 그런 일이 있어도 난감합니다. 나에겐 명함이 없습니다. 어떤 분이 명함을 탁 내밉니다. 어떤 것은 눈에 쏙 들지요. ‘흠, 이거 책갈피로 쓰면 좋겠군!’ 대개는 그저 그렇습니다. ‘이거 어디에 쓰나?’ 명함을 받았으니 나도 드려야 하는데 드릴 게 없습니다. 조금 미안하지요. 나는 엉거주춤 이름을 중얼댑니다. 전화번호라도 드릴까 살핍니다. 그리곤 속으로 생각하지요. ‘나도 명함을 하나 팔까?’ 그렇다면 명함엔 뭐라고 쓰나요? 이름과 전화번호만 달랑 쓰나요? 이 에세이 칼럼엔 ‘작은경제연구소장’이라는 직함을 써왔는데 이를 옮기고 싶진 않군요. ‘작은경제’를 지향하는 건 맞지만 그걸 연구하면서 살지는 않으니까요. 책을 서너 권 냈으니 ‘작가’라고 쓰면 어떨까 싶은데 역시 내키지 않습니다. 나는 평소에 ‘작가’라고 생각하며 살지 않기 때문이지요. 사실은 누구나 자기 삶의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런 측면에선 나만
테스형,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카리스마 넘치는 일흔세 살의 노장 가수 내훈아. 그가 테스 형에게 묻는군요. 소크라테스 형에게 묻는군요.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사랑은 또 왜 이래? 세월은 또 왜 저래?” 테스 형은 뭐라고 답할까요? 그야 “너 자신부터 알라”고 하겠지요. 테스 형이 답합니다. “세상을 묻지 말고, 사랑을 묻지 말고, 세월을 묻지 말고, 너 자신부터 물어라. 세상을 묻고, 사랑을 묻고, 세월을 묻는 너는 누구냐? 그런 너부터 물어서 너부터 알아라. 그러면 세상을 알고, 사랑을 알고, 세월을 알리라. 너는 더 이상 세상을 묻지 않고, 사랑을 묻지 않고, 세월을 묻지 않으리라. 너를 아는 그 순간에 그 모든 질문이 사라지리라. 수증기처럼 증발하리라. 너는 너를 옭아맨 수백수천 가지 질문에서 해방되어 깃털같이 가벼워지리라. 바람처럼 자유로워지리라. 그러니 부디 너 자신부터 알라. 너 스스로 답이 되라.” 테스 형은 이렇게 간절하게 “너 자신을 알라”고 당
그대 행복한가요? 행복을 찾느라 힘겨운가요? 인생은 ‘숨은 행복 찾기’ 같은 거지요. 그 행복을 찾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행복이란 것을 찾고 또 찾는 겁니다. 또 하나는 행복이 아닌 것을 하나씩 둘씩 걷어내는 겁니다. 나는 두 번째 방법을 쓰기로 했습니다. 행복이 아닌 것을 하나씩 둘씩 걷어내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았습니다. 행복을 찾는 데는 오직 이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을. 더하기 말고 빼기가 유일한 정답이라는 것을. 나도 처음에는 첫 번째 방법을 썼습니다. 행복이란 것을 찾고 또 찾았습니다. 때로 행복 같은 것을 찾아서 손에 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짝퉁이었습니다. 나는 잠깐 속았습니다. 속는 줄도 모르고 속았습니다. 그렇게 알고 속고 모르고 속으면서 살았습니다. 아! 나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행복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가요? 이렇게 막막할 때 두 번째 방법을 쓸 수 있습니다. 행복이 아닌 것을 걷어내는 거지요. 이 방법은 쉽습니다. 당장
노자의 道에서 톡 쏘는 하나를 꼽았으니 장자의 道에서도 그런 하나를 꼽아보지요. 吾喪我 오상아 내가 나를 잃어버렸네. '장자' 2편 '재물론'의 첫 번째 이야기에 ‘오상아’가 나옵니다. 어느 날 스승이 넋이 나간 듯해서 제자가 무슨 일이시냐고 묻지요. 스승이 정신을 가다듬고 답합니다. “지금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 그런데 네가 그 뜻을 알 수 있을까? 너는 사람들이 부는 퉁소 소리를 들어보았겠지만 땅이 부는 퉁소 소리는 들어 보지 못했겠지. 설령 땅이 부는 퉁소 소리는 들어 보았을지 모르지만 하늘이 부는 퉁소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 있군요. 오상아! 나는 나를 잃어버렸네! 그런데 난데없이 웬 퉁소 타령? 스승은 세 가지 퉁소 소리를 얘기합니다. 그중 사람이 부는 퉁소 소리야 나도 들어보았지요. 명인 이생강의 애끊는 퉁소 소리는 가히 사람의 것이 아니더이다. 그러면 땅이 부는 퉁소 소리는 뭔가요? 그것은 새 소리, 물소리, 빗소리, 메아리 소리 같은 것입니다. 대지의
노자의 도덕경을 찬찬히 읽었습니다. 과연 공자보다 노자입니다. 나에게는 언제나 노자의 울림이 훨씬 큽니다. 도덕경 1~81장 중에서 내 가슴에 꽂힌 道의 진수를 딱 한 구절 꼽겠습니다. 48장의 첫 줄입니다. 爲學日益 爲道日損 위학일익 위도일손 학문의 길은 하루하루 더해가는 것 도의 길은 하루하루 빼가는 것 학문과 지식만 더하나요? 우리는 뭐든 더하는 데 익숙하지요. 돈은 벌고, 재산은 불리고, 스펙은 늘리고, 직급은 올리고, 목표는 높이고, 규모는 키우고, 집은 넓히고……. 그래서 충분히 더하셨나요? 아직 멀었다구요? 아직도 배가 고프다구요? 조금만 더하면 될 것 같다구요? 더해도 더해도 더해지지가 않는다구요? 더하는 길은 오르막입니다. 그래서 힘듭니다. 그래서 고단합니다. 하지만 늘 가던 길이라 익숙합니다. 다들 몰려가는 길이라 안전해 보입니다. 반대로 빼는 길은 내리막입니다. 그래서 쉽습니다. 그래서 편합니다. 하지만 늘 가던 길이 아니어서 께름칙합니다. 인적이 드물어 위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