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9월 25일. 전남 보성군을 찾은 20대 여성 2명이 배에 올랐다가 실종됐다. 이들은 26일과 28일 각각 보성 앞바다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시신에서 타살 흔적을 발견한 경찰은 수사 끝에 어부 오종근(당시 69세)을 용의자로 특정해 체포했다.
조사 과정에서 오종근이 앞서 같은 해 8월 31일 실종됐다 숨진 채 발견된 남녀 대학생 2명도 살해한 사실이 드러났다. 4명을 살해한 혐의로 1심부터 대법원까지 사형을 선고받은 그는 국내 최고령 사형수로 17년간 복역하다 생을 마감했다.

2007년 8월 31일 대학교 신입생이던 김모군과 추모양은 보성으로 여행을 왔다. 두 사람을 발견한 오종근은 "어장을 구경시켜주겠다"며 자신의 배에 태운 뒤 바다 한가운데로 향했다.
추양에게 성적 욕망을 느낀 오종근은 성추행을 저지르려 했다. 그는 범행을 방해할 수 있는 김군이 뒤돌아 앉아 있던 사이 바다로 밀어 빠뜨렸고, 물에 빠진 김군이 다시 배에 올라오려 하자 갈고리가 달린 어업용 도구인 '삿갓대'로 머리와 어깨 등을 내리찍어 살해했다.
당시 추양은 119에 4차례나 신고했지만 배의 엔진 소음 때문에 구조 요청이 전달되지 못했다. 오종근은 공포에 질린 추양에게 다가가 성추행했고 격렬히 저항하는 추양도 바다에 빠뜨린 뒤 배에 올라오지 못하게 삿갓대로 밀었다. 그는 태연하게 다음 날 새벽 어구 정리까지 마친 뒤 집으로 돌아왔다.
피해자 가족들은 경찰에 실종 신고했다. 폐쇄회로(CC)TV에는 두 사람이 선착장으로 향하는 마지막 모습이 담겨 있었다. 바닷가로 떠밀려온 이들의 시신을 확인한 경찰은 타살 증거를 찾지 못해 동반자살로 수사를 종결했다.
그런데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실종 사건이 발생했다. 오종근은 9월 25일 추석 연휴를 맞아 보성을 찾은 회사원 조모씨(당시 24세)와 간호사 안모씨(당시 23세)를 같은 방식으로 유인해 자신의 배에 태웠다.

배에 오른 두 사람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도움을 요청하려 했다. 한 피해자는 배에 오르기 전 휴대전화를 빌려줬던 여성의 통화 상대였던 남편에게 '아까 전화기 빌려드린 사람인데 배 타다가 갇힌 것 같다. 경찰 보트 좀 불러달라'며 경찰 신고를 요청했다. 문자를 받은 남성은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그사이 오종근은 조씨와 안씨를 성추행하다가 저항이 심해지자 모두 바다에 빠뜨려 숨지게 했다. 한 명을 가둔 상태에서 다른 한 명을 살해한 뒤 나머지 한 명도 바다에 빠뜨리고 삿갓대로 내리쳐 숨지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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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피해자 한 명이 바닷가로 떠밀려 왔고, 다른 한 명은 수색 과정에서 발견됐다. 시신에서는 멍과 출혈, 찍힌 상처, 목 졸림 자국 등이 남아 있었다.
경찰은 타살에 무게를 두고 수사에 나섰다. 오종근의 배 내부에서는 피해자들의 신용카드와 볼펜, 머리끈, 머리카락 등이 발견됐다. 오종근을 유력한 용의자로 판단한 경찰은 자택을 급습해 그를 긴급 체포했다.

경찰 조사에서 오종근은 두 여성을 살해한 혐의에 대해 "실족사한 것"이라며 "배에 태워 달라고 해서 태웠다. 바다에 빠진 사람 신고 안 한 죄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신에서 발견된 타살 증거에 대해 추궁하자 혐의를 인정했다.
남녀 대학생 살해 혐의에 대해서는 "배에 태우지도 않았다"며 부인했다. 별다른 타살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숨진 추양의 아버지는 "딸은 항상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다녔다"고 수사기관에 알렸다. 하지만 망망대해에서 카메라 찾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한 어선 그물에 추양의 카메라가 걸려 올라온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메모리 카드를 복원한 결과 배에서 그물질하는 오종근의 뒷모습 사진이 발견됐다. 대학생들을 배에 태운 적이 없다는 주장을 뒤집는 결정적 증거였다.
오종근은 범행 동기에 대해 "젊은 여성의 유방을 만져보고 싶었는데 거부해서"라고 진술했다. 결국 그는 4명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오종근은 키 165㎝에 왜소한 체격의 노인이었으나 오랜 기간 어부 생활로 다져진 완력과 수영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바다 환경과 갑판 상황에 익숙했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이 방심한 상태에서 한 명씩 분리해 범행했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오종근은 법정에서 "배를 공짜로 얻어타려 한 피해자들 잘못", "걔네들이 운이 없었다"며 잘못을 반성하지 않았다. 자신이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취지로 주장하며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오종근의 두 아들과 다섯 딸은 부친의 끔찍한 범행에 충격을 받았다. 장남은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사건 이듬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내는 도망치듯 고향을 떠났고, 보성에 머물던 딸은 취재진이 찾아가자 "그런 짓을 한 사람과 난 상관이 없다. 모르는 사람"이라고 외면했다.
2008년 1심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오종근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후 2심과 대법원을 거쳐 사형이 확정됐다. 우리나라는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1997년 이후 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오종근도 형이 집행되지 않은 채 광주교도소에서 복역하다 86세이던 2024년 7월 지병으로 사망했다. 가족들은 단 한 번도 수감 중인 그를 만나러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