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피했다."
지난 3월 23일 두산 베어스-KT 위즈의 시범경기가 열린 수원 KT위즈파크에서였다. 이날 두산 선발로 나와 4이닝 무실점한 곽빈(27)에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다녀온 소감을 묻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곽빈은 3월 초 열린 WBC에서 2경기에 구원 등판해 3⅔이닝 동안 2피안타(1홈런) 1실점, 평균자책점 2.45를 기록했다. 수치상으로는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내용은 아쉬웠다. 1라운드 대만전에서 솔로 홈런을 맞았고, 특히 도미니카공화국과 8강전에서는 3연속 볼넷에 2연속 밀어내기 실점을 했다.
그는 "너무 도망간 모습이 창피했고 짜증이 났다. 그냥 맞는 게 오히려 좋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려 하고 있다"며 "이제 그냥 계속 스트라이크를 던진다는 각오로 하겠다. 안타 10개를 맞든 20개를 맞든 계속 승부해 보겠다"고 다짐했다.

그게 '위대한 시즌'의 시작이었다. 곽빈은 올해 그야말로 두산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에이스로 거듭났다.
시즌 성적은 11승 7패, 161이닝 45실점(40자책) 39볼넷 197탈삼진 평균자책점 2.24. 공식 타이틀인 평균자책점과 탈삼진 2관왕을 사실상 확정했을 뿐 아니라 WHIP(이닝당 볼넷+안타 허용·1.04)와 9이닝당 탈삼진(11.09개)에서도 1위에 올랐다.
27경기 선발 등판에서 퀄리티 스타트(QS·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는 20회로 10개 구단 투수들 중 최다이고, 4자책점 이상은 불과 2번, 5이닝을 채우지 못한 것도 단 2번뿐이었다. 경기당 투구수 역시 98.7개로 가장 많다는 점도 그의 꾸준함과 내구성을 보여준다.
KBO리그에서뿐 아니라 국제 무대에서도 한결 성숙한 기량을 뽐냈다. 지난 달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였던 대만과 조별리그 6이닝 무피안타 무실점, 일본과 결승전 6⅓이닝 4피안타 1실점으로 대표팀의 5회 연속 금메달을 이끌었다.

아시안게임 후 복귀전이자 정규시즌 마지막 출장이었던 지난 6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곽빈은 11개의 탈삼진을 추가해 역대 베어스 우완 투수 신기록(종전 2019년 린드블럼 189개)을 수립했다. 대표팀 차출로 4경기가량 선발 등판을 거르지 않았다면 구단 최다인 미란다(2021년 225개)의 기록도 넘어설 만한 페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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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개인 타이틀은 2024년 15승으로 원태인(26·삼성 라이온즈)과 공동 다승왕에 오른 것이 유일했다. 올해는 승운이 다소 따르지 않아 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 등 '트리플 크라운'을 놓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그 외 거의 모든 지표에서 '커리어 하이'를 달성하며 2018년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만들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곽빈의 2026시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다음 주 열리는 두산의 포스트시즌 첫 경기에 선발 등판할 예정이다.
데뷔 후 곽빈은 와일드카드 결정전 3경기 1패(평균자책점 9.64), 준플레이오프 1경기 1패(6.75), 한국시리즈 2경기 1패(4.76) 등 포스트시즌 승리가 하나도 없다. 그에게 이번 가을야구는 진정한 에이스임을 확인시키는 마지막 관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