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과거 한국이 가난을 벗고 경제발전의 첫걸음을 내딛던 시절, 경부고속도로는 생산과 소비, 수출과 수입을 연결하는 대동맥이었으며 70, 80년대 고속성장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세계화와 경제자유화, 지역 블록현상의 부상, 선진국의 견제와 개도국의 추격이라는 외부환경 변화에 더하여 내부적으로 인구고령화와 성장동력의 침체마저 우려되는 상황에서 우리 경제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인프라는 과연 무엇인지 정부와 기업이 함께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이 구조조정의 시련을 겪고 있을 무렵, 나는 4년간 세계무역기구(WTO)에 근무하면서 세계무역의 흐름을 읽고 미래 한국의 청사진을 그려보면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전세계에 걸친 자유무역협정(FTA) 네트워크야말로 우리 기업이 세계를 상대로 장벽 없이 자유롭게 교역하고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를 발견하는 한편,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FTA 네트워크가 21세기 선진통상국가를 지향하는 우리 정부가 마련해야 할 미래를 위한 무형의 하이퍼인프라(Hyper-infra)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2003년 8월 참여정부 출범 이후 통상교섭조정관으로 부임하기 위해 돌아왔을 당시 한국은 단 1개의 FTA도 갖지 못한 이 분야의 후발주자였다. 직원들과 함께 세계지도를 펼쳐 FTA 네트워크 수립전략을 구상하고 우리 정부 전체의 합의를 끌어낸 다음 협상을 추진했다.
우선 싱가포르,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같은 대륙별 거점국가와 FTA를 체결했고 이를 통해 축적된 경험과 자신감으로 지난해 2월 우리의 4대 교역국이자 2번째 투자국 미국과 FTA 협상을 시작, 마침내 올 4월 협상타결을 이루었다. 그리고 5월, 우리의 2번째 교역국이자 제1의 대한(對韓) 투자국 유럽연합(EU)과 FTA 협상을 시작했다.
한·미 FTA 협상이 가져다준 성과 중 하나는 국내외적으로 우리의 FTA 추진에 탄력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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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국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체결,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관건인 FTA 경쟁에서 FTA 후진국의 면모를 벗고 성숙한 FTA 파트너가 된 한국에 EU도 냉담한 태도를 바꾸어 우리와의 협상에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올 5월 한·EU FTA 협상이 서울에서 호의적인 여론 속에 무난히 출범한 것을 보며 이제는 자유무역과 FTA에 대한 국민의 지지와 성원도 확산되고 있음을 실감한다.
정부는 미래 국제경제, 무역의 판도를 가늠하며 브라질, 인도 같은 브릭스(BRICs) 국가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등 신흥경제권과도 착실하게 FTA를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미래 한국의 글로벌 FTA 네트워크는 경제발전 수준, 소비자 기호, 산업구조 측면에서 다양성을 지닌 국가들로 구성될 것이며 한국은 이들 경제권을 연결하는 바큇살(wheel-spoke)의 중심(hub)이 될 것이다.
우리 경제가 FTA 네트워크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가시적 효과는 우선 수출증가에 따른 제조업의 활성화다. 기업은 주력상품인 자동차·전자·섬유 등의 가격경쟁력 향상과 수출증가라는 '손에 잡히는' 혜택을 입을 것이다.
또한 투자 및 기업여건이 향상된 한국에 공장을 설립해 미국, EU 등으로 무관세 수출을 희망하는 외국기업의 투자유입도 부수적으로 기대할 수 있다. 아울러 우리 수출시장과 주력 수출산업의 다변화도 기대할 수 있다.
우리의 수출구조는 중국과 IT제품에 대한 의존비중이 높아 '차이나 리스크'(China Risk)와 전세계적 IT경기 변동에 민감한 것으로 지적된다.
그러나 FTA 네트워크는 수출시장과 품목의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 우리 제조업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며 특히 인도, 옛 동유럽권 국가 등 신흥시장의 잠재수요는 내수침체와 환율상승으로 고전하는 제조업 분야의 중흥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아무런 노력없이 그같은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개방과 경쟁을 통해 경제구조를 고도화하는 과정에서 고통도 따르겠지만 보다 좋은 여건을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이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
자유무역 확대로 고용구조가 변화하는 것은 과학기술의 발전과정에서 다양한 직업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FTA 네트워크 확대는 이런 변화를 촉진함으로써 고용구조를 고도화할 뿐 아니라 기업의 경쟁력도 강화시킬 것이다.
1996년 유통시장 개방으로 재래시장이 현대화되고 토종 대형 유통업체가 나타나 고용이 창출됐으며 1998년 한·미 항공자유화(Open Skies) 협정으로 우리 항공사의 경쟁력과 서비스 수준이 높아졌음을 우리는 목격하지 않았던가.
FTA 시대에 진정 주목해야 할 것은 상품수출보다는 서비스부문의 선진화다. 우리 서비스업의 부가가치 증가율은 80년대 이후 지금까지도 하락하고 있으며 이것이 경제성장의 걸림돌로 지적된다.
세계 일류 가전과 선박·철강업체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동급의 서비스업체를 찾아볼 수 없는 이유는 개방과 경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조업에 비해 개방이 늦어진 서비스분야는 내수시장의 안정적인 이윤에 안주하고 있었기에 그만큼 생산성 향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FTA 시대에 서비스산업은 국경 안과 밖에서도 경쟁해야 할 것이다. 서비스시장 개방과 투자환경 개선은 외국업계의 유입을 촉진할 것이고 거꾸로 우리 제조업도 자유롭게 해외에서 서비스를 구매할 것이다.
국경과 국적에 관계없이 최적의 글로벌 분업구조를 모색하는 글로벌 아웃소싱 시대에 과거와 같이 자기혁신에 무관심한 서비스업체는 생존의 기반을 잃고 말 것이다. 아울러 21세기 정보화시대에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식기반형 서비스업이 우리 제조업을 든든하게 뒷받침해야 한다.
부존자원이 거의 없고 협소한 국토를 가진 우리에게 수출주도형 제조업은 21세기에도 필수적인 생존전략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사상 개방해서 실패한 나라는 있어도 개방 없이 성공한 경우는 없다. 강대국에 둘러싸여 국운을 펼칠 수 없었던 시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FTA 네트워크를 적극적인 자세로 활용해야 한다. 우리 국민이 변화에 슬기롭게 대처해 보다 나은 '우리 것'을 창조하는 유전자를 지니고 있음을 나는 믿는다.
끝으로 이제는 우리 경제를 생각할 때 북쪽도 함께 생각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그간 개성공단 생산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하는 내용을 여러 FTA에 포함시키기 위해 노력한 것도 북한경제 활성화를 염두에 둔 것이다.
남북합작 생산품이 세계 각지에 무관세로 수출되고 이를 통해 한반도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을 수 있는 획기적 기회를 우리 기업도 적극 활용하기를 당부드린다.
△서울 출생·48세 △미 컬럼비아대 △미 밀뱅크트위드 법률사무소 변호사 △미 스카덴아르프스 법률사무소 변호사 △김신&유 법률사무소 변호사 △홍익대 경영대 무역학과 조교수 △외무부 자문변호사 △외교부 통상교섭본부 통상전문관 △WTO 법률국 법률자문관 △외교부 통상교섭본부 통상교섭조정관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