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첫 유전체 지도 완성
한국인 유전체 지도 해독은 한국인 몸의 설계도가 완성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염기서열이 아미노산, 단백질로 이어지며 사람이 되는 일련의 과정이 모두 공개된 것이다.
건물에 문제가 생겼을 때 설계도를 들여다보면 원인을 찾아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한국인의 몸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보다 정확한 원인에 입각해 과학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번 해독 결과는 한국인에게 고유한 유전적 특성을 분석하고 질병에 관련된 유전자를 발굴하는 데 쓰일 전망이다. 맞춤의학, 예방의학의 토대가 될 것이란 의미다.
인간의 질병은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유전자 변이와 관계가 깊다. 예를 들어 유전자 지도 해독 결과 치매와 관련이 있는 유전자에 이상이 있다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남들보다 높다는 얘기가 된다. 생활습관 등을 조절해 미리 치매에 대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최초로 인간의 유전체 지도가 완성된 것은 2003년 미국 등 6개국 합작 연구팀에 의해서다. 당시 연구팀은 13년동안 2조원을 들여 서양인의 유전체 지도를 해독했다. 엄청난 규모의 투자가 이뤄진 것이다.
2007년에 발표된 크레이크 벤터 박사의 유전체지도 해독 결과만 해도 4년 간 1000억원이 투입된 프로젝트였다. 2003년에 비해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지만 상용화하기에는 턱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중 올해 일루미나에서 고속으로 대량의 유전체 서열해석이 가능한 '솔렉사'란 장비를 내놓으며 유전체 지도를 해독하는 시도가 활발해지고 있다.
DNA구조를 발견해 노벨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 박사가 지난 4월 15억원을 들여 자신의 유전체 지도를 해독했으며, 지난달에는 중국 베이징 유전체연구소에서 중국인의 유전체 지도를 해독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번에 발표된 김성진 박사의 유전체 지도 해독에는 2억5000만원이 들었다. 5년만에 2조원에서 2억원 수준으로 대폭 감소한 것이다. 생명공학계는 이같은 추세가 앞으로 더욱 빨라져 2~3년 내에 100만원 가량의 비용으로 개인 유전체 지도를 해독하는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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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조지 처치 미국 하버드의대 교수는 '구글'과 10만명의 유전자 지도를 해독하는 프로젝트에 돌입했고, 미국의 컴플리트 지노믹스는 룩셈부르크 정부와 2010년부터 20만명의 유전체를 해독할 계획이다. 영국과 중국도 각각 1000명과 100명의 유전체지도를 해독하는 프로젝트를 수행중이다.
김성진 이길여 암·당뇨연구원장은 "몇 년 후면 자신의 유전체지도를 휴대용 메모리에 저장해 신분증처럼 가지고 다니게 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발병 가능한 질병에 미리 대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갑작스런 사고에도 자신의 유전체 지도를 의료진에게 전달해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 유전체지도 분석이 대중화되면 유전자 분석산업은 물론 질환 예방을 위한 건강관리 시장도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일본 제노마커사는 해독된 유전체 지도를 바탕으로 질병 발병률을 예측해주고, 그에 맞는 영양관리나 운동법, 건강검진 시기 등을 알려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표적치료제 분야 신약 개발도 보다 활성화될 수 있다. '아바스틴' 등 세계 제약시장의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있는 표적치료제(항체의약품)는 병을 일으키는 원인 유전체를 찾아 제어하는 치료제다. 따라서 개인 유전체지도가 해독되면 아직 개척되지 못한 원인유전자를 더 많이 발굴하고 유전적으로 특정 치료제에 더 잘 맞는 사람을 가려낼 수 있다.
이봉희 이길여 암·당뇨연구원 유전·단백체 센터장은 "가장 먼저 유전체지도 해독을 이뤄낸 미국이 표적치료제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며 "그들이 해낸 해독 결과는 전세계에 공개됐지만 해독하는 과정에서 나온 노하우는 그들만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뇨병은 지금은 혈액 속의 당수치를 측정하지만 앞으로는 유전자 이상유무만 점검하면 된다"며 "훨씬 정확하고 간편해지는 만큼 의학분야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개인에게 일어날 수 있는 질병을 미리 예측한다는 점에서 윤리적 문제가 남아있다. 치료제도 개발되지 않은 질병에 대해 미리 걸릴 것을 알아서 좋을 것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미국 상하원은 지난 5월 질병에 걸릴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취업이나 보험가입 등에서 차별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해 '유전정보차별금지법안(GINA)'을 통과시켰다. 인종과 성차별만큼 유전정보로 인한 차별도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