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7월 둘째 아이를 본 은행원 A씨는 요즘 마트 가는 것이 두렵다. 첫째를 키울 때부터 써왔던 일본산 B사 기저귀 가격이 환율에 따라 무서울 정도로 오르고 있는 탓이다.
지난해 10월 벨트형 4팩(260개)에 8만9000원이었던 게 최근 10만8000원으로 올랐다. 국산 기저귀에 비해 조금 싼데다 흡수력이 좋고 피부발진이 적어 젊은 주부들에게 인기가 높은 제품이다. A씨는 "환율이 계속 상승하면 기저귀 가격도 더 오를텐데 B사 기저귀를 계속 쓸지 고민된다"고 말했다.
# 기업에 근무하는 B대리도 한 달만에 부인과 함께 장을 보러 갔다 깜짝 놀랐다. 7개월된 아이에게 이유식처럼 먹이는 바나나 가격이 100g당 170원에서 240원으로 30% 가량 오른 탓이다. 오렌지 역시 개당 800원으로 지난해 400원에 비해 100%나 올랐고, 파인애플도 배나 비싸게 팔리고 있었다.
바나나는 수입이 대부분인 데다 보관이 어려워 원/달러 환율의 영향을 거의 실시간으로 받는다. 원/달러 환율이 1600원을 위협하고 있는 현재 "더 이상 바나나를 '값 싸면서도 영양만점 과일'이라고 부르기도 힘들어졌다"고 B대리는 푸념했다.
하늘을 뚫을 기세로 오르고 있는 환율에 장 보러 가기가 무섭다는 호소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며칠 안으로 수입 가전제품과 주방용품 등의 가격표를 전면 교체할 것으로 알려졌다. 환율이 더 오르면 마트 갈 때 마다 '악'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 예비 신혼부부에게도 고환율은 악몽이다. 4월 18일 결혼 예정인 C씨는 신혼여행 스트레스에 잠을 설치고 있다. 한달 전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안팎을 오르내릴 때 여행사와 몰디브 5박 6일 상품을 계약했다.
하지만 환율이 하락할 것으로 보고 계약금 100만원만 지불하고 지금껏 결제를 미뤘는데, 그 사이 환율은 200원 가까이 올라버렸다. 그 때 결제했다면 700만원만 납부하면 됐지만, 이제 800만원을 내야 한다. 그렇다고 신혼여행을 포기하기엔 이미 지불한 계약금이 가슴에 걸린다.
# 오는 4월 해외연수를 준비 중인 D씨에게도 환율은 '공포의 대상'이다. 회사에서 해외연수 대상자로 선택됐지만, 나날이 오르는 환율에 언제 환전을 해야할지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환전 스트레스와 함께 연수 자체가 취소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들려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을 지경이다.
독자들의 PICK!
D씨는 "회사에서 경기침체에 환율까지 널뛰기 하면서 해외 출장비도 되도록 줄이고 있는 분위기"라며 "출장을 가도 국내 항공사가 아니라 저가의 외국항공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 원화가치 급락하면서 취미생활도 쉽지 않아졌다. 디지털카메라가 대중화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취미로 삼고 있지만, 인기를 얻고 있는 DSLR 카메라용 렌즈 가격이 한 두달 사이에 20% 이상 올랐다. 카메라 렌즈와 악세사리를 판매하는 남대문 상가 분위기도 전과 달라졌다. 비공식 루트를 통해 들여와 판매되는 이른바 '병행수입품' 렌즈 가격이 원/엔 환율 상승으로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
고급 렌즈 가운데 인기 제품이었던 D사의 한 렌즈 가격은 지난해 10월 130만원이었지만 4개월만에 153만원으로 치솟았다. 같은 회사의 망원렌즈 가격도 25만원 오른 95만원이었다. 그런데도 점포 주인들은 '사기 싫으면 관두라'는 분위기다. 몇 주 뒤에 팔면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한 직원은 "지금 렌즈가격은 원/엔 환율이 1200원일 때 기준으로 매겨지는 것"이라며 "3월 말이 되면 1400원 내지 1600원 기준으로 가격이 매겨져 지금보다 10% 이상 비싸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나마 달러가 엔화보다 상황이 나아 미국에 수출된 물건을 다시 들여와 판매하는 곳도 있다"고 귀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