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관계를 만드는 일자리

[광화문]관계를 만드는 일자리

이기형 기자
2009.03.18 08:23

꼭 10년만의 일이다. 회사에 한참동안 못 보고 지내던 선배가 찾아온 것은. 10년전 어느날, 그러니까 머니투데이가 사무실을 얻고 뉴스서비스를 한창 준비하던 때였다. 바로 아래 층에 한 카드사가 있었다. 그 카드사에 결제하러 들렀는데, 몇십만원이 모자란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사무실에 올라온 선배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전 비슷한 상황에 맞닥뜨렸다. 한 선배가 찾아온 것이다. 이 선배와의 만남은 위 상황보다는 드라마틱하다. 선배는 나를 찾아왔지만 회의때문에 통화가 계속 안됐고, 나는 회의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퇴근길에 올랐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로비를 나가다가 나로선 우연찮게 그를 만난 것이다.

나는 저녁 약속시간이 늦을 것 같아 짧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지만(사실 처음엔 나를 찾아온 줄도 몰랐다) '시간을 좀 내달라'는 선배의 말에 같이 택시를 타게 됐다. 30여분동안 많은 얘기를 들었다. 주식폭락, 신용불량자, 이혼, 고시원 등등의 단어들이 이어졌다.

IMF 외환위기 이후 꼭 10년만에 또다시 중산층에서 이탈하는 사람들이 쏟아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일자리의 붕괴다. 일자리는 사는 데 없어서는 안될 '돈'을 버는 곳이기도 하지만 사회와의 연결고리다. 연결고리에서 떨어져나간 사람은 사회인으로서의 '자존감'을 상실해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일자리' '일자리' 하면서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턴, 일자리 나누기 등을 통해 많은 일자리들이 생겨나고 있다. 한국은행에서 일하던 어떤 인턴은 잡일만 시킨다고 그만뒀다고 하고, 은행에 인턴으로 들어간 어떤 친구는 카드만들기에 진력이 난다고 불만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라는 말도 들린다.

그 친구들은 자기들이 하게 될 일이 상당히 가치있는 일이거나 폼나는 일이라고 기대했던 모양이다. 사실 은행원들이 은행 처음 들어가서 하는 일이 이런 저런 잡일에 돈 세는 법 배우고, 카드영업하는 게 고작이다.

물론 좀 더 생산적인 곳에 인력을 쓰자는 취지의 목소리인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어떻게든 실직자를, 젊은이들을 사회와 연결시키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일자리'에 대한 위기의식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녹색성장 등 신성장동력분야에서 좋은 일자리가 생겨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할 상황이라면 한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그 일자리를 '관계를 만드는 쪽'에 썼으면 하는 것이다. 그동안 사회복지정책은 노인회관, 복지관, 구민회관 등 건물을 짓는 데 주력했다. 이제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주는 일에 돈을 쓰자는 것이다.

썰렁한 건물에 따뜻한 컨텐츠를 채우자는 것이다. 사회복지사 등 사람에 대한 투자를 통해 실질적인 프로그램이 지역사회에서 가동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노인과 아이들이 인사를 나누는 지역사회를 복원시키자는 것이다. 노인들이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을 돌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전대미문의 위기라고 한다. 하지만 위기는 극복될 것이다.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각국 정부는 돈을 더 풀 것이고, 언젠가는 그 끝에 도달할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풀린 돈들이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야기시킬 때 나타날 것이다. 자산을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의 차이가 크게 벌어질 것이고, 상당한 빈부격차가 사회를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이를 대비하는 노력을 위해서라도 '관계를 만드는 일자리'를 만들어가야 한다. 사회적 통합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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