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추가 지난 지 20여일.
인류의 이기와 방종으로 인한 기후변화 탓인지 언제부터인가 절서가 무너져버린 듯 더위는 기승을 부리고 모기들 극성 또한 지나쳐 저녁잠을 설치기 일쑤다. 간밤에 뒤척이다 어렸을 적 여름밤 추억에 잠시 빠졌다.
서녘 여름하늘 붉은 노을이 서서히 밀려가고 세상이 어두워 질 때면, 으레 날아오는 모기들로 우리네 시골 아버지들은 모기를 쫓을 준비로 부산하다. 생쑥, 그것도 젖은 쑥을 마당에서 태워 연기와 함께 모기도 훨훨 날릴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어 진한 어둠이 깔리면 옹기종기 모인 집집에서 피어오른 연기로 온 동네가 하얗게 뒤덮이고 아이들은 온통 방안 곳곳을 휘감아 돌아버린 매운 모깃불 연기를 쫓느라 너도나도 부채로 연기도 쫓고, 모기도 쫓고, 더위도 쫓던 정겨운 풍경들이 펼쳐진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속전속결의 시대에 걸맞게 모기의 공격들을 막기 위한 상품들도 더욱 다양하게 진화가 되고 있다. 6,70년대에는 모기 퇴치 상품의 원조 격인 입으로 불어 뿌리는 모기약과 사람까지 질식시킬만한 독한 모기향, 그리고 모기장이 애용됐다. 8,90년대에 등장한 예방차원의 바르는 물파스, 전자 모기약과 향기로 퇴치하는 다양한 아로마 에어졸 등이 출시됐다.
하지만 모기들도 점점 내성이 강해지는 탓일까. 해마다 온갖 기발한 모기 퇴치용 상품들이 새로 등장하고 있다. 요즘 히트상품이라나, 흐르는 저전압으로 모기를 감전사시키는 것도 모자라 폭죽처럼 터뜨려버리는 작은 테니스 라켓 모양의 '전자 모기채'는 소비자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전자 모기채'는 잘못 취급하면 사람도 감전사고를 당할 수 있다고 한다.
실은 필자도 얼마 전 단돈 몇 천원에 구입한 '전기 모기채'가 나의 구세주가 됐다. 날아다니는 모기 근처에 살짝 갖다 대기만 해도 '퍽'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기면서 얄미운 모기가 죽는 걸 보면 짜릿한 쾌감이 느껴진다. 이게 2009년 여름나는 풍경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연일 이어지는 불볕더위와 눅눅한 여름밤을 그나마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추억이 가득 담긴 수필 하나가 떠오른다. 1938년 8월 '여성'에 발표했던 시골 여름밤의 평화로운 모습을 그린 노천명 시인의 '여름밤'이라는 제목의 수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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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깃불의 메케한 연기가 온 집안에 퍼질 때면 영악한 모기들도 힘을 잃고 반딧불을 쫓던 아이들도 하나 둘 잠자리에 든다. 고단한 아낙네들이 멍석 위에 누워 꿀 같은 단잠이 들면 여름밤도 깊어진다.
모깃불 연기가 가늘어지고 밤이 바다 밑처럼 고요해지면 헛간 지붕 위에 핀 하얀 박꽃이 무서워진다. 뒷산 포곡새(뻐꾸기) 울음소리에 놀라 우는 아기가 엄마의 품속을 파고들자 온 마을의 개들도 덩달아 달을 보고 짖어댄다.'
무르익는 여름밤 시골 마을의 평화로움을 표현한 멋진 글이다. 아마 우리민족 전체의 영원한 향수이고 우리 피 속에 흐르는 정서이며 우리의 행복을 담아낸 글이다. 지금은 이런 추억들이 농촌체험행사나 특별한 축제가 아니면 볼 수가 없게 되어버려 아쉽기만 하다.
그리움이 되어버린 것들. 여름밤 툇마루에 앉아 계신 아버지 무릎에 머리를 맡기면 언제나 한결같이 부채질 해주시던 모습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납량특집을 들으면서 찐 옥수수와 감자를 둘러 앉아 먹었던 때가 그립다.
이 밤 탁탁 소리와 함께 뽀얀 연기를 내며 타던 그 모깃불속 만큼이나 내 가슴속 그리움이 나를 어지럽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