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하의 네이키드코스닥]실질심사 두려워 전 경영진 횡령배임 공시 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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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코스닥 상장사를 인수한 A씨. 새롭게 회사를 바꿔보려고 했지만, 기존 경영진의 부정행위가 새록새록 드러나는 탓에 골치가 아픕니다. 횡령·배임으로 수십억원에 달하는 채무가 드러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 경영진을 횡령배임으로 고발해야합니다. 하지만 할 수가 없습니다.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오르기 때문입니다.
코스닥 횡령배임 공시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난해 상반기 29건, 하반기 18건에 달했고, 올해 1분기만해도 9건의 횡령배임 혐의가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2분기 이후 건수는 급격히 줄었습니다. 이미 상장폐지된 이루넷과 인젠을 제외하면 CT&T와 합병이 예정된CMS만이 유일하게 횡령배임혐의 발생공시를 했습니다.
코스닥 시장이 그만큼 정화된 걸까요. 아닌것 같습니다.
코스닥 시장이 정화되려면 기존의 낡은 횡령배임 사례들은 더욱 더 많이 드러나야 할 텐데, 오히려 확 줄었습니다. 바로 상장폐지 실질심사 때문이죠.
전기차 사업을 신규사업으로 하는 한 상장사는 전전(前前) 경영진과 20억원을 두고 분쟁이 진행 중인데, 떳떳하게 법적조치를 통해 결백을 주장할 수가 없는 처지입니다. "배임행위를 한 이전 경영진에게 20억원 손해배상 소송을 했지만 공시할 수는 없었죠. 아시잖습니까. 실질심사 걸리면 다 끝나는거"
한 상장사 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포함되면 자금조달 뿐 아니라 사업도 끝이라고 봐야죠. 실질심사에서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상장폐지'라는 어감이 주는 충격은 어마어마합니다. 진위와 관계없이 주가는 폭락하고 회사 이미지는 바닥으로 떨어지는데 어떻게 공시를 하겠습니까."
물론 횡령·배임 소송은 그 동안 대규모 '작전'에 악용되는 사례들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한 코스닥 기업을 인수한 K씨와 일당은 해외 자원개발 등의 명목으로 200억원에 달하는 유상증자를 실시했습니다. K씨는 회사돈 200억원을 해외로 보냈다고 공시한 뒤 같은 세력인 L씨를 각자대표(혹은 경영지배인)으로 선임했습니다. 이후 L씨는 회사가 200억원의 사기를 당했다고 공시한 뒤 K씨와 전 경영진을 횡령·배임으로 고소합니다. K씨는 잠적하고 신규경영진인 L씨는 주주들로부터 '면죄부'를 받았습니다.
'횡령·배임'공시와 함께 책임은 모두 전 경영진 K씨에 돌려졌습니다. 이후로는 복잡하고 지루한 송사만이 이어지며 주주들의 피해를 키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감독규정이 강화되고 회계법인의 감사도 엄격해져 이런 횡령 배임 소송을 악용한 자금 빼돌리기는 쉽지 않은 상태입니다.
회사를 인수해 새출발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실질심사는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이 때문에 실질심사가 무서워 기존 경영진의 잘못된 행각을 숨겨주는 일이 반복될까 우려스럽습니다. 이전의 횡령배임을 숨겼다가는 나중에 어떤 식으로 곪아터질지 모를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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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닥 상장폐지 실질심사는 코스닥 시장 정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횡령배임 공시가 나오면 무조건 실질심사 검토대상에 들어가는 현 제도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드는' 악순환을 낳는 건 아닌지 걱정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