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형 슈퍼마켓(SSM)보다 오픈 프라이스 때문에 장사하기가 더 힘들어졌어요."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A슈퍼 주인 김 씨는 "요즘 장사하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동네슈퍼 속성상 과자나 라면, 음료수 같은 단품들이 잘 팔리는데 최근 부쩍 "가격을 너무 비싸게 받는다"는 손님들의 항의가 늘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얼마 전 한 손님의 가격 항의가 너무 거세 '자신도 모르게 제품 가격이 올랐나' 싶어 확인한 결과 손님이 가격을 착각해 벌어진 촌극도 있었다"고 했다.
물론 답답하기는 손님들도 마찬가지다. 권장소비자가격이 없다보니 '슈퍼 주인이 부르는 게 곧 가격'이라고 믿게 됐다. 그만큼 제품 가격에 대한 불신이 커진 셈이다. 주부 백경희 씨는 "권장소비자가격이 없어진 후 사전에 가격을 알지 못하고, 얼마를 할인해주는지도 몰라 최근엔 동네슈퍼를 거의 찾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해 7월 '오픈 프라이스' 도입으로 권장소비자가격이 제품 포장지에서 사라지며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오픈 프라이스는 제조업자의 일방적인 가격 책정을 막고, 유통업체들이 가격경쟁을 벌여 소비자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든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여기에는 제조업체가 권장소비자가격을 뻥튀기한 후 이를 깎아주는 '생색내기 할인'을 봉쇄하겠다는 의도도 깔려있다.
그러나 과자나 라면처럼 단가가 낮은 제품은 오픈 프라이스가 소비자들을 되레 불편하게 한다는 지적이 많다. 대형마트와 달리 동네슈퍼에서는 진열대에 가격 표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소비자들은 사실상 가격 정보조차 모른 채 제품을 사야하는 현실이다.
오픈 프라이스의 함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권장소비자가격이 없어졌기 때문에 제조업체들이 버젓이 가격을 올려도 소비자들은 이를 쉽게 눈치 채지 못한다. 오죽하면 "이전 가격과 비교해보지 않는다면 슈퍼 주인도 가격인상을 모른 채 넘어갈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소비자를 위한 오픈 프라이스 도입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자동차나 전자제품과 달리 소비자들은 과자나 라면을 사기 위해 동네슈퍼를 전전하며 가격을 비교하진 않는다. 과자나 라면 같은 제품은 가장 기본적인 가격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충실히 알려주는 것이 더 소비자를 배려하는 것일 수 있다. 제조업체들의 가격 인상 여부조차 소비자들이 알지 못하는 오픈 프라이스는 문제가 있다. 취지와 달리 소비자 권리에 역행한다면 제도의 점검과 보완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