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위크 커버]가족이 힘이다/ 4개국 아동 후원하는 김소윤 씨
“내 아이를 낳더라도 밀가루만큼 사랑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30살 처녀의 뜬금없는 밀가루 예찬론이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김소윤 씨가 사랑하는 밀가루는 지구 반대편 그가 후원하는 3살 바기 사내아기의 애칭이다. 아기의 이름은 ‘로페즈 호세 아밀카르’. 그녀는 아기에게 입에 착 감기는 ‘밀가루’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김씨는 중미의 작은 나라 엘살바도르에 사는 아밀카르라는 아기를 3년째 후원하고 있는 중이다.
아밀카르의 부모는 이제 갓 20살이다. 경제적 지원이 없다면 끼니를 때우기조차 쉽지 않은 형편이다.
그가 아밀카르의 후원을 시작한 것은 2009년이다. 약속된 후원자가 후원을 포기하면서 아밀카르의 사정이 딱해 직접 후원자로 나섰다. 사진 속 아밀카르의 귀여운 모습에 홀딱 반한 것도 후원자를 자처한 이유였다.

류승희 기자
“큰 돈은 아니지만 옷 하나 살 때도 더 예쁘고 귀여운 것을 고르려고 하고요. 장난감도 인지발달에 도움이 되는지, 성격 형성에 장해가 되지는 않을지 고민하게 되요.”
아밀카르의 어머니와는 수 십 통의 편지를 왕래했다. 내용은 주로 아밀카르의 육아일기에 맞춰졌다. ‘이가 두개나 생겼다’거나 ‘보내준 장난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를 듣고 춤을 췄다’는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이 김씨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
그는 ‘아밀카르가 이모(아밀카르의 어머니는 김씨를 이모라고 가르쳤다.)라는 말을 처음 내뱉었다’는 편지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김씨는 아밀카르의 사진에서부터 핸드 프린팅한 그림까지 소중하게 스크랩해서 간직하고 있다.
편지 내용을 슬쩍 보자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돕고 있다’거나 ‘후원자님은 아밀카르의 수호천사’라는 글귀가 보인다.

◆월급의 절반이 후원금
매달 그가 아밀카르를 후원하는 돈은 고작 3만원. 년 1~2회 추가로 후원하는 선물금(후원 아동의 선물을 사는 데 드는 비용)까지 해봐야 년 50만원이 채 안되지만 꼭 그에게는 소중한 돈이다. 먹고 싶고 사고 싶은 욕망을 절제해 가며 아낀 돈으로 후원금을 보낸다.
“저도 가방 좋아해요. 그런데 애기들을 생각하면 좋은 가방 못 사겠더라고요. 그래도 적금, 보험 다 하고 있어요. 대신 쓸데없는 소비를 줄이게 됐죠.”
독자들의 PICK!
그는 경기도 수원의 한 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한다. 급여가 많지는 않지만 한 번도 후원금을 거른 적이 없다.
그가 하는 일은 고되다. 근무 시간에는 아침 7시에 일어나 보통 새벽 1시, 늦으면 3시에 잠든다. 하루 종일 11명의 아동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다보면 새벽에야 일과를 정리할 수 있다. 1주일 격주 근무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2~3일은 파김치가 되기 일쑤다.
그는 국내 아동도 후원한다. 하지만 해외 아동에 비해 마음이 쉽게 가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이 아이들은 제가 직접 돌봐주고 보듬어주고 직접 챙겨줄 수 있지만 해외 아동은 만나볼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더 애틋한 것 같아요. 여기 애들(국내 아동)은 하루 종일 함께 있으니까 속상한 일도 많이 생겨요. 미운 점이 보인다고 할까? 그런데 해외 아이들은 오로지 행복감만 줘요.”
그가 국제 구호개발기구인 월드비전을 통해 후원하는 아동은 모두 4명이다. 엘살바도르의 아밀카르 외에 팔레스타인, 말라위, 방글라데시 등 생소하지 않은 국가 출신 아동이 그가 후원하는 글로벌 가족이다. 한 때 그가 지원했던 아동은 모두 9명이나 됐다. 그때는 수입의 절반가량을 후원금으로 내기도 했다. 생활고 때문에 지원규모를 줄인 것이 그는 못내 마음 아프다.

◆가족이라는 의미
이 쯤 되면 그의 집에서 시샘을 할 법도 하다. 그렇지 않아도 어머니가 ‘그 애기한테 하는 것처럼 가족한테 해보라’고 농담 섞인 핀잔을 줬단다. 그녀는 내친 김에 어머니에게도 후원 아동을 하나 안겨(?)드렸다.
사실 김씨의 가족 역시 그리 넉넉한 형편은 아니다. 퇴직한 아버지를 포함해 4가족 모두 각자 경제생활을 해야만 겨우 한달을 버티는 정도다. 하지만 가족 어느 누구도 그의 후원활동을 나무라지 않는다. 다른 나라의 어려운 아동을 돕는 일을 오히려 자랑스러워한다.
그렇다면 그는 언제까지 후원을 하게 될까? 한 아동에 대한 후원은 18세가 되면 종료되지만 앞으로도 다른 아동의 후원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노숙을 하더라도 후원은 끊고 싶지 않다’고 할 정도다.
“이제는 어느 덧 12살이 되어버린 팔레스타인 마모우드의 편지가 기억에 남아요. ‘누나, 나는 사랑이라는 말로 누나에 대한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어’라고 썼더군요. 제가 후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행복감도 마찬가집니다.”
작가이자 구호활동가인 한비야 씨의 책을 한권도 빠짐없이 읽었다는 그. 지구 반대편에도 그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