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장에 더부살이 하는 쑨원

주원장에 더부살이 하는 쑨원

홍찬선 베이징 특파원
2012.12.22 09:21

[머니위크]홍찬선 특파원의 China Report

중국 장쑤성의 수도인 난징. 가깝게는 난징대학살과 멀게는 소설 <삼국지> 속 쑨취앤(孫權)이 건국한 오(吳)의 수도인 건업(建業)으로 유명한 이곳에는 중산링(中山陵)도 있다. 중산링은 우창(武昌)봉기로 시작된 신해혁명을 지도하면서 중화민국의 초대 총통(대통령)을 지낸 쑨원(孫文)의 묘. 그의 호인 중산(中山)과 왕이나 황제의 무덤을 뜻하는 링(陵)이 합해진 말이다.

 

중산링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규모가 엄청나다. 난징시 동쪽에 있는 종산의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중산링의 면적은 8만㎡(약2만5000평). 하지만 중산링 주위에 있는 중산기념관과 음악당, 장경루 행건정 등을 포함한 총면적은 2000무(1무=200평)에 이른다.

중산링 전경

◆'삼민주의' 쑨원의 화려한 무덤

중산링의 입구에는 그가 생전에 쓴 '박애'(博愛)라는 글자가 새겨진 석문이 있다. 이곳에서 쑨원의 시신이 묻혀 있는 묘실 및 제당까지의 거리 375m, 폭 40m의 묘도가 만들어져 있다. 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푸른색의 유리 기와지붕으로 된 능문이 나온다. 능문에는 쑨원의 주요 정치이념인 '천하위공'(天下爲公)이란 글귀가 그의 친필로 쓰여 있다.

이곳에서 392개 계단을 올라가면 제당이 나온다. 제당에서는 난징시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풍수지리를 배우지 않은 사람도 '명당이란 이런 곳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자리다. 이 제당의 처마에는 쑨원의 핵심사상인 삼민주의인 '민족(民族) 민권(民權) 민생(民生)'이란 글자가 쓰여 있다. 또 쑨원의 친필로 '천지정기'(天地正氣)가 쓰여진 현판도 걸려 있다.

제당 한가운데에는 그의 앉아있는 백옥상이 세워져 있고 오른쪽 벽에는 그가 유고로 남긴 '건국대강'(建國大綱)이 새겨져 있다. 백옥상 뒤에 묘실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굳게 닫힌 문 위에는 '호기장존'(浩氣長存)이라는 그의 친필 글씨가 쓰여 있다.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묘실은 지름 18m, 높이 11m의 원형으로 돼 있다. 묘실은 해발 165m 높이에 있으며 묘실 안에 쑨중산의 시신이 안장된 동관이 묻혀 있다. 묘혈은 지름 4m, 깊이 5m라고 한다.

중산링은 1925년 3월12일, 쑨원이 서거한 뒤 1년이 지난 1926년 3월에 만들어지기 시작해 1929년 5월 말 완공됐다. 베이핑(北平, 베이징의 옛이름)에서 서거한 쑨원은 그동안 향산의 벽운사에 임시로 안장됐다가 1929년 6월1일에 이곳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중화민국의 수도인 난징의 종산에 묻히고 싶다는 그의 유언에 따른 것이다.

명 태조 무덤 제당

◆쑨원과 주원장, 쑨취앤의 무덤

중산링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한 것은 쑨원의 삶과 죽음이 커다란 모순에 빠져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중산링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의 무덤은 황제의 무덤보다 더 크고 화려하다. 중산링에서 서쪽으로 30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밍(明) 태조, 주원장의 무덤인 샤오링(孝陵)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물론 1398년에 완공된 샤오링을, 531년 뒤에 건립된 중산링과 직접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쑨원이 생전에 그토록 강조했던 민족·민권·민생과 중산링은 거리가 멀다. 중산링을 만드는데 240만은양(銀洋)이 들어갔다고 한다. 현재 가치가 얼마가 되는지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중산링 규모로 볼 때 족히 수백억원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중화민국이 건국된 지 20여년 밖에 안됐고, 서구열강의 침략 속에서 중국 인민들이 굶주림으로 고통을 겪을 때 전제군주보다 더 크고 화려한 황릉을 만드는 것을 저 세상에서 바라보면서 그는 미소를 지었을까, 아니면 고통스러워했을까.

나중에 저 세상에서 그를 만났을 때 물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마도 미소짓지 않았을까 추정할 수 있다. 쑨원은 서거 전에 자신이 사망하면 소련의 레닌처럼 시신을 보관해 민중들이 볼 수 있게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지만 그가 서거한 뒤 소련에서 보낸 유리관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그는 레닌이나 마오저둥, 김일성처럼 사후에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됐다. 향산 벽운사에 임시로 안장돼 있던 그의 시신이 부패하기 시작해 어쩔 수 없이 땅에 묻는 토장을 하기로 결정된 덕분이다.

중산링이 있는 종산은 봉우리에 자줏빛 구름이 자주 낀다고 해서 즈진산으로 불린다. 높이가 해발 448.9m, 산 주위가 30km에 불과한 조그만 산이지만 옛날부터 명당으로 유명하다. 오의 태조인 쑨취앤이 이곳에 묻힌 뒤 수많은 영웅호걸들도 이곳에 유택을 마련했다. 동진(東晋)의 캉띠(康帝)와 쑹(宋)의 우띠(武帝), 밍(明) 태조 주원장과 중화민국의 국부 쑨원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주원장의 무덤인 샤오링의 입장료는 70위안(1만2600원)이나 된다. 600여년이 지난 유물을 감상한다는 것 외에 별로 볼 것이 없다. 하지만 중산링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중국의 건국기념일(10월1일)과 신해혁명 기념일(10월10일)이면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로 사랑과 존경을 받는 중산링이 주원장에 더부살이하는 양상이다.

쑨취앤은 후대에 그의 무덤이 파헤쳐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지하궁전을 만든 뒤 봉분을 만들지 않고 비석도 세우지 않았다. 이 덕분으로 그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아직도 지하에서 온전히 보존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후 유택을 마련한 것만으로 볼 때 1700년 전의 쑨취앤이 삼민주의를 주창한 쑨원보다 낫다고 생각하면 지나친 곡해일까.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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