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포스코의 성장통

[기자수첩]포스코의 성장통

유현정 기자
2012.12.18 07:01

"요즘은 포스코 사람들이 찾아와 밥을 삽니다"

포스코로부터 철강을 구매하는 한 거래업체 관계자가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표정으로 꺼낸 말이다.

수요와 공급이 존재하는 시장에서 '갑'과 '을'을 굳이 나누자면 돈을 내고 사는 쪽이 갑이고 제품을 만들어 파는 쪽이 을이다.

하지만 국내 철강시장은 그 반대였다. 포스코가 '갑'이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모자랐단 뜻이다. 불과 5년전만 해도 철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업체들에게 포스코가 철을 '나눠주던' 시절이었다.

시장이 변한 건 2000년대 중후반부터다. 국내업체 증설, 중국산 저가 제품 수입으로 공급량은 느는데 막상 경기는 후퇴해 수요가 감소해 버린 것이다. 한국은 지난해 철강 순수출국으로 전환했고 올해는 공급과잉으로 가격하락을 경험했다.

수요, 공급의 역학관계가 뒤바뀌자 권력관계도 따라 변했다. 최근 만난 거래업체 관계자의 '격세지감'은 이를 피부로 느끼고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 말이었다.

실제로 포스코는 지난해부터 고객관리 필요성을 절감하고 EVI(Expanded Value Initiative for Customers)활동을 강화했다. 제품 기획단계서부터 고객과 밀접한 의사소통을 통해 유대를 강화한다는 게 EVI 취지다.

지난 10월 포스코가 개최한 '제 2회 글로벌 EVI 포럼'은 '달라진 포스코'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GM, 현대자동차, 르노삼성, 포드 등 전통적인 고객뿐 아니라 삼성전자, LG전자, 히타치, 석유공사, 쉘, 두산인프라코어, 대우건설 등 다양한 수요산업 관계자 1000명을 초청했다. 해외 경쟁사들의 초대 대상이 자동차업계로 국한되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소비재 업계에서 고객을 '묶어두기' 위해 사용하는 '락인(lock-in)'전략도 구사한다. 고객사의 지분을 인수해서 전략적 관계를 맺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강관업체스틸플라워의 지분(11%) 인수 및 올 7월 동유럽 최대 모터코어 생산업체인 TE슬로바키아의 지분(7%) 인수 등이 이런 사례다.

포스코가 과거 가졌던 특권을 내려놓는 일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우월적 지위'보다 스스로 얻은 자생력이 생존 전쟁에서 훨씬 강력한 무기라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명백하다. '정권의 전리품'이란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길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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