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벨]中企정책이 힘을 받으려면

[더벨]中企정책이 힘을 받으려면

이승호 차장(벤처투자팀장)
2013.01.21 07:59

더벨|이 기사는 01월17일(11:18) 자본시장 미디어'머니투데이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한국에서 중소기업 경영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외국계 대형은행에서 발급한 수출신용장(LC)을 가져가도 믿어주지 않아요"

얼마 전 충북에 위치한 코스닥 상장사의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 15년 가까이 IT기업을 이끌고 있는 그는 우리나라 중소기업 환경이 너무나 열악하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가 전하는 전형적인 중소기업 '깔보기' 사례는 이렇다. 그의 회사는 중국 디스플레이업체로 2000만 달러 규모의 설비를 수주했다. 홍콩계 대형 은행에서 발급한 LC를 들고 국내 주요 은행들을 찾아갔다. 하지만 어떤 은행도 그 LC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홍콩을 거쳐 중국으로 납품하는 수출 계약의 LC 대부분이 위조된 것이라는 답만 돌아왔다.

다급해진 그는 홍콩과 중국 회사들이 꽤 평판있는 회사인데다 LC를 발급한 홍콩계 은행도 유명한 곳임을 설명했다. 이번 LC는 협상단계가 아니라 수출계약이 완료됐다는 점도 강조했다. LC만 개설하고 인수증이 도착할 때까지 수출대금을 출금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허사였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국내에서 지점을 철수해 버린 홍콩계 은행의 서울 본점을 찾아갔고, 그 곳에서 LC를 받아주겠다는 확약을 받았다.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국내 은행이 그에게 찾아 왔고, 다시 그 LC를 받아주겠다고 했다. 단 그의 회사 신용도를 고려할 경우 홍콩계 은행보다 금리가 200bp이상 높아질 수 있으니 양해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마음이 상했지만 여러 사정상 고금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중소기업들은 현재 중소기업청의 위상으로는 박근혜 당선자가 공약한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운용이 실효를 거둘 수 없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인수위가 밝힌 정부조직 개편안으로 보면 중기청이 지식경제부로부터 중견기업 정책과 지역경제 특화발전 업무를 넘겨받도록 돼 있다. 중소기업청을 중소기업부로 승격해 줄 것을 원했던 업계의 바람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셈이다.

그나마 역할이 강화된 것이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하지만 대다수 중소기업들은 중기청이 소신을 가지고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있는 정책을 수행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고 있다.

한 중소기업 CEO는 "중소기업 관련 지원 업무는 현재 10여개 부처에 분산돼 있어 일관된 정책이 나올 수 없는 구조"라며 "중기청이 아무리 애를 써도 대기업 중심의 정책에 힘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중소기업 대표도 "박근혜 당선자는 최근 중소기업계와의 만남에서 중소기업을 어렵게 하는 불공정, 불균형, 불합리 등 '3불(不)'을 해소하고 더 수월하게 자금을 조달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말했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두고봐야 한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중소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중소기업중앙회측은 인수위의 개편안에 대해 중기청의 몸집만 키울 뿐 지식경제부의 외청으로 존재하는 한 실제 필요한 중기정책의 실효성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청을 독립시키고 수장도 장관급으로 격상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은 119개에 불과했다. 2008년부터 2010년에는 380개로 늘었으나 미국과 일본 등과 비교하면 턱없이 미미한 수준이다. 현재 중기청 체제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은 다시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희망의 선순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인수위는 박 당선자가 공약한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운용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 무엇이 선행돼야 할지 다시 고민해야 한다.

국내에 사업자등록을 한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고, 전체 근로자의 88%가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박 당선자가 중소기업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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