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벨]우정사업본부의 결단

[더벨]우정사업본부의 결단

이승호 차장(벤처투자팀장)
2013.09.30 10:28

더벨|이 기사는 09월25일(07:59) 자본시장 미디어'머니투데이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은행과 보험사 등 민간금융회사들은 2000년대 초반 벤처 버블시대의 악몽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정사업본부의 벤처투자시장에 대한 시각 교정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자본시장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여의도 증권시장에서 오랫동안 몸 담아왔던 모 창투사 A 투자본부장의 말이다. 그는 증권가 애널리스트로 시작해 가장 보수적인 투자성향의 회사채 시장과 투자금융시장(IB)을 거쳐 벤처투자 시장에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는 벤처투자 생태계를 '새로운 피가 부족하고 퇴로가 막혀있는 시장'으로 진단한다. 정부 주도로 변해버린 벤처투자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민간 자본이 수혈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중소·벤처기업에 투자된 자금이 순환되기 위해 기업공개(IPO)와 기업간 인수합병(M&A) 등 투자금 회수시장(Exit)도 원활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A 본부장이 무엇보다 주목하는 것은 펀드레이징 시장이다. 엑시트 시장은 경기 변동성으로 인해 유동적일 수 있지만 펀드레이징 시장은 정부 주도형으로 너무 고착화됐다는 분석이다.

벤처투자 업계는 유동성 공급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민간자금, 무엇보다 은행과 보험 등 민간금융회사들이 벤처투자시장에 대한 출자를 늘려야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정사업본부의 올해 출자사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까지 수시출자에만 의존해 왔던 우정사업본부는 올해 기존 입장에서 벗어나 경쟁입찰방식을 채택했다. 한국벤처투자(모태펀드)와 국민연금이 실시하고 있는 경쟁입찰방식을 받아들인 것이다. '미래성장산업전문 벤처투자조합' 위탁 운용사를 선정해 총 500억원을 출자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문제는 출자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우량한 벤처캐피탈이 얼마나 많이 입찰에 참여할 지가 관심사였다. 입찰방식을 처음 채택한 우정사업본부의 입장에서는 자칫 흥행에 실패할 경우 감당해야할 이미지 실추까지 고민해야할 처지였다.

이 같은 우려는 기우에 그쳤다. 4개 운용사를 선발하는데 무려 25곳의 벤처캐피탈이 입찰에 참여했다. 결국 1차 서류심사와 2차 프리젠테이션을 통과해 우정사업본부의 자금을 받아간 곳은 한국투자파트너스, IMM인베스트먼트,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벤처캐피탈이다.

이후 진행된 국민연금 출자사업에서는 더 많은 벤처캐피탈이 모여들었다. 일반부문(1000억원)과 예비운용사(루키, 750억원)를 선정하는데 한국투자파트너스 등 대형사를 비롯해 1~2년내 설립된 신생사까지 거의 모든 벤처캐피탈이 입찰에 참여했다. 너무 많은 벤처캐피탈이 몰리다보니 심사시간이 부족해 출자일정을 연장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국민연금은 벤처부문 일반운용사에 한국투자파트너스, KTB네트웍크,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예비운용사에 HB인베스트먼트, SV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벤처캐피탈, 보광창업투자, 플래티넘기술투자 등을 GP로 선정했다. 벤처투자업계를 대표하는 곳들이 우정사업본부과 국민연금의 선택을 받은 셈이다.

우정사업본부와 국민연금의 출자사업이 은행과 보험 등 민간금융회사들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A본부장은 '묻지마식 투자'를 진행했던 2000년대 초반 벤처버블시대를 하루 빨리 잊어야한다고 조언한다.

A본부장은 "함께 몸담았던 금융권 지인들을 만나보면 벤처투자시장을 아직까지도 대금업으로 인식하는 등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하다"며 "우량한 중소·벤처기업을 발굴해 투자하고 육성해 산업과 금융시장을 융합하는 곳이 바로 벤처투자시장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벤처캐피탈 상위사들의 투자실적을 살펴보면 어느 금융기관과 비교해도 투자수익률측면에서 뒤쳐지지 않는다"며 "우정사업본부와 국민연금의 GP로 선정된 벤처캐피탈들의 트렉레코드가 이를 입증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금융시장을 관장하고 있는 금융위원회가 신정부 들어 신성장금융팀을 신설했다. 지난 9월5일에는 '벤처·중소기업 자금지원 강화를 위한 투자금융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된 내용은 아직 구체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선도적 모험자본'으로 지칭한 벤처투자시장에 대한 인식과 이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연기금과 은행, 보험으로 대표되는 민간금융자본의 참여를 유도하려는 노력들이 여기저기에 묻어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창조경제는 개개인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기반으로 부가가치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라고 한다. 창조경제를 위한 금융의 역할은 창조경제의 핵심 요소들이 효과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금융회사는 여러 변수를 놓고 고민할 때 최우선으로 선택해야 하는 부분이 리스크관리다. 하지만 금융회사의 수익기반이 기업에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수십만개의 중소·벤처기업이 잘 돼야 금융회사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 민간금융회사들이 벤처투자시장의 중요한 플레이어가 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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