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늘어나는 취업자, 줄어드는 일자리 (下)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3조 개정안) 시행 이후 하청 노조와의 교섭 타결 여부가 올 한 해 사업 계획 전체를 흔들고 있습니다. 법적 리스크가 어디까지 튈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장 고정비로 부담이 될 신규 정규직 채용을 늘릴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대형 제조업체 HR 담당 임원)
노란봉투법이 지난 25일을 기점으로 시행 200일을 넘겼다. 노동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원청의 사용자성 확대와 파업 손해배상 청구 제한이 본격화된 지 반년 남짓, 산업 현장에서는 노동권 신장이라는 취지 뒤에 숨은 '노동시장 경직화와 신규 채용 절벽'이라는 부작용이 현실화되고 있다.
특히 정부와 여당이 이사의 충실의무를 확대한 상법 개정안 등 강도 높은 친노동·기업 규제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자 기업들도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신규 채용 빗장'을 더욱 걸어 잠그면서 그 여파가 청년층 고용 악화로 직결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원·하청 교섭 요구 봇물… "채용 계획 수립조차 불가능"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경영 현장의 가장 큰 변화는 '사용자 범위 확대'에 따른 교섭 부담과 사법 리스크의 전면화다. 개정법에 따라 원청 기업이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경우 교섭 응무 의무가 발생하면서 주요 대기업 마다 수십에서 수백 개에 달하는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 공문이 쏟아졌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노란봉투법 추진 당시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조합법 개정안 관련 기업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 10곳 중 7곳 이상(72.9%)이 노조법 개정 여파로 노사관계 불확실성과 사법적 리스크가 현저히 커질 것이라고 답한 바 있다. 법 시행 200일이 지난 현재, 당시 기업들이 품었던 우려가 현장에서 현실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기업들은 이 같은 법적 리스크 증가가 인력 운용의 유연성을 박탈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교섭 창구가 다변화되고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마저 사실상 어려워진 상황에서 인건비 확정을 지을 수 없어 중장기 채용 계획 수립 자체가 불가능해졌다"며 "결국 신규 정규직 공채를 최소화하고 경력직 중심의 소규모 수시 채용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성장판 닫히는 청년 고용… 정책 패러다임 전환 시급"
독자들의 PICK!
친노동 정책 드라이브가 초래한 채용 축소 현상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6년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18만 4000명 늘어났으나 증가분의 대부분은 60세 이상 고령층 일자리였다. 반면 미래 세대인 청년층(15~29세) 취업자 수는 신규 채용 축소 여파로 수개월째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며 대조를 이뤘다.
청년 고용절벽은 대기업 단체교섭과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강할수록 신규 정규직 채용이 위축되는 현실과 직결돼 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주요 대기업의 고용 구조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노조 세가 강하고 고용 경직성이 높은 주요 대기업일수록 전체 고용에서 30대 이하 청년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수년간 최대 13%p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근로자의 권익 보호와 사법 리스크 확대를 골자로 한 입법 드라이브가 결과적으로 노동 시장에 진입해야 하는 청년 구직자의 문턱을 한층 높이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악순환'을 낳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과 재계는 노란봉투법을 위시한 친노동 정책 드라이브가 기업의 고용 창출 체력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키고 있다고 경고한다. 성장률 전망치가 조정되더라도 고용 유발 효과가 작동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의 핵심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 같은 노동 시장의 제도적 리스크라는 것이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노동시장의 고용 경직성과 노사 갈등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친노동 입법 드라이브가 지속될 경우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더욱 주저할 수밖에 없다"며 "청년 일자리 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위해서는 기존 정규직 과보호를 완화하고 기업의 채용 유인을 높이는 고용 유연성 확보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23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65세 법정 정년연장 쟁점과 입법 개정 방향 국회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2026.06.23. myjs@newsis.com /사진=](https://thumb.mt.co.kr/cdn-cgi/image/f=avif/21/2026/09/2026092717593515116_2.jpg)
재계는 정부의 각종 규제 강화로 경영이 위축된 상황에서 고용 창출 확대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강하게 지적했다. 청년층 중심의 '진짜 일자리'는 기업 친화적 정책 환경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늘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6월 이재명 정부가 출범할 때만 해도 기업 사이에선 '친기업 정책'에 대한 기대가 컸다. 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정부는 기업인이 기업 활동을 하는 데 장애가 최소화되도록 정말 총력을 다할 생각이다. 친기업·반기업 이런 소리를 하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강조하며 이런 기대는 한층 커졌다.
그러나 정작 정책은 반대 방향으로 추진됐다는 것이 재계 지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때리고 보자'식 엄벌행정이다. 이들의 무리한 조사, 대규모 과징금 부과에 따른 기업 활동 위축은 실적에 악영향을 미쳐 고용까지 쪼그라들게 했다는 분석이다.
국내 한 대형 법무법인 관계자는 "공정위의 전방위적인 조사 때문에 기업들이 납작 엎드려 있는 상황"이라며 "무리한 조사가 워낙 많아 나중에 행정소송에서 공정위가 패소할 사건이 많아 결국 승자는 (행정소송에서 기업을 대리하게 될) 법무법인이 될 것이란 얘기마저 나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른바 '재계 저승사자'라고 불렸던 공정위 조사국이 내달 중점조사기획단으로 부활하면 기업 경영 환경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업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노동 정책도 일자리 창출을 저해하고 있다. 우선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2·3조) 시행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커진 것이 문제로 꼽힌다. 사용자 범위 확대로 많은 기업이 무분별한 단체교섭 요구에 몸살을 앓고 있으며, 관련 대응 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법정 정년연장도 기업에 큰 부담이다. 재계는 정년연장 혜택을 받는 고령 근로자가 많아지면 청년 취업난이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지난 2016년 법정 정년을 60세로 연장한 후 2024년까지 고령 근로자가 1명 증가할 때 청년 근로자는 0.4~1.5명꼴로 줄었다. 연공형 임금체계 등을 유지한 상태에서 정년을 연장하면서 기업이 비용 절감을 위해 신규채용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들은 직원을 '안 뽑는' 것이 아니라 이 같은 각종 규제로 인한 경영 위축 때문에 '못 뽑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치열해지는 글로벌 인재 확보 경쟁을 고려하면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채용에 나설 상황이지만 경영 불확실성이 워낙 큰 상황이라 채용의 초점을 '규모'보다 '밀도'에 맞출 수밖에 없으며, 이런 상황을 개선하지 않으면 일자리 확대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재계 관계자는 "물론 채용은 사업만 잘되면 규제와 상관없이 추진할 수 있지만 지금은 저성장이 고착화한 상황"이라며 "여기에 각종 규제가 더해지면서 일자리를 늘리기 힘든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