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젊은 수녀가 나이 지긋해 보이는 신부(老神父)에게 “짜증 나게 하시네”라고 말한다. 당황하는 신부만큼이나 이를 지켜보는 이도 생경한 광경에 눈이 동그래진다. 수녀복을 입은 상태로 틈만 나면 담배도 피운다. 분명 수녀인데 말과 행동에 거침이 없어 살갗에 닿는 느낌이 거칠다.
영화 ‘검은 수녀들’에서 송혜교가 연기한 유니아 수녀는 이렇듯 관념에서 벗어난 얼굴을 하고 있다. 무당과 친구 먹고 함께 일도 하는 범종교적인 친화력에, 악령의 저주 섞인 말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강단이 있다. 예사로운 눈으로 바라보면 유니아 수녀는 불량에 어울리는 존재다. 하지만 비상한 눈으로 바라보면 유니아 수녀는 비범한 존재다. 강질의 얼굴로 툭툭 던지는 말마다 카타르시스를 안기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수녀님 유니아는 송혜교를 만나 온전하게 형상화됐다. 재미와 서스펜스 가득한 ‘검은 수녀들’의 완전함은 송혜교의 얼굴로부터 온다.
24일 개봉하는 ‘검은 수녀들’은 제목이 낯익다. 한국 오컬트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검은 사제들’(2015)의 속편이다. ‘검은 사제들’이 신부들의 구마를 그렸다면, ‘검은 수녀들’은 구마 행위의 주체를 수녀로 옮겼다. 강력한 악령에 사로잡힌 소년을 구하기 위해 수녀가 금지된 의식에 나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송혜교가 연기하는 유니아 수녀는 그 금지된 행위를 가장 격렬하게 끌어안은 인물이다.
“제가 연기한 유니아는 흔들림 없고 두려움 없는 인물이었어요. 유니아는 어릴 때부터 영적인 기질이 남달랐고, 일찍이 그런 것(자신이 다르다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인정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단단한 삶을 살 수 있던 인물이죠. 그렇기에 희준(문우진)에게 깃든 악령도 두려워하지 않았을 거로 생각해서 대립 과정이 더 단단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흔들리는 모습이 이 캐릭터의 매력을 떨어트린다고 해석했거든요. 극 중 유니아의 스승이 김신부(김윤석)이기 때문에 그에게 배우고 봐온 게 있을 테니까 악령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게 자연스러웠을 거라고 생각해요.”

송혜교의 스크린 나들이는 ‘두근두근 내 인생’ 이후 10년 만이다. ‘검은 수녀들’은 전 국민을 송혜교의 복수극에 참여하게 만든 메가 히트작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의 차기작이기도 하다. 그간 ‘로맨스 여왕’으로 불렸던 송혜교는 ‘더 글로리’로 장르물을 접하고 커다란 재미를 느끼며 운명처럼 ‘검은 사제들’과 만났다.
“모든 작품이 인연이 따로 있는 것 같아요. ‘더 글로리’ 끝내고 사랑 이야기로 돌아오고 싶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러다 보니 장르물 위주로 시선이 갔어요. 제가 원래 소설도 실화를 더 좋아해요. 오히려 SF나 판타지 영화에 흥미를 잘 못 느꼈는데 ‘검은 수녀들’은 대본을 보는데 장면이 상상되면서 엄청 재밌는 거예요. ‘검은 수녀들’은 오컬트 영화지만 드라마가 더 세다고 생각해요. 신념이 닿아 한 아이를 살리기 위한 목적 하나로 달리는 두 여성의 모습이 정말 좋았어요. 다른 오컬트 영화와는 결이 살짝 다르죠.”
현장은 즐거웠다. 송혜교는 ‘검은 수녀들’ 현장을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나아감의 터전으로 여겼고, 그것을 어렵게 대하며 자신의 연기를 의심하고 상대 배우와 스태프에 더 발맞춰 갔다. 워맨스 호흡을 보여주는 미카엘라 수녀 역의 전여빈과도 “대화가 정말 잘 됐다”라고 할 정도로 신마다 뜨겁게 호흡했고, 부마자 희준 역의 문우진과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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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연기할 때 앞에 놓인 배우에 따라 상대적이에요. 앞에서 어떻게 연기해 주느냐에 따라서 연기가 나와요. 희준 역의 우진이와 연기할 때 앞에서 정말 완벽하게 연기를 잘 해줘서 저도 자연스럽게 에너지가 나왔어요. 그래서 늘 고마웠어요. 우진이의 연기에 감흥을 받고 제가 연기하면, 우진이도 제 연기를 받아내서 또 연기하고 그랬어요. 서로 에너지를 잘 끌어줬죠.”

‘검은 수녀들’에서 꽤 화제가 된 장면 중 하나는 바로 송혜교의 흡연 신이다. 유니아 수녀는 첫 장면부터 담배를 물고 등장할 정도로 애연가다. 반면 유니아 수녀를 연기한 실체 송혜교는 비흡연자다. 대본을 읽고 유니아의 애연가 설정에 잠시 고민하기도 했다는 그는, ‘검은 수녀들’ 그 어느 장면에서도 가짜이고 싶지 않아 크랭크인 6개월 전부터 담배를 배우고 촬영하는 동안에 실제 흡연을 했다. 물론 지금은 끊었다.
“처음에 대본을 받고서 흡연 신이 있기에 조금 고민했어요. 비흡연자였기 때문에 빼달라고 할지 고민도 했었는데 그게 빠지면 유니아를 설명하는 데 있어 아쉬운 부분이 많더라고요. 유니아는 늘 봐온 수녀님들과는 다른 인물이자 자유롭고 또 교단을 거스르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성격을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담배 피우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서 용기를 냈죠. 첫 신부터 담배 피우는 장면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가짜로 하면 진정으로 연기한 모든 유니아가 다 가짜가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촬영하기 6개월 전부터 배우고 피웠죠. 지금은 안 피우고, 영화를 찍는 동안에만 피웠어요.”
송혜교는 흡연 외에도 극에서 냉소적으로 욕설도 뱉고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도 과감하게 보여준다. 송혜교는 유니아 그 자체로 존재하기 위해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을 더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끄집어냈다. 이러한 이질감을 생동으로 격렬하게 끌어안은 송혜교의 분투로 영화는 극적인 재미를 갖는다.

“작품 할 때는 예뻐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어릴 때 멜로를 찍을 때는 예뻐 보여야 감정 이입이 되니까 그게 필요했지만 지금은 연기할 때 얼굴은 신경 쓰지 않아요. 되레 그렇게 거칠게 표현된 게 캐릭터에 더 맞는 것 같아요. 연기할 때는 외적인데 관심이 없고 행사갈 때나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공들여 꾸미고 가죠. 욕 대사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해 보지는 않았지만 살면서 좀 자연스럽게 는 것 같아요(웃음).”
‘더 글로리’에 이어 ‘검은 수녀들’로 또 한 번 도전의 영역에 발을 들인 송혜교. 여전히 연기는 어렵지만 그 도전을 멈추고 싶지 않다고 고백했다. 그 과정에서 실패하더라도 말이다. 실패할 용기의 또 다른 이름은 성공과 성장이다. 그가 왜 28년 동안 톱배우였는지 그 이유를 느끼게 했다.
“사실 전 아직도 연기가 너무 어렵거든요. 어릴 때는 막연히 30, 40대가 되면 연기를 가지고 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웃음). 그런데 그 나이가 됐는데도 여전히 연기가 어렵더라고요. 제가 나이들 듯이 캐릭터도 나이를 먹잖아요. 그러다 보니 계속 공부해야 하더라고요. 제게 있어 연기는 앞으로도 계속 어려울 거예요. 하지만 계속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고 싶어요. 실패할지언정 계속이요. 저만 생각하고 말하자면 안 해봤던 역할을 실패하더라도 계속 도전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