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이혜승, 작가 하이선으로 건네는 환대와 응원 [인터뷰]

모델 이혜승, 작가 하이선으로 건네는 환대와 응원 [인터뷰]

이덕행 ize 기자
2026.07.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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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이혜승이 사진작가 하이선으로 변모하여 지난 5월 사진전 '문 밖의 나'를 개최하고 제주 전시까지 성황리에 마쳤다. 하이선은 모델 활동 당시의 거리감을 허물고 관객에게 다정한 환대를 건네기 위해 전시장 문턱을 낮추는 데 집중했다. 그는 온라인 전시와 음성 가이드를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연결감을 전하며 창작 활동을 이어갈 계획을 밝혔다.
사진작가 하이선/사진=앨컴퍼니
사진작가 하이선/사진=앨컴퍼니

'쉽게 소비되지 않는 얼굴'. 오랜 시간 하이패션 신을 주름 잡던 모델 이혜승을 설명하는 수식어였다. 때로는 도달하기 힘들 만큼 서늘하고 완벽한 피사체로 존재했던 그가, 이제는 카메라 뒤로 자리를 옮겨 세상과 사람을 너르게 끌어안는 사진작가로 변모했다. 렌즈 앞의 치열함과 렌즈 뒤의 따뜻함을 자유롭게 오가며, 위축된 채 표류하는 이들을 향해 정성스러운 '환대'를 준비하고 있는 이혜승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5월 하이선이라는 이름으로 개최한 사진전 '문 밖의 나'는 이후 제주에서 뜻깊은 여정을 이어갔다. 모든 전시 일정을 성황리에 마친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앨컴퍼니 사옥에서 아이즈(IZE)와 만난 하이선은 렌즈 안팎을 오가며 치열하게 고민해 온 흔적들을 차분한 목소리로 풀어놓기 시작했다.

보통 '사진전'이라고 하면 하얀 벽에 작품이 걸려 있고, 관객들은 그저 조용히 감상만 하고 돌아가는 차분한 분위기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때로는 이런 엄숙함이 관객의 발걸음을 머뭇거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하이선은 단순히 작품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전시장의 문턱을 낮추고 찾아온 이들에게 다정한 환대를 건네는 데 가장 큰 중점을 두었다.

"사진전을 기획하면서 가장 우선시했던 것은 '전시장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었어요. 일반적인 전시 공간에 갔을 때 관객이 느낄 수밖에 없는 묘한 긴장감이 있잖아요. 저는 그 긴장감을 유도하기보다는 혼자 오시더라도 내 집 사랑방처럼 아늑하고 편안하게 느끼길 바랐어요. 디지털 파일로 무한 복제되고 쉽게 휘발되는 시대에, 서촌이라는 공간에서 차를 마시고 시간을 보내는 물리적인 만남과 무형의 가치에 더 집중하고 싶었어요."

'문 밖의 나' 서촌 현장/사진=앨컴퍼니
'문 밖의 나' 서촌 현장/사진=앨컴퍼니

'하이패션 모델'이라는 수식어는 당당하고 다가가기 힘든 아우라를 지닌 피사체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러한 '거리감'을 허물고 관객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려는 소박한 진심이 묻어났다. 비록 서촌의 작은 공간에 직접 닿지는 못했더라도, 인터뷰 내내 질문 하나하나에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답변하는 그의 모습에서 이혜승식 환대의 온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하이패션 모델은 직업의 특성상 대중과 어느 정도 거리감을 담보해야 하는 면이 있어요. 저를 패셔너블하고 엄청나게 당당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사실 저는 스스로 그런 사람이 못 된다고 생각할 때도 있고 겁도 아주 많은 편이에요. 세상에는 문밖으로 나가기가 두렵고 위축되는 분들이 참 많고, 사회가 그런 분위기로 압박을 주기도 하잖아요. 저는 제 전시를 통해 그런 거리감과 편견을 허물고, 소박한 환대를 통해 각자가 지닌 존엄의 가치를 귀하게 느끼실 수 있기를 바랐어요."

'문 밖의 나'는 내면 깊숙이 가로막혀 있던 자아의 일부를 발견하고, 그 문을 나서는 순간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자아의 층위를 의미한다. 하이선은 타인과의 관계 이전에 '나와 나'의 관계에 주목하며, 스스로를 소외시키거나 돌보지 못했던 순간들에 대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진다.

"전시 서문이 사실상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전부예요. 타인의 평가에 지쳐 스스로를 밀어내고 박스 안에 가두는 지점이 우리 모두에게 있잖아요. 그래서 중의적인 제목으로 하고 싶기도 했어요. 자신 안의 문을 발견해서 열어 볼 필요가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실제로 문 밖으로 나서서 겪어봐야 한다는 거죠. 정답을 던지기보다는 내면에서 맞는 답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응원과 지지를 하고 싶었어요."

'문 밖의 나' 제주 현장/사진=앨컴퍼니
'문 밖의 나' 제주 현장/사진=앨컴퍼니

오랜 시간 본명으로 모델 활동을 했던 이혜승은 하이선이라는 이름을 통해 사진작가로서의 자아를 분리했다. 대중에게 이미 잘 알려진 본명 대신 '하이선'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카메라를 잡은 데에는 창작자로서의 뚜렷한 소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모델로 오래 활동했기 때문에 기존의 데이터가 섞이거나 제 얼굴이 드러나는 것을 방지하고, 철저히 제 작업물로만 평가받기 위해 철저히 분리하고 싶었어요. 혜승이라는 이름을 외국에서는 발음하기가 꽤 어려워해서 '하이썽'이라고 부르곤 하는데, 이를 한글로 치환했을 때 적당한 무게감도 있는 '하이선'을 작가명으로 정하게 되었어요."

이름표는 철저히 분리했지만, 렌즈 안팎의 두 자아가 서로 깊은 교감을 나누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카메라 앞의 피사체로 존재할 때와 렌즈 뒤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두 가지 정체성은 그의 안에서 충돌하기보다 예상치 못한 시너지를 내며 스스로의 시야를 훌쩍 넓혀주었다.

"단지 카메라 앞에 서는 모델로만 일할 때는 제 안에 보이지 않는 벽도 많았고 스스로 여러 가지 제약을 걸곤 했어요. 그런데 제가 직접 카메라 뒤에서 피사체를 찍어보니, 현장의 포토그래퍼 실장님들이 왜 그런 디렉팅을 주시는지 그 의도를 깊이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좋은 결과물이라는 공통의 지점을 향해 팀이 다 같이 간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현장이 훨씬 편안해졌고, 앞뒤의 자아가 서로를 가르쳐 주면서 제약과 한계를 넘어 표현의 자유를 얻게 되었어요."

'문 밖의 나' 서촌 현장/사진=앨컴퍼니
'문 밖의 나' 서촌 현장/사진=앨컴퍼니

물론 하이선 역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다정했던 것은 아니다. 과거 사진집을 낼 당시만 해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굉장히 '수직적'이고 냉철했다고 그는 회고했다. 스스로 따뜻한 사람이고 싶으면서도 렌즈 속 세상을 차갑게 담아내던 내면의 모순 속에서, 점차 힘을 빼고 지금과 같은 '수평적'이고 다정한 시선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겪었다.

"적극적으로 창작 활동을 하려고 사진집을 낸 적이 있어요. 그 때 깨달은 뭔가가 있어요. 저는 수평적이고 따뜻한 사람인데 자꾸 냉철한 사람이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모순을 느꼈어요. 모든 일은 명암이 있는데, 저는 부정적인 것을 탈피하려고만 하더라고요. 다 쓸모가 있는데 말이죠. 왜 그런 식으로 봤을까 생각하다 보니 해결이 됐어요. 이런 깨달음을 주변분들에게라도 선물하고 싶었어요."

나아가 단편 독립 영화 연출에 도전하고, 도자기를 빚는 등의 사진 밖 매체로의 확장은 그에게 더 큰 내적 변화를 선사했다. 숱한 실패와 시도 끝에 얻어낸 지금의 단단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타인과 나누고 싶다는 것이 그의 덧붙인 진심이다.

"제 돈과 시간, 타인의 수고까지 투자해 단편 독립 영화를 연출해 보면서 많은 것들이 깨졌어요. 결과적으로는 망했지만, '실제로 실패라는 건 없구나, 단지 결과물을 지금 쓰지 못할 뿐이구나'라는 걸 체험하며 물길이 트이는 듯한 엄청난 자유를 얻었어요. 억지로 무언가를 해내는 게 아니라, 어린아이가 흙을 만지듯 망가져도 그저 빚어보는 도자기 작업을 통해 힘을 빼는 연습도 많이 하게 됐어요."

우리 사회는 흔히 한 우물을 깊게 파고 실수 없이 빠르게 성장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지만, 그는 획일화된 사회적 기준에 쫓기기보다 자신만의 리듬을 잃지 않는 편을 택했다.

"어릴 적엔 하나만 파고들어야 성공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하다 보니 실수하면 안 된다는 압박에 쫓기듯 비장해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100이나 0은 없다고 생각해요. 획일화된 미덕에 경계심을 갖고, 다양성을 추구하며 각자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스스로의 한계를 파악하고 잘 들여다보며 자기를 챙기는 사람이, 결국 넓은 의미에서 타인과 가족에게도 도움이 되는 이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문 밖의 나' 서촌 현장/사진=앨컴퍼니
'문 밖의 나' 서촌 현장/사진=앨컴퍼니

서촌에서 시작해 제주를 거친 이혜승의 환대와 응원은 물리적인 공간의 한계를 넘어 온라인으로도 확장될 예정이다. 소속사 앨컴퍼니(Aile Company)와 3D 공간 기술 스튜디오인 자회사 스테이지앨(stageAile)이 협업하여 온라인 전시를 마련한 것이다.

"디지털은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흥미로웠고, 도면이나 작품 배치까지 직접 검수하며 오프라인의 느낌을 꼼꼼히 구현했어요. 다만 오프라인에 찾아와 주신 분들과의 약속이 있으니, 이 디지털 전시는 오프라인 전시 기간이 완전히 끝난 이후에 이어가려고 했어요."

하이선은 직접 녹음한 국·영문 서문 음성 가이드를 지원하여,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작가의 철학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예정이다. 비록 오프라인에서의 직접적인 환대는 아닐지라도 또 다른 방식으로 방문객들을 환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하이선이 세상에 전하고 싶었던 위로와 연결감을 상징했다.

"동물이나 식물,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겉보기에 달라 보여도 사실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고 다 연결되어 있어요. 저도 불특정 다수를 늘 무서워하는 사람이지만, 환대를 드리고 싶은 열망이 두려움을 이겼기에 밖으로 나왔습니다. 제가 대단히 용감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가만히 멈춰있는 것이 더 두려워서 한 걸음 움직인 것뿐이에요. 그러니 무서워 말고 문 밖으로 나와보세요.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앞으로의 행보를 묻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 역시 거창하지 않았다. 주어진 순간마다 묵묵히 정성을 다해 빚어내겠다는 그의 담담한 다짐은, 모델 이혜승뿐만 아니라 사진작가 하이선이 그려갈 다음 궤적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잘할 자신이라기보다는 정성 들이는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많이 표현해 보고 싶어요. 그래서 많은 분들께 감흥을 드리고 싶은데 비교적 긍정적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로 잘 열심히 살아보고 싶어요. 나를 살피고 달래가면서 영향을 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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