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의 친일 관련 가족사 논란 탓에 제대로 평가받기 힘든

기억상실, 조직폭력배, 첫사랑을 기억하는 남자주인공의 순애, 예쁘고 발랄한 여자주인공, 출생의 비밀. 어쩌면 이제는 너무 많이 봐서 익숙하다 못해 진부하게 느껴지는 소재들이다. 하지만 이토록 비슷한 재료가 대중문화 시장에서 계속해서 호출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만큼 쏠쏠한 재미를 보장하는 클리셰가 없기 때문.
다만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자꾸 먹다 보면 입에 물리기 마련이다. 아는 맛이 익숙함을 넘어 식상함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흔히 쓰이는 소재일수록 그것을 다루는 이들의 능력이 중요하다. 이미 수없이 소비된 재료라면 그만큼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같은 재료를 손에 쥐더라도 어떤 요리법을 택하고,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음식이 탄생한다. 창작자의 연출과 서사, 배우들의 연기, 수많은 스태프들의 협업이 촘촘한 앙상블을 이룰 때 비로소 흔해 보였던 소재에도 새로운 생명력이 깃든다.
지난 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이런 엿같은 사랑’은 기억상실에 걸린 검사 고은새(하영)와 자신이 남자친구라고 주장하는 복싱 코치 장태하(정해인)의 동거 생활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다. 제목만 보면 어딘가 거칠고 발칙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의외로 풋풋하다. 두 사람의 사랑은 엿처럼 달고 끈끈하니, 한 번 입에 붙으면 떼어내기 어려운 엿가락처럼 어느새 시청자를 찰싹 붙잡는다.
매력의 중심은 클리셰들을 모아놨는데 재미있게 엮은 모지혜 작가의 필력이다. 분명 식상한 소재들을 나열했는데, 이를 풀어내는 솜씨가 수준급이다. 인물의 행동, 사건의 전개 하나하나가 나름의 인과관계를 갖추고 있다. 그렇다고 과한 떡밥을 늘어놓고, 뒤늦게 회수하는 방식도 아니다. 각 캐릭터에게 부여된 사연들이 충분하니 전체적인 서사에도 자연스럽게 개연성이 붙는다.

태하와 은새의 관계도 그렇다. 왜 태하가 기억상실에 걸린 은새의 곁에 머무는지, 그 감정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설명한다. 전직 조폭이라는 태하의 과거, 다소 특이해 보이는 은새의 버릇들도 이해하게 만든다. 심지어 빌런 포지션인 조폭 보스 백상길(허성태)의 광기마저 납득시킨다. 덕분에 뻔한 소재에서 비롯되는 기시감이나 로맨틱 코미디 특유의 유치발랄함이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가끔 B급 정서를 품은 연출이 등장하더라도 작품 전체의 결을 해치지 않고 부드럽게 녹아든다.
실로 성실한 작법이다. 블록버스터라는 이름 아래 설명 없는 설정들이 난무하고,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이야기를 전개해 결국 물음표만 남는 몇몇 작품들과 비교한다면, ‘이런 엿같은 사랑’의 착실한 서사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특히 중반부 태하와 은새가 서로를 오해하며 갈등을 빚는 과정은 이 작품이 가진 유기적인 서사의 정점이다. 갑작스레 사건을 터뜨리는 것이 아니다. 차곡차곡 쌓아온 관계와 사건이 물 흐르듯 갈등으로 이어진다. 두 사람은 각자의 입장에서 충분히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고, 시청자들은 그들의 사정을 헤아린다. 하여 태하와 은새의 사랑도, 그리고 안타까운 마음도 십분 이해하고 몰입할 수 있다. 이미 뿌려둔 실마리들이 제때 제자리로 돌아와 하나의 감정으로 터져 나오는 과정에서, 이 작품의 영리한 설계가 드러난다.
독자들의 PICK!

이러한 노력 덕분에 얼핏 보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로맨틱 코미디와 누아르의 조합도 제법 괜찮은 하모니를 이룬다. 전직 조폭이라는 태하의 배경은 두 장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여기에 복싱까지 소재로 활용하면서 정해인의 액션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달콤한 로맨스만으로는 채우기 어려운 극의 긴장감을 누아르와 액션이 보충하고, 반대로 지나치게 무거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로맨틱 코미디가 가볍게 풀어낸다.
물론 ‘이런 엿같은 사랑’은 어디까지나 로맨틱 코미디다. 결국 이 작품의 중심에는 남녀의 사랑놀음이 있고, 그렇기에 두 주인공의 연기와 매력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정해인은 이미 로맨틱 코미디에서 흥행 보증수표에 가까운 배우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자신의 매력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전체의 중심을 잡는데 주력한다. 일편단심 지고지순 장태하처럼 상대역을 탄탄하게 뒷받침한다.
반면 ‘이런 엿같은 사랑’에 다양한 색을 칠하는 건 하영의 몫이다. 넷플릭스 ‘이두나!’, ‘중증외상센터’, ‘월간남친’ 등을 통해 시청자에게 눈도장을 찍었던 그는 이번 작품에서 주연으로 극 전체를 이끌어 간다. 정해인과 러브라인을 형성하고, 조금씩 돌아오는 기억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또한 엿마을 주민들과 티키타카로 웃음과 눈물까지 책임진다.

화려한 스타 검사에서 촌구석 예비 새색시로 변하는가 하면, 기억상실이라는 아픔을 극복하고, 자신의 처지를 적극적으로 타개하려 한다. 또한 남친이라 주장하는 장태하를 의심하고 밀어내다가도, 그 순애보에 반하면서 먼저 ‘합방’을 요구하는 직진 테토녀로 진화한다. 이 다채로운 캐릭터를 만난 것이 배우에게 있어 행운이며, 하영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이런 호연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된 하영의 친일 관련 가족사 탓에 하영을 바로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또한 '이런 엿같은 사랑' 흥행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열심히 작품을 만든 제작진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모처럼 재미있는 로맨틱 코미디가 나왔다. 단단한 엿가락도 녹여낼 무더운 이 여름날, 많은 생각할 것 없이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면 어느새 태하와 은새의 사랑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휴가를 맞아 잠시 일상을 내려놓은 이들에게도, 방학을 맞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도 더없이 어울리는 작품이다.
권구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