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의 천만관객 동원한 애니메이션 뮤지컬 무대로 국내 초연
엘사의 고립감과 두 자매의 관계회복 더욱 드라마틱하게 묘사

‘뮤지컬 '겨울왕국'의 ‘렛 잇 고(Let It Go)’ 장면에서 객석의 환호가 터졌다. 자신의 마법 능력을 두려워해 이를 억누르며 살아온 엘사가 산으로 들어간 뒤, 속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능력과 존재를 긍정하며 자신만의 얼음 왕국을 세우는 노래다. 엘사의 손짓에 따라 얼음 기둥이 솟아오르고, 마침내 웅장한 얼음성이 완성된다. 엘사가 ‘렛 잇 고’를 힘차게 외치는 순간, 짙고 무거운 색조의 의상은 에메랄드빛이 감도는 화려한 드레스로 변신한다. 노래의 절정과 맞물린 마술 같은 의상 전환은 애니메이션의 감동을 넘어서는 라이브 무대의 백미로, 객석에서는 거의 매회 환호가 터져 나온다.
2014년 국내 개봉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은 당시 전 세계 애니메이션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으며, 국내에서도 애니메이션 최초로 1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특히 대표곡 ‘렛 잇 고’는 신드롬이라 부를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각종 음원 차트를 석권한 것은 물론 수많은 패러디 영상이 화제를 모았고, 말을 갓 뗀 아이들조차 영어로 “렛 잇 고”를 외칠 정도였다. 디즈니 시어트리컬은 영화 개봉 전부터 뮤지컬로서의 가능성을 검토했다. 이후 2017년 덴버에서 트라이아웃을 거쳐 2018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다.

이미 충분한 성과를 거둔 작품의 각색작 앞에서는 머뭇거리게 된다. 각색 과정에서 원작의 감동이 훼손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동화적인 판타지가 강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현장감이 중요한 무대예술로 옮긴다고 했을 때 그러한 우려가 더욱 컸다. 그러나 디즈니는 첫 작품 '미녀와 야수'(1994)부터 예상을 넘어서는 무대를 선보였다. 정상급 예술가들이 참여한 무대와 의상은 마법 같은 동화 속 이야기를 눈앞에 구현했다. 야수가 왕자로 변신하는 장면은 정교한 일루전 장면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디즈니의 두 번째 뮤지컬 '라이온 킹'은 디즈니의 브로드웨이 시대가 열렸음을 알렸다. 작은 미어캣에서 코끼리까지 다양한 크기의 동물들이 등장하는 '라이온 킹'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 가장 무대화가 어려운 작품일 것이다. 디즈니는 인형과 가면, 그림자극 등 가장 원초적인 연극 방식을 활용해 애니메이션을 넘어서는 감동을 만들어냈다. 코뿔소와 치타, 하이에나, 기린, 코끼리, 물새 등 수많은 사바나의 동물들이 무대를 가득 채우는 뮤지컬의 첫 장면은 디즈니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의 새로운 신화로 자리 잡는 신호탄이었다.

뮤지컬 '겨울왕국'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최신 히트작을 옮긴 뮤지컬이다. 뮤지컬 '애비뉴 Q', '북 오브 몰몬'으로 토니상을 수상한 로버트 로페즈와, 애니메이션 '코코'의 ‘리멤버 미’ 등을 작업한 크리스틴 앤더슨 로페즈가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 이어 뮤지컬 음악에도 참여했다. 이들은 애니메이션 음악을 그대로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 곡을 대형 뮤지컬 작품에 맞게 확장시켰다. 이들은 영화에 없던 12곡의 신곡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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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버전은 영화의 중심 플롯이었던 엘사의 고립감과 두 자매의 관계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발전시켰다. 엘사가 평범한 꿈을 꿈꾸면서도 자신의 마법 능력으로 인한 미래를 두려워하는 노래 ‘위험한 꿈(Danerous to Dream)’과 자신의 능력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괴물(Monster)’을 통해 엘사의 내적 갈등을 심화했다. 그리고 안나와 엘사의 듀엣곡 ‘잃고 싶지 않아(I Can't Lose You)’는 서로를 밀어내면서도 잃고 싶지 않은 모순된 심정을 담아냈다. 애니메이션에서 압축적으로 제시됐던 엘사의 감정 변화를 단계적으로 구체화하면서 감정에 깊이를 더해갔다.

작품은 자매의 감정을 세심하게 발전시키는 한편 대형 뮤지컬에 걸맞은 볼거리를 강화했다. 애니메이션의 초중반에 등장하는 ‘렛 잇 고’를 1막 마지막에 등장하는 프로덕션 넘버로 확장시켜 작품을 대표하는 장면으로 재구성했다. 애니메이션에서 짧은 해프닝으로 지나가는 오큰 가족의 사우나 장면을 2막을 여는 쇼스타퍼(Show Stopper)로 발전시켜 대형 뮤지컬에서 기대하는 신나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2막 오프닝 곡인 ‘휘게(Hygge)’는 코러스들의 화려한 군무 곡으로 수건과 나뭇가지로 가린 사우나 손님들의 유쾌하고 코믹한 넘버로 극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뮤지컬 '겨울왕국'서도 디즈니 뮤지컬의 특징인 마법 같은 무대예술이 빛났다. ‘렛 잇 고’장면은 미디어 파사드를 활용해 눈의 왕국이 창조되는 장면을 놀랍게 연출하였고, 안나의 설산을 헤매는 장면은 실제 세트와 영상, 조명을 결합해 험난한 여정을 입체감 있게 만들어냈다. 그리고 안나가 엘사를 대신해 희생하며 얼어붙는 장면은 앙상블의 움직임과 영상 효과를 극대화해 안나가 거대한 얼음 조각으로 얼어붙는 장면을 생생하게 연출해 냈다.
뮤지컬 '겨울왕국'는 무대만의 서사와 매력을 더하는 다양한 변화를 통해 익숙한 작품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무엇보다 원작에서 사랑받았던 음악과 장면을 눈앞에서 확인한다는 현장성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을 전한다.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풍성한 오케스트라 연주로 ‘겨울왕국’의 명곡들을 감상하고 살아있는 엘사와 안나, 크리스토프, 한스 그리고 연극적으로 표현된 올라프와 스벤을 만나 지금과 다른 '겨울왕국'을 체험하게 된다.
박병성(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