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멕시코 로스카보스에서 G-20 정상은 유로존이 중심이 되어 시스템 개혁과 자구노력을 촉구하고 IMF의 재원을 확충하는 등 원칙적인 선언을 내놓았다. 당초 기대와는 달리 유럽 재정위기 해결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안은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시장에 실망을 안겨주었다.
다만, 긴축 일변도에서 벗어나 성장을 함께 강조한 것은 바람직한 방향전환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이제 유럽문제의 해결은 이달 말로 예정된 EU 정상회담으로 떠넘겨지게 된 셈이다. 유럽국가 너희들이 저지른 일이니 너희들끼리 잘 협력해서 해결해보라는 이야기이다.
이와 같은 회의 결과는 지난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사태로 촉발된 세계금융위기에 G-20가 대처하던 방식과는 너무 거리가 있어 보인다. 충분한 사전 예고도 없이 2008년11월 미국 워싱턴에 급작스레 모인 G-20 정상들은 금융기관의 반강제적 자본 확충, 예금보장확대방안을 합의했고 금융시장안정을 위해서는 동원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여기에는 재정지출의 확대,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한 적극적인 시장 개입, IMF의 재원확충 등이 포함되었다. 위기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정책대응이 모두 제시된 셈이다. 시장은 긍정적으로 반응했고 이를 계기로 금융 위기는 점차 안정의 국면으로 방향을 잡게 되었다. 이로써 G-20는 국제 경제 이슈를 논의하여 해결하는 가장 효율적인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고, 2010년 정상회담을 개최한 우리나라도 그 국제적 위상이 크게 높아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G-20의 위상이 전만 못하다는 평가다. 물론 지금의 여건이 2008년에 비하여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그 당시에는 미국이 전적으로 총대를 메고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었지만 지금 독일보고 그 역할을 하라고 요구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또한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도 지난 2008년의 위기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무엇보다도 실제로 각국의 국내 정치적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그동안 유럽 당국이 취한 조치들을 보면 지나치게 안이하고 낙관적인 전망에 입각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 그리스 총선에서 연립정부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구성되고, 스페인에 구제금융이 집행되고, ECB가 지원을 확대하면서 장기적으로 금융동맹과 재정협약이 약속된다면 시장의 신뢰가 회복되어 한숨 돌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 그런 느슨한 인식이 놀라울 뿐이다.
이는 대단히 부적절하고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위기의 본질을 직시하고 EU 차원의 금융동맹과 예금보장,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재정동맹, 그리고 유로본드(Eurobond) 발행과 같은 최소한의 실질적인 조치가 다음주 EU 정상들 간에 합의되지 아니하고는 시장의 방향을 안정 쪽으로 틀기 어려워 보인다. 더욱이 문제는 이런 조치가 내려져야할 시간적 여유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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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개최된 G-20 회의를 계기로 중요한 국제경제 이슈에 대한 G-20 자체의 문제해결능력에 한계가 드러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G-7은 이미 역사에 묻혀버렸고, G-20는 제대로 작동될 수 있을는지 하는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G-20가 과거의 G-7을 대체하여 세계 경제문제를 원만히 해결해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프레임워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것이 바로 엊그제 일인데, 이제 세계는 바야흐로 국제적 리더십의 공백 상태, 이른바 G-0의 시대로 급속히 빠져들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국제 정치 컨설턴드인 이안 브레머는 이런 상황을 '모든 국가의 각자 도생(Every Nation for Itself)'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국제질서 논의에 더욱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대외 위기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자체 내부역량을 착실히 키워나가야 한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국제시장에 참여하여 함께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비상한 각오로 새로운 전략과 지혜를 모색하고 한 단계 높은 차원의 리더십을 발휘해 대처해나가야 할 중요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