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당국이 도입을 검토 중인 거시건전성 관리부담금은 가계부채를 '양적관리' 위주에서 가격규제로 일부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연간 늘릴 수 있는 가계대출 규모를 사전에 정하는 총량규제는 강력한 공급 억제책이지만 청년, 무주택자 실수요자의 반발을 사고 있다. 다주택자나 고가주택 등에 부담금을 부과하는 가격규제는 수요를 억제하면서 한정된 대출재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거시건전성 관리부담금 제도가 도입되면 103조원에 육박하는 다주택자 대출이 규제 사정권에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월 기준 다주택자 대출 잔액은 102조9000억원(전세대출, 이주비·중도금대출 포함)에 달한다. 지역별로 서울 20조원, 경기 31조9000억원 등 수도권에서만 51조9000억원으로 전체의 절반(50.4%)이 몰려 있다. 특히 고가 주택이 많은 강남3구(강남구·서초구·송파구)와 강동구, 성동구, 양천구에 다주택자 대출이 집중돼 있다.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대출규제 강화에 따라 지난 2024년 이후 다주택자에 대한 신규 주담대를 내주지 않고 있으나 그 전에 나간 대출은 만기가 최소 30년 이상으로 유지되고 있다. 금융당국이 만기가 도래한 다주택자의 대출을 전격 회수하는 강력한 조치를 지난 4월 시행했으나 실제 규제 효과가 미미한 근본 이유다.
거시건전성 관리부담금의 부과 수준에 따라 다주택자의 비용 부담이 대폭 늘어날 수 있다. 예컨대 주담대 금리 연 5%에 더해 2% 수준만 추가해도 연간 수천만원의 비용이 추가 발생한다. 금리 상승기에는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는 만큼 다주택자가 대출을 상환하거나 보유 주택을 매도할 유인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한정된 대출 재원이 다주택자가 아닌 실수요자에게 재분배되는 효과도 기대된다.
가계대출 총량규제로 인한 부작용도 줄일 수 있다. 금융당국은 올해 연간 늘려야 하는 가계대출 총량을 전년 대비 1.5% 묶어놨다. 이미 대출 한도가 부여된 마이너스통장에서 '빚투'(빚내서 투자)로 인한 신용대출이 폭증하자 은행들은 실수요자가 있는 주담대를 조이는 쪽으로 총량규제에 대응하고 있다. 재원이 한정된 탓이다. 이에 따라 청년이나 무주택자 실수요자들의 대출 문턱이 올라가 오는 23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 부동산 토론회에서 성토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주택자의 기존 대출이 회수되면 은행으로서는 실수요자 대출 재원 확보가 가능해진다.
궁극적으로는 대출규제에 '양적' 관리가 아닌 '가격 규제'가 도입되는 데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금리하락기에는 대출금리가 인하되면서 가계부채가 폭증하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 더불어 집값도 상승한다. 거시건전성 관리부담금이 도입되면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인하 여부와 별도로 금융당국이 간접적으로 대출금리 수준을 조절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부담이 늘어나면 부동산에 대한 기대 수익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고가주택, 고액대출의 수요를 억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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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건전성 관리부담금으로 확보한 돈은 청년이나 신혼부부, 중저신용자 등 금융취약층의 금융지원 재원으로 활용하면 선순환도 가능하다. 은행권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대출규제는 은행의 공급만 통제하고 수요를 조절하지 못해 공급과 수요 미스매치가 계속 발생해 왔다"며 "가격 정책이 도입되면 미스매치 문제를 풀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대출자들의 강력한 반발도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