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무슨일이?
과거 오늘, 우리 사회와 세계에서 일어난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 문화, 정치적 변화를 되짚어봅니다. 잊혀진 이야기부터 잘 알려진 순간까지, 오늘의 역사가 전하는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세요.
과거 오늘, 우리 사회와 세계에서 일어난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 문화, 정치적 변화를 되짚어봅니다. 잊혀진 이야기부터 잘 알려진 순간까지, 오늘의 역사가 전하는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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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2일(현지시간) 뉴욕 소더비 경매장. 당시 미술품 경매 사상 역대 최고가가 경신됐다. 낙찰가는 1억1990만달러(약 1439억원), 작품명은 '절규'(Skrik·The Scream). 현대식 미술관 하나를 지을 수 있을 정도의 가치를 지닌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거장 '에드바르 뭉크'다. 생과 죽음의 문제와 인간 존재의 근원에 있는 고독, 불안 등을 다뤘던 그는 1944년 1월23일 "내 몸이 썩으면 그 위에 꽃이 피고 나는 꽃들과 함께 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뭉크가 현재까지도 언급되는 이유는 비극으로 점철된 인생 속에서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모든 열정과 재능을 예술에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그를 거장의 반열에 올리고 그의 작품을 걸작으로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뭉크는 어린 시절 극심한 가난 속에 노르웨이 수도 크리스티아니아(오슬로의 옛 이름)에서 가족들과 함께 다락방을 전전한다. 뭉크의 어머니와 누나 소피아는
1990년 1월22일 대한민국의 민주·진보 진영은 믿고 싶지 않은 소식을 접한다.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민정당)이 제2야당인 통일민주당과 제3야당인 신민주공화당(공화당)과 합당을 선언한 것이다. 제5공화국의 뒤를 잇는 민정당은 1987년 6월 항쟁에도 정권을 잡았지만 계속되는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와 군사정권 청산요구에 기반이 흔들리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특히 이듬해 민정당이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야당에게 정국주도권을 뺏겨 이른 시일내 군사정권 잔재의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예견됐었다. 이에 노태우 정권은 여소야대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이른바 '보수대연합'을 비밀리에 추진해 '구국의 결단'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3당 합당을 이끌어내 거대여당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3당 합당에 대한 민주·진보 진영의 반발은 거셌다. 군사정권과의 야합, 장기집권을 획책한 '정당쿠데타'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당시 통일민주당의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시 평화민
1968년 1월21일 밤 10시10분, 북한군 31명이 서울 종로구 청운동 세검정고개에서 불심검문에 적발됐다. 청와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이들은 갑자기 검문경찰들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단총을 무차별 난사했다. 그곳을 지나던 시내버스에도 수류탄을 던져 일반시민에게까지 피해를 입혔다. 청와대를 기습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려다 미수로 그친 이 일은 김신조 사건 혹은 1·21사태로 불린다. 김신조는 당시 유일하게 생포됐던 인물이다. 그는 생포 후 기자회견에서 "우리 31명의 임무는 박정희 XXX(모가지라는 뜻)를 따러 온 임무고…"라고 답하면서 대한민국을 놀라게 했다. 이 사건은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124부대 소속 31명이 당시 조선인민군 정찰국장인 김정태로부터 청와대 습격과 요인 암살 지령을 내리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대한민국 국군복을 입고 수류탄과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뒤 1월17일 자정 휴전선 군사분계선을 넘어 야간을 이용해 수도권에 잠입했다. 하지만 4일
'필름의 대명사'로 알려진 이스트먼 코닥은 2012년 1월19일 미국 뉴욕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1880년 설립돼 130여년의 역사를 자랑했던 코닥은 휴대용 카메라를 개발하고 달에서 촬영한 첫 사진을 전 세계에 전달하는 데 기여하는 등 필름 카메라 시대를 선도한 회사다. 코닥은 현대식 필름의 초기 형태를 만들어 내고 1883년엔 세계 최초의 감광필름을 양산화하는데 성공하면서 시장을 이끌어나갔다. 1910년대부터 '필름=코닥'이라고 인식될 정도로 회사는 거침없이 성장해갔다. 승승장구를 걷던 코닥은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까지 발명했지만 주력사업인 필름 카메라에 집중하는 우(愚)를 범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디지털 카메라의 대중성을 예측한 일본 카메라 회사들이 보급형 디지털 카메라를 대거 출시하면서 필름 카메라 시장이 급속도로 쪼그라든 것. 결국 필름-디지털 카메라 시장 역전 현상은 코닥의 입지와 수익성을 극단적으로 줄어들게했고 파산까지 이르게했다. 세계적인 기술기업
1982년 1월15일 대전·충청을 연고로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야구팀인 'OB베어스'가 창단했다. 초대단장은 박용민, 초대 감독은 김영덕씨가 맡았다. OB베어스의 유니폼은 흰색 기본바탕에 짙은 남색과 빨간색으로 구성됐었다. 프로 원년 전기리그에선 가슴 양쪽에 OB가 새겨진 버튼형 유니폼을 착용했다가 후기리그에선 가슴전체에 'OB BEARS'라는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착용했었다. OB베어스는 프로야구팀 최초로 어린이 회원을 모집했었는데 그 수가 30만명에 달했다. 타 구단 어린이팬들은 OB팬 친구들의 예쁜 모자와 유니폼에 부러움을 보내곤 했다. 창단 첫 해 OB베어스는 전기리그 1위, 후기리그 2위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삼성라이온즈를 물리치고 프로야구 원년 우승을 일궈냈다. 에이스인 박철순은 그 해 최우수선수에 선정됐었다. 당시 주요 선수들은 △투수 박철순 △포수 김경문(현 NC다이노스 감독) △1루수 신경식 △2루수 구천서 △3루수 양세종 △유격수 유지훤 △좌익수 윤동균 △중견수
서울대 언어학과 과대표였던 박종철(1964~1987)은 1987년 1월14일 고문사했다. 그는 사망 전날인 13일 자정쯤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로 불법 연행돼 잔혹한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을 당했다. 그가 끌려갔던 이유는 '대학문화연구회' 선배이자 '민주화추진위원회' 지도위원으로 수배받고 있었던 박종운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유없이 끌려가 고문을 당했어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었던 전두환 정권 말년의 모습이었다. 박종철은 이어지는 고문에도 대답을 거부했고 결국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숨을 거뒀다. 박종철은 11시45분쯤 중앙대 용산병원으로 옮겨졌고 의사가 검진했을 당시 이미 숨져 있었다. 당시 중앙일보 검찰 출입기자 신성호는 한 검찰 간부가 "경찰, 큰일 났어"라고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에서 단서를 잡고 14일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단독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자 다음날 당시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단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