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민정당·통일민주당·공화당 '3당' 합당 선언


1990년 1월22일 대한민국의 민주·진보 진영은 믿고 싶지 않은 소식을 접한다.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민정당)이 제2야당인 통일민주당과 제3야당인 신민주공화당(공화당)과 합당을 선언한 것이다.
제5공화국의 뒤를 잇는 민정당은 1987년 6월 항쟁에도 정권을 잡았지만 계속되는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와 군사정권 청산요구에 기반이 흔들리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특히 이듬해 민정당이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야당에게 정국주도권을 뺏겨 이른 시일내 군사정권 잔재의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예견됐었다.
이에 노태우 정권은 여소야대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이른바 '보수대연합'을 비밀리에 추진해 '구국의 결단'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3당 합당을 이끌어내 거대여당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3당 합당에 대한 민주·진보 진영의 반발은 거셌다. 군사정권과의 야합, 장기집권을 획책한 '정당쿠데타'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당시 통일민주당의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시 평화민주당 총재인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제1야당 총수 자리를 뺏긴 후 차기 대권 경쟁에서 밀릴 것으로 보고 민정당과의 합당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는 민정당과 합당해 여당의 지위를 얻고 자신의 조직을 총동원해 차기 대권을 잡는다는 구상을 그렸다.
합당 선언 이후 이기택, 김정길, 장석화, 김상현, 박찬종, 홍사덕, 이철, 노무현 등 8인이 3당 합당을 거부하며 김영삼 총재를 따라가지 않고 민주당(일명 꼬마민주당)을 결성했었다.
3당 합당에 대해 민주진영은 "민주진영 분열과 불신을 초래시켰다"고, 진보진영은 "기회주의적 거대보수연합"이라고 비난했다. 결과적으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선택은 본인의 집권을 가능하게 한 '결정적인 정치적 판단'이 됐다.
하지만 3당 합당으로 인해 사건의 책임을 추궁당해야 할 인사들이 거대 보수당의 중심으로 자리잡으면서 정리했어야 할 과거사를 제대로 매듭짓지 못한 결과를 이끌었다는 지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