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길은 내가 만든다' 진로개척자 스토리
진로, 직업, 인생의 다양한 도전과 변화를 담은 실제 이야기들을 통해, 고정관념을 깨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이들의 성장과 선택을 조명합니다.
진로, 직업, 인생의 다양한 도전과 변화를 담은 실제 이야기들을 통해, 고정관념을 깨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이들의 성장과 선택을 조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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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수 2만4000명 국내 유일의 아프리카 정보카페 ‘고고아프리카’의 주인장 문헌규(39)씨. 아프리카를 누비고 다녔을 그를 상상하면 왠지 인디애나존스가 떠오르지만 사실 문씨는 트리플 A형의 완전 소심한 성격에 벌레나 더러운 것을 싫어하는 전형적 도시남자다. 1남 3녀 중 막내아들인 문 씨는 공부도 잘했고 재능이 뛰어난 세 누나들에 비해 평범한 아이였다. 경희대 체육학과 2학년 재학중 입대했고 전역 후 돌아와보니 서울캠퍼스 내 체육학과가 사라지게 됐다. 수원캠퍼스에서 체육학과 전공을 계속하면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문씨는 전공을 경영학으로 바꾸고 서울캠퍼스에 남았다. ◇체육학과로 들어가 경영학도로, 최고 자원기업 입사까지 문씨는 학과 내에서 ‘외딴 섬’이었다. 친구가 없어 외롭기도 했고 정보가 없으니 전공과목 수강신청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사방으로 꽉 막힌 불리한 상황,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돌파구가 필요했다. 때마침 PC와 초고속 인터넷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대학마
2003년 조선대학교 일본학과에 입학한 김영빈씨(31)는 취업 고민을 하지 않았다. 성실히 학점을 관리했고 군 제대 후 경쟁이 치열한 교직과목까지 이수하면서 남은 대학생활만 잘 마무리하면 교사의 꿈은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었다. 평범했던 김씨의 삶은 일본 어학연수를 떠나면서 흔들렸다. 같은 반 연수생들이 전공자인 자신보다 일어를 더 잘한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엔지니어, 미용, 경영 등 다양한 전공을 가진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일본어를 공부하는지 궁금했고, 그들과 대화하면서 가슴속에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진짜 내 삶을 찾고 싶다.’ 이대로 평범하고 안정적인 교사의 길을 갈 것인가, 가슴 떨리는 '내 일'을 찾아 도전할 것인가. 우연찮게 디자인 전공자들을 자주 만나게 되면서 스페셜리스트로서 디자이너의 세계를 동경하게 됐다. 그즈음 컴퓨터공학 전공을 디자인으로 바꿔 일본 타마미술대학(Tama Art University) 대학원에 진학한 지인으로부터 인생의 전환
# “공부가 재미있고 학문에 대한 열정이 크다. 교환학생 경험을 바탕으로 졸업 후 반드시 외국 유학을 갈 생각이다.” 토익 315점, 심지어 토플 점수도 없었던 그가 아일랜드 교환학생 선발 인터뷰에서 밝힌 포부다. # “나는 반드시 이곳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1, 2학기는 실패했지만 한 번 더 기회를 주면 열심히 해보겠다.” 뉴욕대에서 석사과정을 하던 그가 첫 1년간 2번의 학사경고를 받았을 때 학장에게 쓴 이메일 내용이다. 트위터(Twitter) 엔지니어 김창옥씨(31)가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은 2번의 결정적 순간에 던진 승부수다. 놀기 좋아했던 평범한 청년 김씨는 동아대학교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에 합격한 후에도 되는대로 살았다. 1학년 2학기 전공을 선택할 때도 친한 친구를 따라 컴퓨터공학으로 결정했다. 좋아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던 김씨의 삶이 주도적으로 바뀐 것은 복학 후 전공관련 학회에서 신입생 후배들을 가르치면서부터였다. “누군가를 가르치다 보면 내가 뭘 모르는지 명
# 고된 씨름부를 그만둔 열두살 소년은 꿈이 없었다. 중고교 시절 게임에 빠져 희망없는 시간을 보냈다. 스물넷 청년은 늦깎이 대학생이 됐고, SKY대학이나 유학파가 아니면 입사가 힘들다는 글로벌 컨설팅사 딜로이트의 컨설턴트가 됐다. 이후 8년간 좋은 회사, 좋은 대우를 받으며 연봉 1억을 향해 직진만 해가던 그는 어느 날 생뚱맞게도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결심한다. ◇군대에서 시작한 공부…24세에 대학생이 되다=고교시절 윤희욱(35)씨는 꼴찌를 도맡았다. 당구치고 친구들과 놀러다니며 리니지, 스타크래프트, 비보잉에 빠져 지냈다. 영화를 만들겠다는 친구의 꿈 얘기에 얼떨결에 자신은 연기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연기공부를 해본 적도 없이 서울예전, 상명대 등 연극영화과를 지원했지만 모두 탈락했다. 목원대 무역학과 야간과정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게임, 당구, 술로 세월을 보냈다. 1년간 평균학점은 0.53점, 공부와는 담을 쌓은 윤씨는 부모님 권유에 두말없이 입대했다. 운좋게 육군본
# '미국판 카톡' 왓츠앱(WhatsApp)이 2014년 2월 17조원에 페이스북에 인수됐다. 실리콘밸리 역대 최대 규모의 인터넷 서비스 인수합병 사례가 된 왓츠앱이 이름조차 생소하던 스타트업이던 2012년 7월, 공동창업자인 얀 코움(jan koum)이 두번씩 인터뷰를 청하며 함께 일하고 싶어했던 여성이 있다. 현재 왓츠앱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는 이진(31)씨 이야기다. IBM 컨설턴트, 파슨스 패션스쿨 졸업, 왓츠앱 엔지니어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진 이씨는 어린시절을 주로 미국과 한국의 시골마을에서 보냈다. 노스다코타주 파고(Fargo)에서 태어나 초등학생 시절 잠시 강릉에서 살았던 이씨 가족은 아버지가 네브래스카 주립대학 교환교수로 가게 되면서 미국으로 돌아갔다. 1999년 샌프란시스코주립대학에 입학한 언니를 따라 이씨는 드디어 꿈꾸던 도시생활을 하게 된다. 고교시절은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보냈다. 학생회 활동(골프팀 캡틴, 봉사활동 회장, 한인학생회 회장
# 친구따라 잘나간다는 컴퓨터공학과에 들어갔다. 무난히 장학금을 받을 만큼 학점을 받았지만, 적성엔 맞지 않았다. 과동기들 중에는 즐거워서 밤새 코딩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사회에 나가서 과연 내가 저 친구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이후 “나의 길은 무엇일까. 나는 왜 태어났고, 뭘 해야할까”라는 의문이 잇따랐고 방황이 시작됐다. 대기업 연구원 생활을 그만두고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에 도전한 한신환 드림스퀘어 대표(38)에게도 한때 적성에 맞지 않는 공대생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숭실대 컴퓨터공학과 98학번인 한 대표는 당시 공대생들은 잘 가지 않던 캐나다 어학연수를 결심했다. 영어를 배우겠다는 목적보다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서였다. 하지만 8개월여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와서도 진로에 대한 고민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기나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엔지니어가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해보면 어떨까’였다. ◇컴퓨터가 아닌 사
‘7번의 이직과 3번의 창업’ 현재 중국에서 어학연수 중인 이보람씨(35). 평생직장의 신화가 무너진지 오래됐다지만, 이제 30대 중반인 그의 지난 10년간의 삶의 궤적들은 예사롭지 않다. 그는 성균관대에서 문헌정보와 경영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만해도 ‘여자라서 뭘 못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을 정도로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취업전선은 녹록치 않았다. 100여개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면접기회조차 얻기 힘들었다. 무난히 취업에 성공하는 남자동기나 선배들은 보면서 처음 ‘여자라서 안되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여자라서 못할 것 없다'에서 '여자라서 안되는 건가'=이씨는 어렵게 얻은 몇 번의 인터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당당히 졸업전에 대기업에 입사했다. 연수원에서도 이씨의 적극성은 눈에 띄었고, 여성으로는 드물게 마케팅본부에 배치됐다. 하지만 신입사원 정규교육이 끝난 이후 이씨에게 주어진 일은 경리, 문서수발 등이었다. 둘러보니 정말 회사에는 여성상사가 한 명도 없었다
#대학졸업을 한 한기 남겨둔 31세 남자. 그는 졸업 후 IT사업을 할까 생각했다. 병역특례 등을 통해 3년여간 프로그래머 경력을 쌓은데다 나름 인정도 받아 그럭저럭 밥벌이는 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그는 공연기획으로 인생진로를 확 바꿨다. 5년간 공연기획그룹을 만들어 좌충우돌하며 그의 표현대로는 ‘신나게 말아먹었다’. 그는 다시 모바일콘텐츠사업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올해 가장 핫한 모바일 콘텐츠 ‘72초드라마’로 화제의 중심에 선 성지환 ㈜칠십이초 대표(38)의 이야기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그의 이력은 남다른 어린 시절부터 이미 그 싹을 보였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가수가 되겠다며 방황했고, 대학 때는 뮤지컬배우가 되겠다며 음악학원을 기웃거렸다. 그러다보니 서울대 수학과를 10년만에 졸업해야했다. ◇졸업 직전, 진로 직전, 진로를 급선회하다=“졸업하고, IT사업을 하면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평생 그 일
“13년 전 지방대를 졸업했을 때 제가 지금 테슬라 같은 실리콘밸리의 혁신의 상징인 기업에서 일하게 될 줄 알았을까요. MIT로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지방대 출신은 사실 병역특례 자리도 구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실리콘밸리, 아니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기업’ 테슬라의 오토파일롯팀에서 로보틱스 엔지니어로 일하는 조형기(37)씨의 이야기다. ◇'서양박사'에 대한 동경... 유학의 길 오르다 2002년 선문대학교 기계 및 제어공학과를 졸업할 당시 조씨의 꿈은 MIT 유학이었다. 천재의 얼굴을 한 ‘서양박사’에 대한 어린 시절 동경과 호기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방대 졸업장, 토익 760점이라는 현실을 고려하면, 그의 꿈은 남들의 눈엔 한 마디로 '허황된 꿈'이었다. 하지만 조씨는 우여곡절 끝에 병역특례를 마치고, 다시 유학의 꿈에 도전했다. 한번에 갈 수 없다면 돌다리를 하나씩 놓아서 건너가겠다는 계획이었다. 우선 연세대에서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조씨는 “이때부터 문제를 발견하고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