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동반자' 이희호 여사 별세
이희호 여사의 별세를 기리며, 그녀의 삶과 업적, 사회장 절차, 가족과의 이야기, 정치권의 애도, 그리고 여성과 인권을 위한 헌신 등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한 뉴스를 전합니다.
이희호 여사의 별세를 기리며, 그녀의 삶과 업적, 사회장 절차, 가족과의 이야기, 정치권의 애도, 그리고 여성과 인권을 위한 헌신 등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한 뉴스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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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97세로 별세한 이희호 여사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정치적 동반자였다. 김 전 대통령과 격변의 현대사를 함께 했다. 이 여사는 1922년 유복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화여대 전신인 이화여전 문과와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유학을 다녀와 이화여대 사회사업학과에서 강의를 맡았다. 당시 '엘리트 여성' 중 하나였다. 이 여사는 국내 1세대 여성운동가로 불리기도 한다. 1950년대 초 대한여자청년단, 여성문제연구원 등 창설을 주도했다. 미국 유학 직후인 1950년대 말에는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YWCA) 총무와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를 역임했다. 그러면서 한국 여성운동계 지도자로 성장했다. 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가 첫 인연을 맺은 건 1951년. 두 인물은 학술모임에서 만나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았다. 관계를 이어가던 중 1962년 이 여사가 YWCA 총무로 있던 때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5수 끝에 국회의원이 됐지만 5·16 쿠데타로
"고개를 똑바로 들라!" 1940년대 중반 어느 모임 자리,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남학생들 앞에서 기가 눌린 여학생들에게 이희호 여사는 이렇게 외쳤다. 가게 사장에게는 "여학생들이 마실 수 있는 음료수도 따로 준비해달라"고 당당히 요구했다. 아직 '남존여비'의 유교적 가치관이 팽배하던 때였다. 당시 이 여사의 별명은 독일어 중성 관사인 '다스(Das)'. 행동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다는 이유로 붙은 별명이었다. 10일 97세 일기로 별세한 이 여사는 여성운동의 길을 앞장서 개척했다. 유복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일제 치하에서 이화고등여학교(현 이화여고)와 이화여자전문학교(현 이화여대)를 다닌 '엘리트'였지만, 힘든 처지의 여성을 위해 평생을 봉사했다. 1951년 피난지 부산에서 한국전쟁에 휘말린 여성들을 위해 '대한여자청년단'을 조직했고 이듬해 '여성문제연구원'을 창립하며 여성운동에 뛰어들었다. 이 여사는 1954년부터 1958년까지 미국에서 공부하다 1959년 귀국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대한민국 1세대 여성 정치인 이희호 여사(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가 10일 밤 별세했다. 향년 97세. 핀란드에서 해외순방중인 문재인 대통령도 별세 소식을 듣고 애도문을 발표하는 등 고인을 추모했다. 김대중평화센터는 이날 자정이 가까운 시각 "이희호 이사장님이 6월 10일 오후 11시37분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소천하셨음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에 헌신했던 이 여사가 6·10 민주항쟁 기념일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또 김 전 대통령이 2000년 이뤘던 6·15 평양 남북정상회담일을 닷새 앞뒀다. 이 여사는 올해 봄부터 노환으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이 여사의 분향소는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에 마련되고 조문은 11일 오후 2시부터 가능하다. 14일 오전 6시 발인하고, 오전 7시 고인이 평소 다녔던 신촌 창천교회에서 장례예배가 열린다. 이어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되면서 영면에 든다
10일 별세한 이희호 여사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정치적 동반자 관계였다. 김 전 대통령과 격변의 현대사를 함께 보낸 야권의 '대모'로 평가받는다. 1922년 유복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이 여사는 이화여대의 전신인 이화여전 문과와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을 다녀와 이화여대 사회사업학과에서 강의를 하는 등 당시 '엘리트 여성' 가운데 하나였다. 이 여사는 국내 여성운동 1세대 활동가라도 분류된다. 1950년대에는 초에는 대한여자청년단, 여성문제연구원 등의 창설을 주도했다. 미국 유학 직후인 1950년대 말에는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YWCA) 총무와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를 역임하는 등 한국 여성운동계 지도자로 성장한다. 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가 첫 인연은 맺은 것은 1951년이다. 둘은 학술모임에서 만나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았고, 관계를 이어가던 중 1962년 이 여사가 YWCA 총무로 있던 때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5수 끝에 국회의
10일 세상을 떠난 이희호 여사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장례위원회는 권노갑 민주평화당 상임고문과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이 위원장을 맡을 전망이다. 조문은 11일 오후 2시부터 시작된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지난 9일 페이스북에 "가족측에서는 사회장으로 모실 것을 고려하며 위원장으로는 권노갑 고문,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을 모시려 한다"고 전했다. 또 박 의원은 "여야 5당 대표들은 사회장 장례위원회 고문으로, 현역 의원들은 장례위원으로 모실 계획"이라고 전했다. 박 의원은 이 같은 상황을 5당 사무총장에게 전했으며 더불어민주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승낙했고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은 당대표와 협의 후 연락을 주기로 했다고 전한 바 있다. 청와대는 11일 오전 노영민 비서실장 주재 내부회의를 갖고 조문 형식이나 절차 등을 검토한다. 이 여사의 장례식에는 북측의 조문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이 여사는 2000년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에 영부인으로 동행해 역사적 현장을 지
바른미래당이 이희호 여사의 별세 소식에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사무친 그리움을 풀고, 헤어짐 없는 영원한 곳에서 변함없이 아름답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한다"고 11일 밝혔다.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이날 구두논평에서 "고인은 선구적 여성운동가로서, 김 전 대통령의 내조자이자 민주화 동지이며 정치적 조언자로서, 대한민국 현대사에 길이 남을 역사의 위인으로서 가히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고, 눈을 감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대변인은 "꼭 쾌차하시어 다시 함박웃음 주시기를 간절히 믿었건만 여사님께서는 그리운 김대중 대통령님을 만나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으실 기대가 더 크셨던 것 같다"고 했다. 이 대변인은 "김 전 대통령이라는 거목을 '키우고 꽃피워낸' 건 역사였지만, 국제적 구명운동과 석방운동 등 김 전 대통령을 '지켜낸' 건 여사의 존재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며 "대한민국 민주화 역경의 산증인이자 대통령의 영부인으로서 김 전 대통령 못지않게 국민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고
더불어민주당은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10일 별세 소식에 "여성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 평화운동가였던 이희호 여사는 새 시대의 희망을 밝히는 거인이었다"고 애도했다.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11일 오전 논평에서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인권운동의 거목이었던 여성지도자 이희호 여사의 삶을 깊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추모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홍 수석대변인은 "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의 삶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현대사"라며 "(이 여사는)김 전 대통령의 동반자이자 가장 가까운 비판자로서, 독재세력과 싸우는 민주화 투쟁의 동지로서, 매섭고 엄혹한 격정의 세월을 함께 헤쳐왔다"고 평가했다. 홍 수석대변인은 "독재정권의 서슬 퍼런 탄압도, 죽음을 넘나드는 고난도, 이 땅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향한 두 분의 굳은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며 "시대의 어둠을 헤쳐 나가는 혁명은 신뢰와 사랑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두 분의 삶이 증명했다"고 밝혔다. 홍 수석대변인은 이 여사가 △대
10일 별세한 이희호 여사는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취임 이후 영부인로서 독자적인 해외순방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김대중평화센터에 따르면 이 여사는 영부인 시절 해외방문이 총 5차례로, 2001년을 제외하고 매년 1회 이상 단독 해외순방에 나섰다. 이 여사는 특히 역대 영부인으로서는 처음으로 2002년 5월 김 전 대통령을 대신해 유엔 아동특별총회에 참석, 의장국으로 임시회의를 주재하고 기조연설을 하는 기록도 남겼다. 이 여사는 대학 전공이 영문학과 교육학이었다. 서울대를 졸업한 후에는 미국 스칼렛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 여사는 여성·사회 운동가로서 영부인이 되면서 행정부에도 변화를 몰고왔다. 여성가족부의 모태가 되는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출범했다. 한편, 이 여사는 올해 봄부터 노환으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오다 향년 97세로 별세했다. 이 여사의 분향소는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에 마련될 예정이다. 김대중평화센터에 따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대한민국 1세대 여성 정치인 이희호 여사(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가 10일 밤 별세했다. 향년 97세. 핀란드에서 해외순방중인 문재인 대통령도 별세 소식을 듣고 애도문을 발표하는 등 고인을 추모했다. 김대중평화센터는 이날 자정이 가까운 시각 "이희호 이사장님이 6월 10일 오후 11시37분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소천하셨음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에 헌신했던 이 여사가 6·10 민주항쟁 기념일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또 김 전 대통령이 2000년 이뤘던 6·15 평양 남북정상회담일을 닷새 앞뒀다. 이 여사는 올해 봄부터 노환으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이 여사의 분향소는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에 마련되고 조문은 11일 오후 2시부터 가능하다. 14일 오전 6시 발인하고, 오전 7시 고인이 평소 다녔던 신촌 창천교회에서 장례예배가 열린다. 이어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되면서 영면에 든다
청와대는 11일 오전 노영민 비서실장 주재 내부회의를 통해 고(故) 이희호 여사 조문 시각이나 형식 등을 논의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북유럽 3개국 순방을 수행중인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11일 이같이 밝혔다. 윤 수석은 김대중평화센터의 공지처럼 "11일 오후 2시부터 조문 가능하다"며 "김대중도서관재단(평화센터)에서 절차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10일 별세한 이희호 여사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정치적 동반자 관계였다. 김 전 대통령과 격변의 현대사를 함께 했다. 1922년 유복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이 여사는 이화여대의 전신인 이화여전 문과와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을 다녀와 이화여대 사회사업학과에서 강의를 하는 등 당시 '엘리트 여성' 가운데 하나였다. 이 여사는 국내 여성운동 1세대 활동가라도 분류된다. 1950년대에는 초에는 대한여자청년단, 여성문제연구원 등의 창설을 주도했다. 미국 유학 직후인 1950년대 말에는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YWCA) 총무와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를 역임하는 등 한국 여성운동계 지도자로 성장한다. 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가 첫 인연은 맺은 것은 1951년이다. 둘은 학술모임에서 만나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았고, 관계를 이어가던 중 1962년 이 여사가 YWCA 총무로 있던 때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5수 끝에 국회의원이 됐지만 5·16 쿠데타로
10일 향년 97세로 별세한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치적 동지'로 격변의 현대사를 함께 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이 독재정권에 맞서 투쟁하다 옥고를 치를 때 매일 편지를 보낸 일화는 훗날 '내일을 위한 기도'라는 책으로도 나오는 등 잘 알려져 있다. 김대중평화센터가 이 여사의 생애를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옥중에 있을 동안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편지를 썼는데 편지에는 가정사 외에 철학적·신학적 논쟁거리, 남편의 투쟁에 대한 격려 등이 담겨 있었다. 이 여사는 면회를 갈 때마다 김 전 대통령이 요구한 책 외에 자신이 직접 고른 서적 1~2권을 함께 전했다. 김 전 대통령과의 운명적인 만남은 이 여사의 인생행로 전체를 흔들었다. 김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경쟁한 1971년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최고통치권자의 최대 정적이 됐고, 이 여사의 인생에도 가시밭길이 펼쳐졌다. 같은 해 계엄령 선포와 '10월 유신' 단행 이후 김 전 대통령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