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정년 밖 '시니어' 일터③정년 후 재고용 정기설 명장 인터뷰

지난 9일 찾은 충남 아산에 위치한 동원시스템즈 아산사업장. 마스크와 방진모를 착용하고 들어선 공장 내부에는 인쇄기 소음과 잉크 냄새가 가득했다. 이 곳은 동원그룹 제품을 비롯해 국내 주요 식품기업의 라면과 과자 등 주요 식품 연포장재를 전문적으로 인쇄하는 생산 거점이다.
포장재들은 인쇄기의 롤러 위를 빠르게 통과하고 있었다. 이후 투명 필름지 위로 대형마트와 편의점 매대에서 흔히 보던 브랜드명과 제품 디자인이 연이어 인쇄돼 나왔다. 인쇄기 옆 모니터에는 잉크 종류와 건조기 온도 등 작업 관련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날 만난 정기설(65) 명장은 바지 곳곳에 하얀 잉크가 튄 채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는 1985년 이 회사에 입사해 올해로 42년째 이 현장을 지키고 있는 베테랑이다. 25세 청년으로 입사했던 그는 어느덧 비행기 조종사가 된 아들과 초등학생 손주를 둔 가장이자 할아버지가 됐다.

정 명장의 진가는 여러 잉크를 배합해 정확한 색을 구현하는 '조색' 기술에서 드러난다. 기본 12가지에 특수 색상 2가지를 더한 14가지 잉크로 고객사가 원하는 색을 맞춰낸다. 정 명장은 "색을 보는 순간 필요한 잉크 종류와 배합 비율이 자동으로 떠오른다"고 말했다.
색 배합 데이터를 갖추는 것과 고객사가 만족하는 색을 완성하는 건 다르다. 디자이너가 미묘하게 다른 색감을 요구하면 그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 잉크색을 조정해야 한다. 또 조색 시간을 줄이고 원료 손실을 최소화해 색을 완성하는 작업은 숙련된 정 명장만이 가진 경쟁력이다. 정 명장은 "인공지능(AI)은 이런 조정작업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세월이 축적한 노하우는 귀 끝에도 남았다. 정 명장은 기계에서 나는 소리만 들어도 어디에 이상이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후배들이 설비 이상 징후를 알아채고도 원인을 찾지 못해 애를 먹을 때 구원투수로 나서 해결한게 여러번이다. 동원시스템즈가 2022년 정년을 맞아 회사를 떠나려던 그에게 재고용(기존 연봉보다 낮게 책정)을 제안한 이유기도 하다.

그처럼 재고용을 하는 사례는 회사에서도 몇 안되는 케이스다. 정 명장은 이후 매년 계약을 갱신하며 근무 중이다. 정 명장은 같은 회사로 출근했던 정년퇴직 이튿날을 회상하며 "너무 익숙한 곳인데 마음가짐은 새로 출발하는 것처럼 설렜다"며 "지금의 내 역할은 후배들이 원활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뒤에서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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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명장이 재직기간 바라는건 후배들이 자신의 노하우를 온전히 전수받는 것이다. 후배가 그의 도움 없이 일을 잘 마쳤을 때 어떤 마음이 드는지 묻자 "이제 많이 올라왔구나, 내가 없어도 되겠구나"란 답이 돌아왔다. 그의 얼굴엔 씁쓸함이 아닌 만족스러운 웃음이 비쳤다. 정 명장은 "후배들이 우수한 기술자로 성장해 인정받고 우리가 만든 포장재가 세계 시장으로 수출된다면 그것이 곧 나의 보람이자 내가 인정받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