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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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의 거취가 또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검찰총장 취임 이후 줄곧 유무형의 퇴진 압박을 받으면서도 끄떡하지 않고 자리를 지켜온 윤 총장이지만 이번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꺼내 든 '총장 지휘권'은 검찰총장은 물론 검찰 조직에겐 치명적인 문제다.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지휘를 받게 된다는 것은 검찰총장이 무력화된다는 뜻이자 검찰의 독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된다는 의미다. 사실상 검찰총장으로선 따르기 힘든 선택지로 법조계에선 추 장관이 윤 총장을 사퇴로 몰아넣기 위한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실제 법무부 장관의 총장 지휘권 발동은 15년 만이자 사상 두 번째다. 첫 번째는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5년에 이뤄졌다.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이 김종빈 검찰총장에게 '강정구 동국대 교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해 불구속 수사를 하라며 지휘권을 발동하면서다. 검찰 조직 전체가 크게 반발했으며 김 전 총장은 천 전 장관의 지휘를 따르긴 했으
보험업계에선 최근 디지털 보험사가 화제다. 올해 초 캐롯손해보험이 국내 첫 디지털 손해보험사를 표방하며 출범했다. 얼마 전엔 하나금융그룹이 더케이손해보험을 인수해 하나손해보험으로 이름을 바꾸고 디지털 손보사로 새출발을 선언했다. 뜻이 안 맞아 중단하긴 했지만 국내 손해보험업계 1위사인 삼성화재는 국내 양대 포털 업체인 카카오와 디지털 손보사를 설립하려고 했다. 카카오는 조만간 다른 합작사를 물색해 디지털 보험사를 설립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디지털 보험사는 뭘까. 사실 보험업법상 디지털 보험사라는 명문화된 정의는 없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디지털 손보사 간판을 내건 캐롯손보의 경우도 ‘보험업법시행령 13조’에 따라 통신판매 전문 보험회사로 인가를 받았다. ‘통신판매 전문 보험사’는 보험 건수와 수입보험료의 90% 이상을 인터넷 등 통신판매로 진행하는 보험사다. 말 그대로 ‘판매채널’을 의미한다. 결국 디지털 보험사라는 분류는 각사의 지향성을 반영해 붙인 명칭인 셈이다. 단
10여년 전쯤이다. 진보 성향 신문에서 한국은행을 오래 출입하다 대기업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기자 출신 인사와 점심 식사 자리에서였다. 관치금융 얘기가 나왔다. 그는 관치가 역기능보다 순기능이 많다고 믿고 있었다. 금융 정책과 시중 은행 등 금융사들이 한 몸으로 움직여주는 게 옳다고 믿었다. 자유 시장 경제 체제에 비해 국가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커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시장 불균형과 부조리를 부추기는 탐욕적 금융의 폐해를 미리 예방하는 데도 관치금융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설명도 따랐다. 진보적 이념과 맥이 닿는 부분이다. 그 대화가 있던 시기는 리먼 브라더스 사태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이제 막 진정기에 들어갔을 때다. 미국 정부 구제금융을 받은 금융사들이 보너스 잔치를 벌여 비판이 쏟아지던 그때다. 한국이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지금처럼 코로나19로 자영업자 등 서민경제가 위협받는 시기일수록 관치금융(물론 금융당국은 인정하지 않지만) '순기능'은 확실히 부각
법인세가 빠지면서 세수 추계에 대한 우려가 터져 나온다. 하지만 늘 그렇듯 문이 하나 닫히면 다른 하나가 열린다. 주목할 부분은 주식시장의 뜨거움이다. 과세당국에 문의해보니 5월까지 걷힌 증권거래세가 4조5000억원을 넘었다고 한다. 공식적인 통계가 나와봐야 하겠지만 이미 지난해 전체 세수를 넘어섰다. 재작년에 증시가 좀 뜨거웠을 때 걷힌 증권거래세는 6조원이었다. 올해는 상반기에 이와 비슷하게 걷혀 하반기까지 10조원 가량이 예상된다. 동학개미 덕분이다. 변동성이 상반기처럼 지속될지 예단할 수는 없지만 잘하면 법인세 구멍을 메울 수도 있다. 법인세가 5조원 넘게 빠질 거라고 보이는데 그를 채울 재원이다. 주식시장에서 개미들은 번번이 당해왔다. 외환위기 때, 벤처 버블 때, 금융위기 때 크게 이익을 낸 건 기관이나 외국인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코로나19 공포로 지수가 1400대까지 빠졌을 때 개미들의 도전은 무모해 보였다. 하지만 한국이 이 전염병을 극복해내면서 전 세계의
21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종합부동산세(종부세)가 다시 '뜨거운 감자'다. 지역구가 강남 지역인 야당 의원들이 '1호 법안'으로 앞다퉈 1주택자 종부세 완화를 꺼내 들었다. 반면 정부는 20대 국회에서 처리 못한 종부세 강화 법안을 재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종부세를 강화할 것인지, 완화할 것인지 정부 안에서도 혼선이 없지 않다. 총선 당시 여당 지도부에서 종부세 완화론이 나왔고 정세균 국무총리까지 가세하기도 했다. 정 총리는 지난달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종부세 부과 기준(주택 공시가격 9억원)이 정해진 후 집값이 많이 올랐는데 1주택자에 한해 조정하는 정도는 가능하다"고 말해 파장을 일으켰다. 공시가격 9억원인 넘는 주택 보유자는 종부세를 내야 한다. 시가 기준으론 약 12억원~14억원 주택이 해당한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정한 기준이 12년 유지돼 왔는데 그간 집값이 올랐으니 공시가격 기준도 올려야 한다는 게 정 총리 발언 취지다. 야당은 부과 기준을 12
# 21대 국회의원을 뽑는 4·15 총선에서 당선된 한 초선 의원은 최근 한달여 열심히 경제 공부를 했다. 각종 세미나를 찾아다녔고, 경제 전문가들을 만나 현안을 분석했다. 20대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당내 경제 공부 모임에도 참석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말했다. 이 의원은 모임에 참석한 재선 이상의 다선 선배 의원들에게 “자료가 너무 오래된 것 같다”며 “국민들이 만족할 수 있는 정책을 위해 더욱 전문적인 경제 공부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또 다른 초선 의원은 5월초부터 당내 코로나19(COVID19) 태스크포스(TF)팀 정책위원으로 활동했다. 당선인 신분이었지만, 국가적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정책을 위해 공부를 많이 했다. 비공개 회의땐 당 대표에게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된 특정 법안을 언급하며 “이 법을 왜 통과 시켰는지 궁금하다”며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 이 법이 시행되면 우리 경제에 좋지 않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21대 국회에 입성한 여야 초선의
"거대한 절벽을 마주한 느낌" 2015년 10월 22일, 청와대에서 나온 제1야당 대표의 말이다.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이던 그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여야 대표·원내대표가 함께 만난 '5자 회동'에 참석했다. 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정국의 핵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종걸 원내대표와 함께 국정화의 문제점을 집요하게 제기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이제 그만 하시라"며 화제를 돌렸다. 대통령과 여당의 화두는 민생과 경제입법이었다. ‘격론’을 마친 문 대통령의 소회는 건조했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했다"(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게 성과라면 성과였을 정도로 분위기는 차가웠다. '대통령 되면 다 똑같더라'는 얘기가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은 유독 야당과 만난 기록이 많지않다. 2014년 7월 세월호 참사 후속입법 논의, 2015년 10월 국정교과서 대책, 2016년 여야 원내대표-정책위의장 회동 정도가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여당인 새누리당 지도부와도 거리감
‘재난지원금’은 지금 우리 일상을 뒤덮은 가장 핫한 키워드다. 고백하건 데 당장 피부에 와 닿는 건 역시 ‘돈’이었다. 현금 아니면 어떤가. 상품권이 됐든, 사이버 머니가 됐든 간에 말이다. 개인적으로 몇 달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5살짜리 딸과 온종일 딸을 돌봐야 하는 부모의 고통은 세 식구에게 주어진 80만원의 무게보다 가벼웠다. 재산이 얼마든, 소득이 얼마든 재난지원금을 접하는 심정은 대개 비슷한 모양이다. 며칠 전 만난 한 금융단체 수장은 가족들이 재난지원금으로 뭘 할지 잠깐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고 했다. 그랬다가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이 재난지원금 60만원 전액을 기부하겠다고 했을 때 이미 의사결정권을 상실했단다. 여지가 없이 기부를 선택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미 기부를 선언한 곳도 적지 않다. NH농협, 메리츠금융, 신한금융그룹 등이다. 금융 계열사를 포함해 삼성 등 5대 그룹 임원과 간부들 수천 명도 기부행렬에 동참하겠다고 했다. 이들 금융회사와 그룹 가운데엔 직원 의사를
한국에서 자수성가형 재벌은 몇 세대까지 나왔을까. 시장 변화로 나눠보면 크게 한 3세대쯤이 아닐까 싶다. 산업화와 정보화, 4차 산업혁명이 그들을 잉태했다. 산업화 1세대는 대기업 집단을 일궜다. 문어발이라 비판받았지만 이전까지 황무지 나라였던지라 경제를 지탱할 근간이 됐다. 창업주는 기업가로 평가됐다. 기업가(Entrepreneur)는 사업체의 내생적 외생적 위험에 무한한 책임을 진다. 변화라는 위험에 맞서 딸린 식구들을 보호할 의무도 있다. 권한만큼 비판도 받는다. 2세대는 외환위기 이후에 태어났다. 거대한 위험이 한국을 삼키자 대통령은 정보화를 타개책으로 마련했고 IT(정보기술) 부흥이 일어나면서 2세대가 나타났다. 전국적 인터넷 기간망 덕분에 신흥 재벌은 테크노크라트(technocrat) 몫이 됐다. 기술을 이해하는 80년대 학번들이 부를 일궜다. 인터넷, IT(정보기술) 재벌이다. 2세대의 한가지 두드러진 경향은 거대한 부와 조직을 일궜지만 선대만큼 책임지기 싫어한다는 거다
지난 4·15 총선에서 국토교통부 공무원들의 최대 관심 지역구는 국토부 소재지인 세종시가 아니었다. '3기 신도시' 이슈로 뜨거웠던 일산에서 과연 누가 당선될지,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었다. 현역 의원인 김현아 미래통합당 후보는 '3기 신도시 백지화' 공약을 내걸고 일산서구(고양정)에 출마했다. 부동산 전문가였던 그는 사전 여론조사에서도 우세했다. 결과는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승리. 53.4%의 득표율로 44.9%에 그친 김 후보를 따돌렸다. 물론 몇 명의 국회의원 때문에 정부 정책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진 않는다. 그렇더라도 주무부처 국토부로선 '의원님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일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선거는 여당이 이겼지만 일산 민심이 싸늘하게 변한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5월 국토부가 창릉지구를 3기 신도시로 지정하겠다고 발표한 직후부터다. 서울과 일산 사이 창릉에 3만8000가구가 들어서면 일산 집값이 '폭락'할 거란 공포감이 이 지역에 확산했다. 그렇지 않아도 같은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알게된 건 4년전 공정거래위원회를 출입할 때다. 공정위 관료들로부터 국회 정무위원회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케 하는 부산 출신의 젊은 초선 의원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다. 1977년생인 김 의원은 39세인 2016년에 20대 국회의원이 됐다. 어려운 가정 형편을 딛고 뒤늦게 법을 공부해 2009년 서른두살의 나이로 사법고시를 패스했다. 이후 사법연수원 변호사 실무 수습을 ‘법무법인 부산’에서 했다. 이곳은 노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함께 운영했던 곳이다. 여기서 ‘운명’처럼 문 대통령을 만났다. 김 의원은 문 대통령이 2012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 부산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공정위 관료들은 이런 그의 성장 스토리와 지역 정가에서 활동한 얘기를 듣고 노 전 대통령을 떠올렸다고 한다. 업무보고와 국정감사를 통해 김 의원을 여러번 만난 한 관료는 “초선답지않게 ‘꼬장꼬장’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출입처가 국회로 바뀌면서 김 의원을 직접
#30년 전인 1990년 독특한 정당이 하나 탄생한다. 민중당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재야와 운동권 일부는 합법적 정당을 통해 뿌리내리고자 했다. 이른바 "혁명에서 개혁으로" 노선이다. 민중당의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1992년 총선에서 당선자를 한 명도 못내고 해산한다.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멤버들이 김영삼정부 시절 '문민개혁'을 지지하면서 정치권에 대거 진입한다. 개혁적 보수 블록을 만든 이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MB) 중심으로 결집했다. 마침내 정권도 잡는다. 당시 민중당 지도부가 장기표, 이재오, 그리고 김문수 등이다. 함께한 면면 또한 쟁쟁한 이름들이 됐다. 김성식, 정태근, 김용태…. 하나같이 한나라당 시절 신진세력으로 활약한다. 거기 박형준도 있었다. 고려대 78학번인 박형준은 1980년대 젊은 이론가이자 '필사'로 성장했다. 거리시위에서 최루탄 파편을 눈에 맞아 실명 위기도 겪는다. 1990년 즈음엔 '운동권 선배' 장기표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