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보고, 잘 듣고, 마음껏 상상해봐!" 한-영 언어의 빈틈을 오감과 상상으로 채우는 새로운 판소리
지난 9월 30일 시드니오페라하우스 더 스튜디오에서 한-영 이중언어 버전으로 새롭게 제작된 창작 판소리 '긴긴밤'(The Longest Nights)이 세계 첫 공연을 올렸다. 한국 입과손스튜디오와 호주 시드니오페라하우스가 양국을 오가며 약 2년간 공동 개발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자막을 읽기 어려운 어린이도 관람할 수 있도록 한국어와 영어를 함께 사용하는 '바이링구얼' 형식을 채택했다. 한국어 대사를 영어로 그대로 번역하거나 일대일로 반복하지 않고 언어 사이에 의도적으로 '빈틈'을 남겼다. 배우의 표정과 말투, 움직임, 음악 등 비언어적인 요소를 통해 관객은 더욱 적극적으로 상상하며 이야기를 완성한다. 소리꾼과 고수가 소리와 북, 몸짓만으로 다양한 인물과 공간을 만들어내고 관객의 상상을 통해 장면을 완성해온 판소리의 공연 방식과 맞닿아 있다.
원작 소설 '긴긴밤'은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만나 함께 살아가는 과정을 통해 다양성과 연대의 의미를 다룬다. 작·연출을 맡은 이상숙은 "다양성은 서로 다른 존재를 같은 모습으로 바꾸는 게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면서 공동의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바이링구얼 공연을 통해 서로 다른 존재와 함께 있는 방식 자체를 탐색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어린이 관객에게 다양성을 설명하기보다, 모든 말을 이해하지 못해도 타인의 감정과 이야기를 함께 경험할 수 있음을 공연 자체로 보여준다.
이번 호주 초연은 시드니오페라하우스가 올해 첫 선보이는 국제 어린이 공연예술축제 '와일드씽즈'의 공식 프로그램으로 마련됐다. 시드니오페라하우스는 이민자가 40% 이상을 차지하는 세계 대표적 다문화 도시인 시드니에 위치해, '모두의 집'이란 방향 아래 '다양성'과 '포용성'을 주요 가치로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