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K 매장의 결투
5000원권은 현금인출기에 없다. 각종 화폐교환기에서도 외면받는 유일한 권종이다. 대면거래에서만 통용되는 5000원이 최근 주목을 받는 것은 유통가가 성인 소액권이자 학생 고액권이라는 틈새를 파고들면서다. 귀하신 몸이 된 5000원의 유통가 성공방정식을 분석해본다.
5000원권은 현금인출기에 없다. 각종 화폐교환기에서도 외면받는 유일한 권종이다. 대면거래에서만 통용되는 5000원이 최근 주목을 받는 것은 유통가가 성인 소액권이자 학생 고액권이라는 틈새를 파고들면서다. 귀하신 몸이 된 5000원의 유통가 성공방정식을 분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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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다이소 강남역2호점. '저소음 블루투스 키보드'를 사기 위해 매장을 찾은 직장인 A씨는 빈손으로 돌아갔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가성비 품목으로 알려지며 품귀 현상이 빚어진 제품이다. 저소음, 블루투스 기능을 갖췄음에도 5000원이라는 가격에 입소문을 탔다. 비슷한 사양의 제품이 통상 저렴하게는 5만원대에서 10만원대에 형성된 점과 비교해 '가성비'로 화제를 모았다. 이날 매장 내 매대뿐 아니라 온라인몰에서도 일시 품절 상태가 이어졌다. 5000원으로 살 수 있는 가성비 품목은 곳곳에서 '베스트' 딱지가 붙어있었다. 건강기능식품 코너에는 종근당건강의 5000원짜리 '락토핏 생유산균 골드', '락토핏 생유산균 당케어'가, 뷰티 구역에선 SNP의 '펩타이드 아이패치', '판 고데기'가 인기품목으로 이름을 올렸다. 매장을 찾은 한지유씨(23)는 "다이소의 피부 영양제, 아이패치, 화장품 등을 다른 쇼핑몰에서 파는 3만~4만원대 제품과 비교했을 때 성분 차이가 없다"며 "5000원으로 웬만한 건 살 수 있어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버는 학생 입장에서 부담이 적다"고 말했다.
균일가 전문점의 원조 격인 다이소는 지난해 매출 4조원, 영업이익 4000억원 달성이 유력하다. 10년 만에 매출과 영업이익이 5배가량 커졌다. 예상 영업이익률은 약 10%, 국내 유통 대기업 영업이익률이 2~4%대란 점을 고려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다이소의 핵심 전략은 '박리다매'(薄利多賣, 이익을 적게 보면서 많이 판매한다). "10만명에게 10%를 남겨 파느니 100만명의 선택을 받겠다"는 게 창업주 박정부 회장의 지론이다. 과거 다이소가 매출 1조원 미만 중견기업이었을 땐 대형 유통사들이 경쟁 상대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고물가 국면에 소비침체가 장기화하고 중국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이 가성비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면서 입지가 흔들렸다. 그러자 이젠 대형 유통사들이 '싸고 좋은' 상품을 소싱하는 다이소 전략을 역으로 벤치마킹하면서 빈틈을 노린다. 저가의 다이소와 중저가의 대형유통사의 경계지점인 5000원 제품군에서 가장 치열한 결투가 벌어지는 형국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가성비 상품은 PB(자체 브랜드) 중심이었고 특정 가격대는 설정하지 않았다"며 "최근 소비자들의 가격 민감도가 높아지고 수요가 늘어난 점을 고려해 '5000원 이하' 제품 소싱에 공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 직장인 김규민(29)씨는 퇴근 이후 편의점을 찾는다. 과자와 치즈를 사서 '오지치즈후라이'를 만들어 먹거나 컵라면에 만두를 넣어 나만의 메뉴를 완성한다. 김씨는 "식당 물가가 부담스러워 시작했는데 이제는 직접 조합하는 재미 때문에 계속 찾게 된다"며 "5000원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한 끼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 대학생 이영민(23)씨 역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보고 새로운 '꿀조합' 만들기에 빠졌다. 요거트에 비스킷을 꽂아 냉장 보관하는 간단한 방식의 '요거트 치즈케이크'를 즐겨 만든다. 이씨는 "카페 디저트보다 훨씬 저렴한 5000원으로 맛과 재미를 느낄 수 있어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전했다. 편의점과 이커머스를 중심으로 '5000원의 마법'이 확산되고 있다. 고물가 시대에 적은 돈으로 최대의 만족을 끌어내는 '모디슈머' 트렌드가 다시 주목받는 모습이다. 간단한 재료를 조합해 새로운 메뉴나 제품을 만들어내는 '꿀조합' 소비가 SNS를 타고 빠르게 확산되며 유통업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국내 유통가에 5000원 이하 균일가 경쟁이 본격화된다. 국내 대형마트 1위 이마트가 전국 점포에 5000원 이하 균일가 생활용품 공급 물량을 대폭 확대하기로 하면서다. 균일가 상품 전문존 '와우샵'을 전국으로 확대하기 위한 사전단계다. 고물가 기조에 가성비를 중시하는 초저가 소비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시장을 개척한 다이소가 연매출 4조원 수준의 고속 성장세를 이어가자 본격적인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23일 유통 업계에 따르면 이마트는 올해 상반기 중 와우샵 대표 품목 30~40종을 전국 점포로 확대 공급할 계획이다. 올해 1월부터 80여개 점포에서 시범 운영했는데 별도 공간이 없는 상태에서도 매출 신장률이 40%를 웃돌자 공급망 확충에 나선 것이다. 이마트는 이와 함께 현재 11개 점포에 설치한 와우샵 전용 판매존을 올해 상반기 안에 30개점으로 확대하고 판매 제품 수(SKU)도 1600여개로 이전보다 300여종 이상 늘리기로 했다. 신선식품 위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한 이마트가 와우샵 확장 전략을 선택한 것은 초저가 가성비 생활용품 시장의 성장세를 확인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