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신인류의 음악-프롤로그

[투데이 窓]신인류의 음악-프롤로그

노승림 음악 칼럼니스트·숙명여대 교수
2021.06.02 04:46

노승림 음악 칼럼니스트·숙명여대 교수

노승림 숙대 교수
노승림 숙대 교수

지난주부터 주변에서 은근히 활기가 느껴진다. 암울한 전염병의 현실보다 앞으로의 계획을 얘기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백신접종에 가속이 붙은 탓일 것이다. 1년반 넘게 온 세상을 뒤덮고 있던 먹구름 사이로 햇살 한 줄기가 간신히 모습을 드러낸 듯하다.

이 한 줄기 햇살에 사람들의 질문도 달라졌다. "코로나가 끝나기는 할까요"라고 묻던 사람들이 이제는 "코로나가 끝난 다음에는 어떤 세상이 올까요"라고 묻기 시작했다. 음악계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이후 음악계는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해한다. 이 질문에는 어쨌든 세상은 변할 것이라는 암묵적인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음악 나름"이라고 답한다.

전염병은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음악인을 시험에 들게 했고 생존방식은 저마다 달랐다. 대면공연이 불가능해진 아이돌 그룹들은 메타버스 콘서트를 적극 시도하며 오히려 규모의 경제를 키웠다. 최신 테크놀로지를 도입한 대중음악계의 콘텐츠 개발은 코로나19 덕분에 가속페달을 밟으며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보하는 분위기다. 그들의 성취가 인상적인 이유는 단순히 기술 때문만은 아니다. 그 기술을 이용한 창의적인 연출감각이 음악을 넘어선 또 다른 장르로의 진화를 예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진보의 속도를 모든 음악계가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내 직업적 주요 서식처인 클래식 음악만 해도 상황은 지극히 다르다. 전염병 발발 이전부터 이 업계는 신기술에 대한 관심도, 그럴 만한 자본도 없었다. 카라얀 등 20세기 거장들이 주도했던 음반산업은 그들의 사망과 더불어 하향곡선을 그린 지 오래됐으며 일부 예술단체가 주도한 영상 콘텐츠 사업은 적자와 보수적인 고객들의 냉대에 시달렸다. 전염병 시대 내내 클래식 음악가들은 자체 제작한 B급 동영상이 아니면 대안공간 혹은 공연장에 설치된 한정된 앵글의 카메라에 갇혀 인내해왔다. 한 자리씩 띄어 앉는 공연장 객석 정책에서 비롯된 매진 착시현상 속에 스스로를 위로하고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길 기대하며 버티는 중이다.

물론 우리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다만 그들이 그리워하는 '일상'이 그렇게 장밋빛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일부 스타들을 제외한 콘서트는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음악가와 기획사들은 공공지원금으로 연명하며, 텅 빈 객석을 채우려 초대권을 남발하던 바로 그 일상 말이다.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상 속에서 사람들은 수백 년간 내려온 형식을 용케 고수해왔다. 그 보수성은 레퍼토리에서 절정을 이룬다. 창작은 외면한 채 '고전은 영원하다'는 부적을 붙이고 수백 년 전 곡들이 대동소이한 방식으로 무한반복 재생되는 분야가 바로 클래식이다.

이 연재는 이런 정체된 현실에 대한 사적인 반성과 전염병 시대가 선사한 특별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위기는 생존을 위한 진화를 자극한다. 앞으로 이 칼럼에 소개할 음악가와 음악들은 경계를 넘어서 있거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무소속들이다. 모두가 '정통'이라 여기는 음악적 관습과 형식 사이에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새로운 소리를 삽입하는 클래식의 이단아들은 물론 다른 종과의 교접을 시도하는 하이브리드 개척자들, 클래식도 대중음악도 아닌 그들만의 스타일로 진화한 소리들이 그 대상이다. 그 소리들은 순혈주의에 강박된 우리의 시야를 돌이켜보게 하며 도태의 위기에서 벗어나 스스로 변화하길 독려한다.

그들을 소개하며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유연성과 관용이다. 그토록 신성시하는 베토벤보다도 우리는 정통성에 강박돼 있는 것은 아닐까. 악보를 임의로 바꿔서 연주하고, 심지어 악보에 없는 즉흥연주까지 흔쾌히 용인되던 그 시절보다 말이다. 수백 년 전 임의로 고정된 음표들이 급변하는 세상과 가치관을 영원히 반영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은 시대착오적이다. 이런 근본주의적 태도는 음악계뿐 아니라 사회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고루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앞으로 소개할 신인류의 음악들은 추상적 규율의 틀에서 벗어난 창의적 도전들이다. 그들의 시도가 구체성을 획득해 세상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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