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알테니스킵' 해프닝

[투데이 窓]'알테니스킵' 해프닝

임대근 한국외대 인제니움칼리지 교수
2021.06.04 04:31
임대근 교수
임대근 교수

'알테니스킵'이라는 로션브랜드가 화제가 됐다. 정작 상품을 찾을 수는 없다. 언제 출시된다는 기약도 없다. 그런데 소비자의 반응은 뜨겁다. 주요 소비자는 아재(아저씨)들이다. 사연은 이랬다.

'롤린'으로 역주행 인기를 누리는 걸그룹 브레이브걸스. 아재 팬이 많다. 멤버 중 유정이 올리브영의 브랜드 '브링그린' 광고모델이 됐다. 인스타그램에 유정의 광고영상이 올라왔다. 곧이어 DC인사이드 갤러리에 '아재들을 위한 기초화장품 용어'를 알려주는 글이 떴다.

스킨, 수분크림, 크림, 앰플을 차례로 설명하면서 '로션은 알테니스킵'이라고 쓴 것이 문제였다. '알테니스킵'을 로션 상품으로 오해한 아재팬들이 앞다퉈 검색하기 시작했다. 올리브영 홈페이지의 실시간검색어 1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알테니스킵' 제품을 출시하라는 요청도 쇄도했다. 소비자 반응에 깜짝 놀란 올리브영은 '알테니스킵' 상표등록을 마쳤다는 소식이다.

대중문화를 '대량문화'(mass culture)로 부른 시절이 있었다. '대량'(mass)은 양과 규모를 강조하는 말이다. 심지어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들이라는 뜻도 있다. 요새는 '대중문화'(popular culture)를 더 자주 쓴다. 대중에게 '인기 있는'(popular) 문화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에도 문화는 누군가 만들고 대중은 그것을 소비한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대중은 더이상 누군가 만들어주는 문화를 소비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스스로 문화를 만들고 유통하는 적극적인 주체로 거듭났다. 언제 어디서든 서로를 연결할 수 있는 사회관계망은 대중의 주체적인 힘을 끌어올리면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문화관계망이 됐다. 문화관계망을 타고 형성된 팬덤은 스타를 바라보기만 하는 소극적인 현상이 아니다. 팬들은 이제 '제당슈만'(제가 당신을 슈퍼스타로 만들어드릴게요)을 외친다. 팬덤과 소비자는 대중의 두 얼굴이다.

팬덤은 어디에나 있다. 아이돌그룹을 좋아하는 소녀들은 팬덤의 전형으로 여겼다. 최근에는 트로트 열풍으로 장년 팬덤이 발굴됐다. 아재 팬은 평소 조용히 각개약진하지만 어떤 이벤트가 벌어지면 한마음 한뜻으로 뭉친다. 팬덤은 세대와 성별, 지역과 취향에 따라 만들어진다. 그러니 대중을 소비자로 간주하는 기업이 팬덤을 이용해 마케팅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팬덤이 소극적 주체가 아니듯, 소비자도 그렇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얼떨결에 일어난 해프닝을 과도하게 이용한다면 대중은 언제든 '알테니스킵'을 외면할 수 있다.

알테니스킵이 깜짝 검색어로 뛰어오른 데는 게시판의 댓글놀이가 있었다. '그니까 로션은 알테니스킵을 사면 된다는 거지?'라는 댓글에 '알러지 스킵처럼 안 좋은 피부상태를 넘겨준다는 뜻인가?' '그래서 구매처가 어디야?'라는 댓글까지 달렸다. 그뿐만 아니라 게시판 곳곳에는 '알테니스킵' 브랜드라며 화장품 사진을 패러디한 밈(짤)이 올라오기도 했다. 밈놀이에서 알테니스킵은 '200년 역사의 알테니 가문 비법'으로 변신했다. 댓글과 밈놀이로 그동안 팬덤문화에서 소외된 아재들이 존재감을 과시했다. 자발적인 팬덤은 당연히 소비로 이어졌다.

물론 대중과 팬덤, 소비자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놀이를 좋아하는 대중은 때론 부정확한 정보와 자극적인 사실을 동원한다. 나와 다른 사람을 '틀렸다'고 정죄하면서 타자화하기도 한다. 역사상 가장 적극적인 대중 주체의 오판과 그릇된 선택은 대중문화의 부작용을 만들어내곤 한다. 부작용의 연쇄고리는 결국 대중문화의 주체를 옥죄고 갉아먹는 해악이 돼서 돌아온다.

그럼에도 대중의 자정능력은 힘이 세다. 대중문화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지만 대중이 만들어내는 집단적 상상력과 창조력을 믿어야 한다. 옳지 않은 대중문화는 자정을 통해 결국 씻겨나갈 것이다. 대중이 항상 조직된 주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중은 팬덤과 소비 사이에서 놀면서 문화를 상상하고 창조하는 힘을 가진 이들의 이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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