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를 '88억원 세대'로!
능력과 잠재력을 지닌 20대가 겪는 현실적 어려움과 사회적 불평등을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하며, 청년 세대의 미래와 희망을 모색합니다.
능력과 잠재력을 지닌 20대가 겪는 현실적 어려움과 사회적 불평등을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하며, 청년 세대의 미래와 희망을 모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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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기부는 청년위한 '기회' 기부… 수익금 나누고 일자리 창출 대한민국 미래 밝힐 '건강한 순환' 한평생 죽을 고생해 모아 내놓은 장학금 물론 아름다운 기부입니다 1914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39세에 남편과 사별하고서부터 김밥 행상으로 자식을 키워왔던 고(故) 이복순 할머니. 백원짜리 동전 한 개에도 벌벌 떨면서 거의 평생을 검정 고무신과 검정 통바지 차림으로 살아왔습니다. 할머니는 그렇게 억척스럽게 모은 50억원의 부동산과 1억원의 현금을 1990년 충남대에 다 기부했습니다. “재물은 만인이 공유할 때 비로소 빛이 난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할머니는 그로부터 2년 뒤 세상을 떠났지만, 할머니가 남긴 돈은 지금까지 250여명 청년들의 장학금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손바닥이 저리고, 다리에 쥐가 나도록 고단한 삶이었기에 할머니의 기부는 더 숭고했고, 더 가슴 저미었고, 더 아름다웠습니다. 할머니는 척박했던 한국 기부문화에 이정표였습니다. 폐
대한민국은 지금 요소투입형 경제를 혁신주도형 경제로,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을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전략으로 전환해야 하는 절박한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따라가기보다 남들이 개척하지 못한 영역을 먼저 개척해야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자 하는 '기업가정신'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기업가정신재단의 목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기업가정신이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으로 뿌리내리는 데 일조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벤처창업을 활성화시켜 수많은 성공기업가가 배출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기업가정신을 시대의 문화코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기업가정신이 확산되려면 문화가 바뀌어야 합니다. 안정지향, 보수지향의 문화가 혁신지향, 도전지향의 문화로 변화해야 합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각계각층에서 세상에 없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려는 열정이 가득해야 합니다. 창업가, 기업가뿐 아니라 회사원도, 공
-기부 후 재단사업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나 "재단이 주최하는 청년기업가대회, 기부자의 밤, 기부자와 청년 기업가들의 만남, 명망가 강연회, 문화행사 등 각종 행사에 초대 받게 되며 재단이 발간하는 단행본 등 자료도 받아보시게 됩니다. 기부자 상호간, 기부자와 청년 기업가들간 교류를 위한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뉴스레터와 이 달 말 문을 여는 재단 홈페이지(www.efkorea.kr)를 통해 재단 사업과 기부금 집행내역, 청년 기업들이 성장하는 구체적인 모습을 확인하고 의견을 주실 수 있습니다." -상금과 투자 지원은 어떻게 이뤄지나 "청년기업가대회를 통해 선발된 청년들에게는 회사설립을 위한 상금이 지급되며, 이후 약 3개월간 교육이 이뤄집니다. 청년기업가 사이에 명망이 높은 고영하 고벤처포럼 회장, 장병규 본엔젤스 대표 등이 멘토로 참여해 사업구체화 등을 위한 멘토링을 합니다. 기업가정신 회사설립 법률 특허 등에 대한 다양한 강연과 교육도 이뤄집니다. 재단의 투자여부
생선장수 아버지의 이름을 건 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자영업을 하고 있다는 40대 후반 김모씨는 평생 생선을 팔아 자식들을 키워온 아버지 이름으로 상을 만들어 창업을 하려는 청년들을 도와줄 수 있겠냐고 문의해왔습니다. 김씨의 아버지는 서울의 한 재래시장에서 30여년간 생선가게를 하면서 조금씩 모아두었던 돈을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남겼다고 합니다. 김씨는 "아버지가 평생 비린내와 함께 일하면서 번 돈을 우리 형제가 그냥 받아 쓰기에는 양심에 가책을 느낀다"며 "등록금을 벌기 위해 편의점에서 일해야 하는 대학생들이 멋진 기업을 만드는 데 보탰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일하던 재래시장은 재개발 때문에 이미 없어졌고, 세상의 아무도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이름을 기억하진 못하겠지만, 아버지 이름으로 작은 상이라도 하나 만들어 은혜에 보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습니다. 기부금액의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청년들을 돕겠다는 뜻이 중요합니다. 김씨의 아버지가 남긴 유산의 일
1998년 7월 벤처기업협회는 IMF(국제통화기금)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인터넷코리아' 프로젝트를 정책당국에 제안했다. 인터넷코리아 사업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전세계적 ‘인터넷 경제’를 활용해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 향상시키고, 대졸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길이었다. 당시 취업난 해소를 위해 추진되던 황소개구리 잡기 등 단순 일자리 사업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프로젝트였다. 과거 대공황 때 댐을 짓고 도로를 건설하는 등 사회간접자본시설 구축 패러다임을 지식사회에 그대로 적용하는 구상이었다. 인터넷코리아 사업의 지향점은 인터넷을 촉매로 한 새로운 네트워크경제, 연결의 경제로 한국을 선도 국가로 부상하게 하는 것. 온라인 상품정보 교류를 기반으로 한 '인터넷 시장경제' 창출이 핵심 개념이었다. 그 첫 단계 사업이 '10만 웹마스터 양성운동'이었다. 30만 대졸 실업자들 중 10만 명을 웹마스터로 양성해 100만명 개인사업자와 10만개 중소기업의
"@한식당 '자연'(2시간 전 체크인). 별점 4점. 외국 나갔다가 아침에 도착해서 사골우거지갈비탕 먹으려고 기다리는 중. 사람 많다. 맛은 괜찮은 편이고 세금 10% 별도!" "@송정해수욕장. 별점 5점. 사람 별로 없어 조용하니 좋음. 해변 왼쪽으로 죽도공원이 있는데 해수욕만 하지말고 둘러보시길." 지난 4월 설립된 와플스토어가 운영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 ‘플레이스탭’에는 가입자들의 위치정보가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가입자는 현재 자신이 있는 장소의 정보를 별점으로, 간단한 멘트로, 사진으로 올릴 수 있다. 위치에 따른 개인의 일상을 적어나가는 걸어 다니는 미니홈피이자, 장소 정보를 공유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셈이다. 동시에 플레이스텝은 소셜커머스이기도 하다. 플레이스텝이나 광고주가 올리는 퀘스트(목표)를 가입자들이 수행하면 혜택이 주어진다. 예를 들어 놀이공원이 리뷰쓰기, 별점평가 등의 궤스트를 올리고 이를 가입자가 수행하면 다음 방문때 사용할 수 있는 자유이용권을
'시골의사' 박경철 안동신세계병원장이 사무실로 사용하는 서울 종로구 충정로의 한 오피스텔 거실에는 대형그림 하나가 걸려있다. 언뜻 봐서는 서양명화 같다. 그런데 기자가 걸어 들어가는 사이, 허리를 숙이고 있던 그림 속 여자 모델이 스르르 옷을 벗는 것이 아닌가. 명화가 아니라 누드화였다. "이거요? 배준성 교수가 하는 작업 중 하나인데, 관람객들에게 일종의 '야지(조롱하다는 뜻의 비속어)'를 놓는 거죠. 이쪽에서 보면 옷을 입고 있는데 저쪽에서 보면 벗고 있잖아요." 박 원장은 배 교수의 이런 '야지' 컨셉이 마음에 드는 듯했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왜 이토록 불행한지에 대해 풀어놓은 그의 이야기도 야지까지는 아니지만 거의 그 언저리였다. 대상은 바로 기성세대였다. "청년들이 우울하고 불행한 건 기성세대가 자신의 성공경험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성세대가 기득권을 놓기가 싫기 때문이죠." 박 원장은 대신 청년세대에 대해서는 행동을 촉구했다. "침묵만 하고 있으면 안됩니다. '선택
"제 20대요? 어려움과 괴로움의 연속이었죠." 양신(梁神) 양준혁(42)도 처음부터 신은 아니었다. 고등학교(대구상고)를 졸업하고 삼성에 입단하려 했으나 "대학 가서 더 배우고 오라"는 핀잔만 들었다. 대학(영남대)을 졸업하고 다시 삼성을 찾았지만 "자리가 없다"고 해서 상무로 발길을 돌렸다. "야구만 생각하며 눈물 젖은 빵을 먹어온 지 그때가 딱 15년째였는데, 이대로 무너지는가 했죠. 단무지 팔고 파출부 나가던 엄마 얼굴이 어른거리더라구요." 양준혁의 20대는 지금 20대와 많이 닮은 듯했다. 수십 수백 번 원서를 써도 취업하기 힘들어 수없이 '이대로 무너지는가'를 되뇌어야 하는 지금 20대와 말이다. 양준혁은 이로부터 2년 뒤 꿈에 그리던 삼성에 입단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신의 경지에 오르기 시작했다. "난 야구만 했다. 지식은 없다. 하지만 야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웠다"는 양준혁을 지난달 초 서울 서초구 양재동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야구재단 사무실에서 만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