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진짜 믿지 못할 곳인가
법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하다. 법원 청사에 집단 테러가 발생했고 "재판 결과는 윗선이 다 결정하는 거 아니야"라는 오해까지 나온다. 신뢰를 깎아먹는 요인이 무엇인지, 법원은 정말 신뢰할 수 없는 조직인지, 해외에서도 신뢰가 부족한 지 등을 다각도로 분석해 신뢰 회복 해법을 모색한다.
법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하다. 법원 청사에 집단 테러가 발생했고 "재판 결과는 윗선이 다 결정하는 거 아니야"라는 오해까지 나온다. 신뢰를 깎아먹는 요인이 무엇인지, 법원은 정말 신뢰할 수 없는 조직인지, 해외에서도 신뢰가 부족한 지 등을 다각도로 분석해 신뢰 회복 해법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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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사건 당사자들에게 결론에 이르게 된 과정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법원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일반인들에겐 사법 시스템이 여전히 복잡하고 어렵다는 점에서다. 실제 당사자들은 소송의 승패보다도 과정을 설명받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대다수 법조인들의 중론이다. 익명의 지방법원 소속 부장판사 A씨는 11일 "일반인들이 법원을 오가는 일은 무척 귀찮은 일임에도 불편을 감수하고 마지막으로 법원을 찾는 것"이라며 "경청이 재판의 정당성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당사자가 절차를 잘 모른다는 인식을 법관들이 갖춰야 한다"며 "이들은 귀찮은 민원인이 아니라 국가 사법 서비스를 이용하는 시민"이라고 했다. 판사들은 하루에도 사건을 수십권씩 처리하다보니 당사자의 말을 다 들을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경청이 쉽지 않아 우수법관 중엔 경청하는 판사들이 많다.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 B씨는 "변론 종결 시 당사자에게 1분 정도 시간을 주시며 '하시고 싶은 말씀 하시라'고 말하는 재판부도 있다"며 "사법부가 정당성을 가지려면 국민들의 신뢰가 무척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한국보다 사법 신뢰도가 높은 나라에는 어떤 제도가 갖춰져 있을까. 나라별로 다르지만 독립성과 청렴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10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발표한 2024년 기준 기관별 신뢰도 조사(Survey on Drivers of Trust in Public Institutions 2024)에 따르면 한국의 법원·사법 시스템 신뢰도는 33%로 OECD 평균 54%보다 낮다. OECD 통계상 법원·사법 시스템 신뢰도가 가장 높았던 국가는 노르웨이(77%)·덴마크(75%)·핀란드(74%)였다. △정치로부터의 거리(독립성) △부패·특혜 의심이 낮은 환경(청렴성) △정보공개·설명 중심 운영(개방성) 등이 잘 작동될수록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 덴마크의 경우 '판사의 공정성에 의심을 줄 수 있는 사건'이라면 판사가 스스로 사건을 회피하거나 기피 신청하도록 하고 있다. 또 법원 안에 '외부 활동 심사 기관'을 설립해 운영하며 판사의 외부 활동이나 이해충돌 가능성을 감시하도록 하고 있다.
대법원장이 주요 사건 재판을 좌우할 수 있을까. 유명 전관 변호사를 쓰면 정해진 결론을 바꿀 수 있을까. 재판이 원칙적으로 공개되고 3심까지 이어지는 점, 모든 절차가 기록으로 남는 점 등을 고려하면 윗선이나 외부가 재판 결론에 영향을 미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법조계 설명이다. 외부의 재판 개입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특정 판사에게 특정 사건을 줄 수 없고 배당 과정에 누구도 개입할 수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건이 접수되면 법원은 업무분장에 따라 형사·민사 등 사건 유형과 전담·전문 재판부를 구분한다. 그 다음 전산 시스템을 통해 사건을 재판부에 무작위로 배당한다. 내란 사건도 법에 따라 전담재판부를 만들었으나 사건은 무작위로 배당된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배당 과정이 눈에 보이지 않다 보니 의심하는 이들도 있지만 누군가 배당에 개입한다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재판이 공개되는 점 역시 외부에서의 개입을 어렵게 하는 요소다. 2차 피해 우려가 큰 성범죄 사건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재판은 원칙적으로 공개되고 누구나 방청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사법 제도 수준이 높은 편으로 평가받는 대한민국 사법부가 국내에서는 평가 절하를 받는 이유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재판 당사자가 체감하는 공정성·청렴성·개방성 때문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여기에 더해 최근 심화하고 있는 정치의 사법화가 불신을 가속하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공정성이다. 특히 '판사가 내 말을 충분히 들어줬는지'가 승복을 가르는 핵심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대기업 소속 변호사는 "현장에서는 판결 내용보다 재판 진행 방식에 대한 불만이 더 많이 나온다"며 "당사자들이 AI(인공지능) 등을 통해 기본 정보를 쉽게 접하면서 '왜 내 말은 끊고 상대방 말은 더 듣느냐' '왜 신청을 이유도 없이 기각하느냐' 같은 문제 제기를 더 적극적으로 한다"고 말했다. 현직 부장판사도 "요즘은 절차 설명 부족에 대한 민원이 늘었다. 재판 당사자는 승패보다 판사가 내 말을 제대로 들어줬는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며 "절차가 공정했고 말할 기회를 충분히 받았다고 느끼면 패소 결론도 수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국의 사법제도는 국제 평가에서 상위권으로 분류되지만 정작 국민들이 법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법원의 신뢰도는 지난 10년째 7대 국가기관 중 중·하위권에 머물고 있고 법원의 판단을 인정하지 않는 현상이 점차 심화하고 있다. 여권에서 한국 법원 신뢰도가 낮다는 점을 근거로 추진한 '사법개혁 3법'이 국회를 넘은 지난 3일 조희대 대법원장은 출근길에 사법부 신뢰가 높다는 점을 설명했다. 기자들 질문에 짧게 답했던 것과 달리 이례적으로 준비한 내용을 길게 설명했다. 조 대법원장은 "대한민국의 민사재판 제도가 아주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 심지어 국제기관에서도 대한민국 사법부를 배우려 하고 우리 사법부가 교류 협력을 할 것을 적극 요청하고 있다"며 "우리 제도를 근거없이 폄훼하거나 법관들에 대해 개별 재판을 두고 악마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실제 세계사법정의프로젝트(WJP)의 법치주의 지수(Rule of Law Index)에서 지난해 기준 한국은 143개국 중 19위로 평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