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굽힌' 유승민 앞으로가 진짜, 중재자 김무성 새 선택 주목

새누리당의 '투톱' 김무성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가 기로에 섰다. 박근혜 대통령이 위헌 소지를 들어 여당 의원들도 대부분 찬성한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나아가 유승민 원내지도부의 책임론을 직접 거론하면서다. 유 원내대표는 당장 친박계를 중심으로 한 사퇴 요구에 직면해 있고, 김 대표도 친박계의 '지도부 흔들기'를 방어해야 하는 입장이다.
원활한 당청 관계를 의사결정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청와대와의 마찰을 피해왔던 김무성 대표나, 종속적인 당청 관계를 바꿔야 당이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며 자기 목소리를 내온 유 원내대표 모두 기존의 전략만으론 난국을 헤쳐나기기 어렵게 됐다.
유 원내대표가 '90도 사과'로 굽히고 들어가므로써 먼저 변화를 선택했고, 김 대표도 박 대통령과 친박계의 강공이 계속되는 한 새로운 선택이 불가피한 처지다.
◇벼랑 끝 유승민, 이제부터가 진짜
'꼿꼿하던' 유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연신 고개를 숙이고 있다. 거부권 행사 다음날인 26일 당 정책자문위원회 정책자문위원 위촉장 수여식에 참석한 유 원내대표는 "대통령께서 어제 국무회의에서 매우 강한 말씀으로 정치권을 비판하셨고 여당 원내대표인 저에 대해서도 질책의 말씀을 하셨다"면서 "경위야 어찌 됐든 나라와 국민을 위해 한몸으로 일하고 메르스 사태 등 비상시국에 국민 걱정 덜어줘야 할 정부여당이 국민들에게 오히려 걱정하도록 만든 데 참으로 죄송하고 우리 박 대통령에게도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는 주말 동안에도 청와대의 마음을 풀기 위해 계속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부권 정국' 초기에 '어른스럽지 못하다' 등 청와대와의 기싸움에 한발도 물러나지 않던 것이 비하면 180도 달라진 접근법이다.
유 원내대표의 변신에 대해 우선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 쌓아온 굽히지 않는 '유승민 정치'를 희생해서라도 살아남는 것이 급했다는 것이다. 이대로 원내대표직을 물러날 경우 박 대통령의 노골적인 찍어내기에 취임 5개월만의 불명예 퇴진이라는 꼬리표가 달릴 수 밖에 없다. 박 대통령의 영향력이 큰 대구가 지역구로 정면충돌이 계속될 경우 정치인생이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는 위기감도 적잖이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유 원내대표가 '쉬운' 사퇴가 아닌 '진짜' 도전을 택했다는 분석도 있다. '유승민 정치'에 상당한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자신의 지지 세력 결집과 당청 관계 복원이라는 더 큰 명제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회법 논란 이후 청와대와 친박(친 박근혜)계의 압박이 계속되는 동안 유 원내대표 주변에서는 "이전 같았으면 여러번 때려 치웠을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왔다. 김 대표와 유 원내대표의 지지기반인 비박(비 박근혜)계 내에서도 이번 정국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유 원내대표가 사퇴하지 않고 계속 버티도록 하는 것'으로 봤을 정도다. 유 원내대표가 기존의 스타일대로 미련없이 직을 던진다면 친박-비박간의 치열한 당내 전투가 불가피하고 이는 청와대나 당 모두에게 '재앙'이 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의 서슬퍼런 강공에 유 원내대표가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린 것처럼 보이지만 당내 역학구도를 보면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새누리당 원내 구성을 보면 비박이 다수다. 국회의장, 당 대표, 지난 원내대표 경선까지 잇따른 당내 선거에서 비박계가 연전연승을 거둔 것이 이를 보여준다. 비박들이 친박들 만큼이나 사생결단 달려들 경우 승부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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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력만 믿고 무조건 밀어부칠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데 유 원내대표와 비박계의 고민이 있다. 역대로 당청 관계가 좋지 못했을 때 여당이 선거에서 부진한 경우가 많았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유 원내대표다. 이회창 전 총재의 측근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 전 총리간의 권력 투쟁 이후 두 번이나 집권을 놓치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게다가 집권 초에 비해 떨어지긴 했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층이 아직 공고하다. '90도 사과'에는 '개인 유승민'만 생각할 수 없는, 집권을 고민해야 하는 여당 원내대표로서 고민이 담겨 있는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유승민의 정치는 이제부터가 진짜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위기를 헤쳐갈 수 있다면 '정치인 유승민'이 한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확실한 발판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당장 박 대통령과 친박의 공세를 극복해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당청 관계 복원까지도 이뤄내야 한다. 결과에 따라 '자신의 스타일'을 접은 유 원내대표가 그저그런 정치인으로 전락할지, 더 큰 정치인으로 거듭날지가 머지않아 판가름날 전망이다.

◇선택의 길에 다가가는 김무성
김 대표는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논란 와중에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판단을 최대한 두둔하면서 비박계를 기반으로 한 당 대표로서 리더십도 잃지 않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입장이라는 비판을 사기도 했지만 당과 청와대의 정면충돌을 막기 위한 노력은 인정받고 있다. '국회법 개정안 재의결 불가, 원내지도부 유지'라는 큰 틀의 방향을 세운 것도 김 대표다. 특히 유 원내대표를 재신임키로 하는데 김 대표의 역할이 컸다. 이를 위해 청와대와 유 원내대표, 정의화 국회의장, 친박계까지 두루두루 접촉하면서 당내 갈등을 줄여가는데 집중해왔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와 함께 예상보다 훨씬 강도높은 발언들을 쏟아내면서 김 대표도 당혹스러운 처지가 됐다. '국회법 폐기, 비박 원내지도부 유지'라는 중재안을 청와대 비토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의 발언이 이후 친박계의 공세 수위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유 원내대표에 대한 재신임이 이뤄지지 것이 아니라 보류된 것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잇따라 모임을 갖고, 김태호, 이인제 최고위원 등 일부 비박계 지도부와의 동반 사퇴 카드까지 흘리고 있다. 이 경우 지도부의 절반 가까이가 이탈하면서 김무성 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
그렇다고 친박계의 요구대로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새로운 지도부 구성을 놓고 비박과 친박 간이 내부 갈등이 본격화될 수 밖에 없고, 친박 원내지도부가 들어서 청와대와 연계한 흔들기에 나설 경우 김 대표 스스로도 입지가 불안해질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임기가 반환점을 도는 가운데, 뚜렷한 차기 주자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다시 당청 관계가 종속적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부담이다. 차기 권력과 현 권력 간의 적절한 긴장관계가 정권 재창출과 총선 승리의 발판이 돼 왔다는데 대체로 이견이 없다. 김 대표와 유 원내대표 등 비박계 지도부가 들어선 것도 일방적인 당청 관계에 대한 반성이 크게 작용했다.
김 대표 개인도 고민이 크다. 그동안 당의 중재자로서 마지막 나침반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지만 차기 주자로서의 면모는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지난해 중국에서 '개헌 봇물 발언'을 했던 김 대표는 하루만에 자신의 불찰이었다며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번 국회법 개정안 논란 와중에도 청와대를 자극하지 않는데 주력했다.
이에 따라 비박 진영 내에서도 이제 김 대표가 리더십을 보여줄 때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 대표이자 현재 여권의 차기 지지율 1위 정치인으로서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임기 후반 낮은 지지율에도 정권재창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시 박근혜 대표를 중심으로 미래 권력과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현재 권력 사이에서 견제와 균형이 이뤄졌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중론이다. 당시 '이명박-박근혜'의 구도에 비해 '박근혜-김무성'의 관계는 훨씬 청와대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평가다.
상황적으로도 청와대가 당이 내놓은 중재안을 거부하고 계속 원내지도부 교체를 종용하고 있어 김 대표로선 새로운 선택이 불가피한 시점으로 가고 있다. '국회법 폐기, 비박 원내지도부 유지'라는 기존의 안으로 중재가 안될 경우, 청와대와 관계 강화냐 원내지도부 고수냐를 놓고 판단을 내려야 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김 대표의 다음 '수'에 관심이 집중될 수 밖에 없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