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위기의 출연연

[런치리포트]위기의 출연연

정영일 우경희 ,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기자
2016.11.15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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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종합

국가R&D 선봉 출연연, 어디로 가야하나

이상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이 5일 대전 카이스트에서 열린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및 25개 출연연구기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2016.10.5/사진=뉴스1
이상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이 5일 대전 카이스트에서 열린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및 25개 출연연구기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2016.10.5/사진=뉴스1

1990년대 'IT 강국' 신화를 이끈 것은 바로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기술이다.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은 1996년 세계 최초로 CDMA 상용화에 성공했다. 정부출연연구기관 ETRI(한국전자정보통신연구원)와 삼성전자 한국이동통신 등의 협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뿐만 아니라 컬러TV 수상기와 D램 등 한국 산업을 이끈 모든 제품과 기술 이면에는 출연연구기관들의 땀과 숨이 베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연연들이 위기에 처했다. 국가 주도형 경제개발의 시대가 저물고 연구개발 기능이 민간으로 대거 이전되며 출연연들에게 새로운 위상 찾기가 주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경쟁과 비용 효율성의 논리가 도입됐지만 오히려 출연연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국가 연구개발 체제를 전면 개편해야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어가고 있다.

◇연간 18.9조 투자…국가 R&D 이끈다

과학기술분야 연구개발사업을 지원·육성하는 기구는 NTS(국가과학기술연구회)다. NTS 산하에는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와 ETRI, KIMM(한국기계연구원) KRICT(한국화학연구원) 등 25개 출연연이 연구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국가연구개발사업에 투자된 예산은 무려 18조8747억원에 달한다. (시각물 참조) 세부 과제수는 5만4433건이다. 2011년 14조8528억원 대비 27.1% 증가했다.

1966년 KIST가 출범하며 출연연 시대를 열었다. 1973년에는 특정연구기관육성법이 제정되며 국가 지원의 근거를 마련했다. 1970년대에는 컬러TV 국산화(1973년)처럼 주력 제품 핵심기술 내재화와 관련기술 기업 이전을 목적으로 했다. 1980~90년대에 들어서는 기업과 대학의 R&D 역량이 높아지며 D램(1993년)과 CDMA(1996년) 등 중장기 국가R&D 사업에 주력해 왔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정부가 추진하는 미래 유망 핵심 기술개발과 국가 대형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2003년 한국형 고속철도 개발이나 2004년 DMB 상용화, 2013년 나로호 발사 등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이슈에 대응하고 국가적 난제 해결을 위한 역할 수행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특히 그간 국가 R&D 사업이 선진 기술을 빠른 속도에 추격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면 이제는 선도적 기술 개발이 과제다.

◇정원 76%가 연구직…대형 연구 경험도 강점

출연연은 연구개발조직이다. 25개 출연연의 정원 8788명 가운데 75.8%인 6662명이 연구직이다. 기술 개발과정에서 폐쇄적인 특성을 보이는 민간·기업 연구원과 달리 개방된 환경에서 국책 연구개발 활동을 추진한다. 개발된 기술을 빠르게 산업에 확산하는데도 민간 연구원에 비해 강점을 가지고 있다. 대학 연구소와 달리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해본 경험도 훌륭한 재산이다.

연구성과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2008~2010년 국가연구개발 사업을 기준으로 대학과 대기업 중소기업 출연연 등의 실적을 비교할 경우 SCI논문은 2위, 국내특허 2위, 기술이전 2위 등 주요 성과에서 모두 중상위 수준의 성과를 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높은 수준의 정보력과 기획력을 필요로 하는 국가·사회적 임무 수행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국가R&D사업의 효율성을 한 차원 끌어올리기 위해서 '출연연'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해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고급 인력과 안정적인 연구비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으로 지정돼 있다보니 자율성과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에서 추진하는 공공기관 경영혁신 등의 조치를 일괄적으로 추진하다보니 연구 현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출연연이 밀집해 있는 대덕연구개발특구 전경/사진=미래부
출연연이 밀집해 있는 대덕연구개발특구 전경/사진=미래부

◇출연연 공공기관 제외법 3건 발의

국회에는 이같은 출연연 제도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법안이 3개 발의돼 있다.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상정돼 있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 가운데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오세정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이다. 이상민 의원은 출연연이 모여 있는 대전이 지역구며 오세정 신용현 의원은 과학기술인 출신 비례대표 의원이다.

이 의원과 오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기관을 공공기관에서 제외하는 법안이다. 이상민 의원안은 과학기술출연기관법상 정부출연기관과 기초과학연구원, 국방과학연구소를 제외 대상으로 하며 오세정 의원안은 여기에 한국 광주 대구경북 울산 과학기술원이 포함된다. 반면 신 의원안은 공공기관의 분류에 '연구목적기관'을 추가하고 기능조정이나 경영혁신관련 조치 등에서 기관의 성격과 업무 특성 등을 고려하도록 돼 있다.

유사한 법안은 지난 19대 국회에서도 발의가 된 바 있다. 이상민 의원과 민병주 전 의원은 2013년, 이명수 의원이 2012년 발의했다. 신용현 의원안의 경우 유성엽 국민의당 의원이 2012년 유사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19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2013년부터 법안을 경제재정소위에 상정해 논의했지만 처리에 합의하지 못했다.

당시 소위에서는 출연연이 정부의 재정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고 방송사의 사례와 같이 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이 강하게 요구되는 기관은 아니라 공공기관 지정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특정 연구기관만 공공기관에서 제외할 경우 다른 기관들과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공공기관 규율의 범위 안에서 연구목적기관의 특수성을 고려할 수 있는 법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 바 있다.

"월급 70%만 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또 다른 논란 PBS 제도

'출연연 위기'의 시대를 불러온 것으로 지목된 제도 중 하나가 PBS(연구과제중심)제도다. 경쟁 논리를 도입해 능력에 따라 급여를 지급해 창의성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1996년에 도입됐다. 출연금 대비 PBS 비율이 50%라면 연구자 평균 급여 가운데 50%만 정부가 보장하고 나머지는 연구자들이 직접 외부에서 프로젝트를 따와서 충당해야하는 시스템이다.

도입 후 20여년이 지났지만 PBS제도에 대한 출연연 관계자들의 문제제기는 계속되고 있다. 우선 인건비 확보를 위해 대학과 기업, 다른 출연연과 과제 수주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인건비 충당을 위해 불필요한 장비를 구입하는 등으로 과제 규모를 키우는 사례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에 몰두해야할 연구원들이 과제 제안서 작성에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하는 것도 문제다.

단기 프로젝트에 연구역량이 집중되고 장기적 자원 투입이 필요한 기초 연구는 소홀해지는 단점도 있다.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국감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출연연의 주요 사업 가운데 연구기간이 3년 이하인 연구과제의 비율이 66%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쉽게 성과가 나는 단기과제가 양산되는 것도 문제다. 최근 3년간 정부 출연연구기관에서 수주한 2781개의 연구과제의 성공률이 99.5%에 달한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여론조사에서도 이같은 문제점은 그대로 드러난다. 오세정 의원실이 지난 9월 19~23일 4대 과기원(107명)와 출연연(482명) 소속 연구원 58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62.5%(368명)가 PBS제도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혔으며 32.4%(191명)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한 바 있다. 과도한 과제수행으로 연구의 질이 하락했다는 답변은 88.5%에 달했다. 과제수주 능력이 평가를 잘 받도록 평가체계를 왜곡하고 있다는 답변도 81.7% 수준을 나타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TS)는 이같은 폐단을 없애기 위해 '성실도전 제도'를 도입했다. 창의형 융합연구 사업부터 시범 적용한다. 지난 5월 과학기술전략회의에서는 11개 출연연의 출연금 인건비 비중을 올해 60%에서 2018년 70%로 높여 PBS 과제 수주 경쟁 대신 원천 기술 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출연금 인건비 비중 70% 미만인 11개 기관의 출연금 비중 역시 70%까지 올리기로 했다.

"잊을만 하면..." 공공기관 무용론 힘빼는 비리 헛발질

#대법원 1부는 최근 대전소재 A 정부출연연구원의 전직 연구원들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상고심에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대전고법에 돌려보냈다. 이들은 연구과제에 참여한 업체의 법인카드로 외상값을 갚고 유흥주점에 드나든 뒤 허위사업비를 주도록 서류를 꾸민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출연연이 총체적 부실을 지적받는데는 구성원들의 도덕적 해이와 낡은 시스템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과학기술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출연연이지만 개혁에 뒤떨어지면서 과학기술 개발 엔진의 지위를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 7월 감사원이 발표한 감사결과에 따르면 올 들어서만 5개 출연연에서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연구원 90명이 논문 저자로 이름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 뿐 아니다. 이자수입예산을 무려 100억원이나 고쳐 적어 성과급 잔치를 벌인 기관이 있었고 결산이자를 평균보다 적게 편성해 잉여금을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등의 비리는 복수로 적발됐다. 한 출연연은 요직을 미리 내정하고 특별채용을 진행했다가 미래창조과학부 감사에 적발되기도 했다.

이 같은 출연연의 헛발질에 공공기관 해제와 독립운영을 요구하는 일각의 주장은 힘이 빠진다. 기획재정부 한 관계자는 "공공기관 해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시기상조"라며 "정부가 출연하고 세금으로 연구비용을 지원받으면서 공공기관의 의무를 다하지 않겠다면 납세자들이 이해하겠느냐"고 말했다.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출연연이 여전히 영세한 상황이라는 점도 출연연의 공공기관 해제를 어렵게 하는 요소다. IT관련 정부부처 관계자는 "출연연을 모두 공공기관에서 해제해버린다면 지금보다 대기업의 외부 프로젝트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연구작업의 중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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