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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는 전국각지에서 3·1운동에 참여하여 자주독립정신의 확산에 기여한 여성 독립운동가 이선경, 조화벽, 김향화 선생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1일 밝혔다.
3·1운동은 1919년 초,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으로, 이선경, 조화벽, 김향화 선생과 같은 여성들도 주도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이선경(1902년~1921년) 선생은 숙명여학교 학생 신분으로 서울에서 3·1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1920년 비밀결사인 '구국민단'에서 활동하며 독립국가 조직, 수감된 독립운동가의 유족 구조 등 독립운동 방법을 모색하고, '대한민보' 등 항일 신문 배포 등을 담당했다.
이후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간호부가 되어 직접 독립운동에 이바지하고자 망명을 시도했으나, 출발 직전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풀려났다. 그러나 혹독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석방 9일 만에 순국했다.
조화벽(1895년~1975년) 선생은 호수돈여학교 재학 중 개성 지역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만세운동 저지를 위한 휴교령으로 본가인 양양으로 귀향하게 된 선생은 버선 속에 숨겨온 독립선언서를 동료에게 전달, 양양 지역 만세운동을 견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공주에서 교사로서 후진 양성에 열성적으로 힘을 쓰는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펼쳤다.
김향화(1897년~미상) 선생은 수원에서 기생조합을 이끌며 만세운동을 계획했다. 3월 29일에는 동료 기생 30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고, 이들의 만세운동은 시민들의 호응 속에 300여 명 규모로 확산됐다. 선생은 이로 인해 체포되어 징역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석방 후 서울로 이주했지만 이후의 생애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선경, 조화벽, 김향화 선생은 당시 여성의 사회적 제약을 뛰어넘어 독립운동에 투신했으며, 단순 참여자를 넘어 만세운동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의 활약은 3·1운동이 특정 계층이 아닌 온 민족이 주체가 된 거국적 독립운동이었음을 보여주는 등 한국 독립운동사의 거대한 분수령이 됐다.
정부는 애국지사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이선경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조화벽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김향화 선생에게 대통령표창을 각각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