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탈정치화 下] 3대 메가프로젝트 정책폐기청구서 ②

"말이 좋아 12년이지, 절대 쉬운 얘기가 아니다. 용인도 아직 후반부 용수와 전기가 완벽히 갖춰지지 않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최근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완공을 12년 앞당기기로 한 데 대해 한 말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3대 메가 프로젝트의 핵심인 서남권(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에 가장 큰 걸림돌도 결국 용수(물)와 전력이란 얘기다.
공업용수 부족 문제는 산업화 이후 계속해서 따라붙은 국가적 과제였다.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가 발표한 '4대강 살리기' 사업도 홍수와 가뭄 대책, 수질 개선 목적 등이 제시됐으나 출발은 '수자원 확보'였다.
당시 4대강 사업의 핵심은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본류 준설과 16개 보 설치다. 제방 보강과 농업용 저수지, 환경기초시설 확충 작업도 포함됐다. 2011년 본류 공정률이 96%였다. 2012년 상반기에 16개 보와 본류 공사가 마무리됐다. 영산강 승촌보·죽산보도 이 때 완성됐다.
공과는 선명했다. 준설과 제방 보강, 수위 유지를 통해 용수 확보와 치수 능력을 높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반면 물 체류시간이 길어지며 녹조가 창궐했다. 유명한 '녹조라떼'란 말이 이 때 나왔다. 강 바닥 골재 채취 등에 따른 생태계 훼손 지적도 제기됐다. 지역 수요와 무관한 토목사업도 적잖았다. 사업추진 속도와 경제성 평가를 둘러싼 논란도 컸다.
객관적 평가를 단숨에 집어삼킨 건 바로 정치였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집권과 동시에 4대강 사업을 대표적 적폐로 규정하고 단계적으로 보를 트기 시작했다. 집권 2년 뒤인 2019년 2월에는 금강과 영산강 3개 보를 헐겠다고 했다. 2021년 1월 죽산보 해체와 승촌보 상시개방을 결정했다. 4대강 자연화였다.
이미 완공돼 운영되던 국가 수자원시설을 폐기·축소하는 방향으로 단숨에 국가계획이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사업 공과를 시설과 기능에 따라 평가할 여유는 없었다. 한 야당 관계자는 "4대강 전체가 그저 각 정치 진영에서 소비되는 선악의 상징이 된게 이 시점"이라고 했다.
정권이 바뀌자 4대강의 운명은 또 달라졌다. 2023년 윤석열 정부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 결정에 문제를 지적했다. 물관리위는 죽산보 해체 결정을 취소했다. 승촌보 상시개방도 백지화됐다. 오히려 가뭄과 홍수 등 위기 대응에 4대강 보를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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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은 이어졌다. 지난해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다시 4대강 재자연화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다만 최근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를 중심에 둔 3대 메가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보다 정밀한 수자원 관리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지난 15년 간 4대강 보는 그대로 서 있었으나 보 위로 △건설해서 활용하겠다는 정책 △부수고 상시 개방하겠다는 정책 △다시 해체 결정을 취소하고 치수에 활용하겠다는 정책 △다시 재자연화 하겠다는 정책이 쉴 새 없이 오간 셈이다.
보를 개방하느냐 마느냐에 각각 맞춘 취수장과 배수장 수리, 대체 용수 대책 수립, 수질과 수중생태계 조사, 경제성 분석 등이 각종 위원회와 연구기관 용역을 통해 반복해서 이뤄졌다. 감사와 재검토도 적어도 한 두번 씩은 따라붙었다. 모두 막대한 비용이다.
눈에 보이는 비용보다 더 큰 것은 불확실성에 따른 청구서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호남지역 연구자는 "인근 농민들은 어떤 수위를 전제로 농사를 지어야 하는지, 지자체는 어떤 치수사업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며 "영산강이 수자원이냐 아니냐를 놓고 싸우던 판"이라고 했다.
이 시간에 다목적댐 건설이나 활용, 발전용수 확보, 농업용수의 산업용수 전환, 하수 재이용 등에 대한 의사결정이 먼저 이뤄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무엇도 완결하지 못하고 결론만 바뀌었다. 3대 메가 프로젝트의 시작점에 선 상황에서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일이다.
정부가 수자원 확보 전략 설계에 들어간 시점에서 앞선 정책의 교훈은 더욱 소중하다. 정부와 수자원공사는 광주권역 반도체클러스터에 필요한 일일 용수 65만톤 중 30만톤을 화순 동복댐에서 확보하기로 했다. 저수량을 늘린 후 용수를 공급한다는 건데 말처럼 간단치 않다. 수몰될 마을에서 1000여명의 이주민 발생이 예상되는데 동의 작업은 아직 시작도 하지 못했다.
수량이냐 수질이냐, 환경이냐 발전이냐를 다른 계산서로 계산하면서 허송세월 할 여유가 없다. 3대 메가 프로젝트가 받아들 첫 번째 정책폐기청구서가 물이라면 모든 요소를 한 장의 계산서에 올려놓고 한꺼번에 계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클러스터에 참여하는 기업 관계자는 "이후 수자원을 확보하는 모든 작업에 상상 이상의 투자와 지역사회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모든 구성원들이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