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자들이 발로 뛰는 취재 현장의 뒷얘기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사물의 앞면 보다는 뒷면이 진실에 더 가까울 수 있기에 기자수첩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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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는 일종의 플랫폼이다. 소비자들은 현금을 손에 들고 있지 않아도 카드 한 장을 매개로 카드사의 지급 보증을 받아 물건값을 치른다. 사업자(가맹점)들은 카드사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적은 리스크로 돈을 번다. 그런 측면에서 플랫폼 서비스의 한참 선배 격이다. 어느 정부든 플랫폼 사업자들이 서비스를 연결해 주고 받는 수수료를 법적 규제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다. 최근 비대해지고 있는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는 법안을 밀어붙이지만 수수료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를 명시하지 않는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기 때문이다. 신용카드도 다르지 않다. 전세계적으로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산정에 정부가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나라는 없다. 한국 정부만 빼고 말이다. 시장에 맡겨졌던 카드 수수료율은 참여정부 때인 2007년 초에 발표된 경제운영방향이 계기가 돼 법의 테두리 안에 가둬졌다. 당시에도 관치금융 논란이 있었지만 소상공인과 영세가맹점에 대한 수수료 부담 경감이 우선시 됐다.
일부 기업의 채용공고 중 2030세대가 기피하는 종류가 있다. 조식·중식·석식 제공업체다. 새벽부터 밤까지 부려먹겠다는 뜻이 묻어난다. 설상가상 '접이식 침대 제공'까지 들어가면 끔찍한 업무 강도가 예견된 곳이다. 세종시 공무원 아파트 특별공급도 원래는 그런 취지였다. 9년 전 식당도 제대로 없던 세종시에 중앙부처 공무원들 내려보내면서 터 잡고 살라며 특공 물량을 줬다. 공무원들이 서울 과천 등 수도권을 오가며 버리는 시간을 줄이고 세종에 뿌리 내리도록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다. 어떤 제도든 악용하는 이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관세평가분류원이 대표적이다. 171억원짜리 유령건물을 세워놓고 입주도 안한 채 직원들의 특공 물량만 챙겨줬다. 경위가 어쨌든 불합리한 사안이고, 환수 조치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당정청이 대책이라고 내놓은 게 다소 뜬금없다. 바로 '공무원 특공 전면 폐지'다. 국민 여론이 사납다는 이유다. 당초 특공 제도를 만든 취지는 안중에 없다. 당장 세종시에서 일하기 시작
김태현은 덤덤하게 모든 범행을 인정했다. 얼굴에서 표정 변화를 읽을 수는 없었다. 셋의 목숨을 빼앗았지만 그 중 둘은 우발적이었다고 변호사를 통해 주장했다. 유족들은 "살인마에게 기회를 주면 안된다"며 오열했다. 1일 노원구 모녀 살해 사건 첫 공판이 열린 서울 북부지법 법정은 경악과 분노로 가득찼다. 사건을 복기할수록 '만약 그때 신고가 됐다면' 이라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 지난 3월 23일 저녁, 서울 노원구 한 아파트에서 비명이 울렸다. 방음이 잘 안 되는 오래 된 복도식 아파트였지만 그 누구도 신고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아파트에서는 세 모녀가 한 스토커에게 무참히 살해당했다. 김태현이 살인을 계획하고 아파트에 들어간 것은 오후 5시 35분쯤이다. 자신이 스토킹하던 큰딸의 동생을 죽이고, 밤 10시 6분 귀가한 어머니도 살해했다. 그리고 밤 11시 30분쯤 들어온 큰딸은 마지막 희생자가 됐다. 김태현이 순차적으로 들어온 세 사람을 살해하는 데 걸린 시간은 6시간
"자영업자들의 '코로나 블루'(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가 가장 심각하다." 지난 3월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국내 코로나19(COVID-19) 사태 1년을 맞아 성인남여 10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자영업자의 79.4%는 심각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는데 이는 무직자(74.6%)보다 높은 수치다. 지난 22일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또다시 3주 연장했다. 일일 확진자가 여전히 500명대를 유지하는 등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는 만큼 당연하고도 불가피한 결정이다. 문제는 장기화하는 영업시간 제한 조치로 한계상황에 직면한 자영업자들이다. 올 초부터 정부와 여당이 공언한 손실보상이 조만간 이뤄지리란 기대로 근근이 버텨온 이들은 25일 국회가 7년 만에 개최한 입법청문회에서 "정부가 자랑하는 K-방역이 우리에게는 고통"이라고 절규했다. 이번 손실보상법 입법청문회에 출석한 한 자영업자는 "공무원이나 대기업 회사원 같은 봉급생활자들이 코로나19 사태로 봉급이 줄었습니까. 왜 자영
2016년 10월, 한국전자산업대전이 개막할 때다. 당시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현 삼성전자 상임고문)이 여러 부스를 둘러보던 중 LG전자 전시장을 찾아 꼼꼼히 살피더니 LG전자 최신 스마트폰 V20 재생 음악을 직접 감상했다. 그는 즉석에서 경쟁사 제품을 "좋네"라고 가감없이 평가해 여러 차례 기사화됐다. 당시 기사엔 담지 못한 뒷얘기가 하나 있다. 동료 기자들과 만든 채팅방에서 그래도 권 부회장이 경쟁사 부스를 찾아 관심 있게 제품을 들여다 본 것이 외국폰이 많이 팔리는 것보다는 한결 낫지 않느냐는 반응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국뽕스럽게' 느껴질 수 있어도 당시 채팅방에서 권 부회장의 행보는 긍정적이라는 목소리가 대다수였다. 2020년 10월, 인터배터리 행사에서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지동섭 SK이노베이션 배터리사업 대표가 LG화학 부스를 찾은 것이다. 지 대표는 당시 경쟁사 제품에 대해 "좋은 아이디어"라고 호평하기도 했다. 권 고문과의 사례와 다른 점이 있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란이 정치권으로 번졌다. 여야가 뜨겁게 붙는다. 양쪽의 입장을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는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상식. 공사 취준생에게 피해 안 감'. 미래통합당은 '정규직 되려고 공부하는 청년들에 대한 역차별'. 모두 맞는 말이지만 양쪽 모두 현상의 표면에만 집착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정치인들이 이번 사태 기저에 깔린 청년들의 울분을 모를리 없다. 하지만 각자에게 유리한 내용만 다룬다. 청년의 분노를 취사선택한다. 아전인수격 해석이다. 통합당은 취준생에게 나름 감정이입한다. 정규직 대상이 된 보안검색 요원을 향해 '문빠 찬스', '불공정 수혜'라는 낙인을 찍는다. 이번 논란을 촉발시킨 '연봉 5000 소리 질러' 등 문제의 카톡을 전면에 내세워 역차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카톡 아래에 감지되는 비겁한 노동구조와 그로 인한 비정규직의 설움은 모른 체 한다. 민주당과 청와대는 취준생의 분노가 잘못된 정보에 따른 것이라
"기자님, 성범죄 피해자가 가장 원하는 건 평범한 일상으로의 복귀에요." '형량이 깎인다는 걸 알면서도 피해자가 가해자와의 합의에 나서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피해자 전담 변호사가 말했다. 질문 취지에 맞는 답은 아니었지만, 호기롭던 나의 취재 방향이 틀렸단 걸 깨닫기엔 충분한 답이었다. 조주빈 체포 이후 성범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졌다. 법원을 출입하며 감경 사례를 자주 접했던 나는 공감했다. 법에는 가해자가 감경받아야 할 이유가 너무나 많았다. 특히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된 성범죄가 '합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성범죄에 정통하다는 변호사들은 하나같이 합의 감경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무엇보다 피해자가 원한다고 했다. 긴 재판과정에서 피해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했던 피해자들이 자신의 삶으로 빠르게 돌아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합의라고 했다. 피해자로 살아가는 동안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을 그들이었다. 금전
작년 12월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의 우아한형제들 인수 소식이 전해졌다. 배달의민족이 게르만민족이 된다는 우스개에도 전국 14만 치킨집·중국집 사장님은 웃을 수 없었다. 시장을 98% 점유한 DH가 소상공인 수수료를 인상하고, 가격 부담이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란 목소리가 나왔다. 우려는 생각보다 빨리 현실이 됐다. 배민은 지난 1일 수수료 체계를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바꿨다. 소상공인 52%는 수수료가 낮아진다는 주장과 함께. 코로나19 사태로 배달이 ‘생명줄’이 된 소상공인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일례로 월 3000만원 매출 소상공인은 현행 26만원보다 670% 인상된 174만원을 수수료로 내야 한다”며 “수수료를 유례없이 폭등시킨 것”이라고 반발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두 가지 일을 했다. 독과점을 염려하면서도 행여 혁신을 막을까 인수 문제를 거듭 검토했다.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수시로 현장을 돌며 을(乙)을 위한 자발적 상생으로 코로나19를 극복하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걸음은 쫓기는 듯했다. 통상 회의가 끝나면 문 앞에 대기하던 기자들에게 길든 짧든 한마디라도 해 주던 그가 입을 굳게 닫았다. 정부는 19일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에서 코로나19 관련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피해 기업과 민생을 지원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했다. 관심은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에 쏠렸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 한 시간 넘게 기다렸지만 홍 부총리는 답하지 않았다. 당장 답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유보적인 답이라도 내놓던 과거의 모습과는 달랐다. 국회 일정으로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이라지만 머릿속이 복잡한 탓이 아니었을까. '1분기 추경'이 갖는 무게감 때문일 것이다. 본예산 집행 초기인 1분기에 추경이 편성된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긴박하다는 뜻이다. 과거 20여년간 1분기에 추경이 편성된 것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 뿐이다. 갑작스레 닥쳐온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경제가 비상이란 점에는 이견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 국무회의에서
"임산부도 있고, 아이 엄마·아빠인 직원들도 있는데…우한 단체 공지조차 하지 않은 게 말이 되나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5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온 10여 명의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서울 시내 면세점투어를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면세점에서 일하는 A씨는 이같이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대규모 단체가 들어올 때는 그렇게 몇 번씩 공지하더니, 이번엔 아무 얘기 없었다. 최소한 마스크 정도는 쓸 수 있게 미리 알았어야 했던 거 아니냐"고 했다. 이날 아기를 데리고 면세점을 방문했다는 한 소비자도 "도대체 어디였냐"며 불안에 떨었다. 실제 해당 관광가이드를 했다는 B씨에게 확인한 결과 우한 관광객 18명은 지난 22일 입국해 25일부터 롯데, 신세계, 신라, SM, 현대백화점면세점 등 5곳의 서울 시내 유명면세점을 돌았다. 국내에서도 신종 코로나 공포가 확산되자 일부 면세점들은 뒤늦게 명단이 있었다고 밝혔고, 일부는 출국지
"저 5일치 숙박 예약 한번에 날아갔어요!" 지난주 친한 동생에게서 걸려온 전화다. 수화기 너머 짜증이 그대로 느껴졌다. 배경은 이렇다. 평범한 회사원이던 그는 그저 그런 수입과 무료해진 업무에서 탈피하고자 8개월전 부업을 시작했다. 숙방공유서비스 '에어비앤비'였다. 2개월만에 3곳으로 사업장을 늘리며 월 수입은 대기업 임원과 견줄 정도가 됐다. 애를 낳지 않는 핑계를 넉넉치 않은 월급 탓으로 돌렸는데,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러던 중 돌발 변수가 생겼다. 이미 몇주 전 예약했던 손님들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우한폐렴)를 이유로 줄줄이 예약을 취소한 것. 그가 생각지도 못한 리스크였다. 취소한 손님들은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중국 우한 인근 거주자들도 아니었다. 숙박료의 절반 가량을 수수료로 뱉어야 하는 내국인이었다. 불가항력의 환경에 의한 일이니 받아들이라고 달랬지만 그는 분을 삭히지 못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악재로 작용한 사업은 에어비앤비 뿐만이 아니다. 공유경제의 대표적
17년 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중국 정부로부터 한 통의 감사 편지를 받았다. 당시 중국 전역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로 어려움을 겪을 때 현대차그룹이 도움을 준 것에 대한 감사 표시였다. 사스가 창궐했던 2003년은 현대차가 중국에 본격 진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쏘나타'를 현지에서 판매한 지 채 6개월도 안 돼 사스가 발발하며 현대차 중국 사업엔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그러나 현대차는 현지 공장이 위치한 베이징시 사스 대책본부에 '쏘나타' 10대를 기증하며 사스 퇴치를 진심으로 도왔다. 공장 소독·방역을 철저히 해 직원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사스 청정구역'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 덕분에 정 회장은 공로를 인정받아 베이징시 명예시민으로 추대됐다. 2003년 현대차 중국 판매 목표는 5만대였지만 사스가 창궐했는데 불구, 5만2128대를 팔았다. 17년이 지난 2020년. 현대차는 또다시 중국 사업에서 '신종 코로나'라는 악재를 만났다.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