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자들이 발로 뛰는 취재 현장의 뒷얘기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사물의 앞면 보다는 뒷면이 진실에 더 가까울 수 있기에 기자수첩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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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7월자 '서울시 한옥비용지원 심의기준 공고'에는 최대1억5000만원이 주어지는 한옥 건축비 지원 자격을 갖추기 위한 체크리스트로 70개 넘는 항목이 열거돼 있다. 기와, 창호, 창틀, 대문, 중문, 용마루 등 기준이다. 이를 두고 건축 업계 일각에서는 "시대, 지역적 상황에 맞춰 우리 조상들이 다양하게 지어 왔던 한옥을 관(官)이 획일적으로 통일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초가집도 한옥" "한국인이 살면 한옥"이라는 식으로 가이드라인을 해체하면 지원 대상을 특정하는 게 어려워질 수도 있다. '한옥의 난제'를 떠올린 것은 문화재청·보그코리아의 '한복 화보' 속 옷차림 논란 때문이다. 문화재청의 '성(性)별 한복 착용 규정 삭제, 남녀한복 교차 착용도 무료입장' 보도자료(2019년6월)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상의(저고리)와 하의(치마·바지)를 기본으로 하며, 반드시 상·하의를 갖춰 입어야 한다". 얼핏 드레스처럼도 보이는 화보 속 모델의 옷을 시민이 입
지난달 처음 가본 강원도 양구의 모습에서 지방 소도시의 현실을 느끼고 돌아왔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양구를 향해 출발하는 버스의 좌석 수는 50개가 넘어보였는데 탑승객은 기자를 포함해 5명 남짓에 불과했다. 버스노선의 존재가 고마웠다. 2시간30여분을 달리자 양구의 한 초등학교 정문을 지나갔는데 'O기 동문, 사무관 승진'이란 큰 플래카드가 걸린 모습이 보였다. 한국 사람만 느낄 수 있는 이 독특한 촌스러움에서 이미 시간을 거스른 기분이 들었는데 터미널에 도착하자 정말 1980년대로 시간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취재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덕분에 터미널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도심 터미널 주변 상가는 늘 활기가 넘치지만 이곳은 그런 모습과 거리가 멀었다. 음식점이 영업 중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문을 닫은 줄 알고 가까이 가보면 영업 중이고, 손님을 받는 줄 알고 가보면 문을 닫은 가게였다. 터미널 주변에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 풍경도 취재를 마치고 돌아갈
유통업계에 저가 경쟁이 치열하다. 먼저 치고 나간 곳은 이마트다. 이마트는 지난달 우유, 휴지 등 40대 품목 46개 상품을 최저가로 판매하는 '가격의 끝'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난 24일에는 홈플러스가 매주 50개 핵심상품을 선정해 업계 최저가 수준으로 가격을 인하한다고 밝혔다. 롯데마트는 생필품 500여 품목에 대해 매주 목요일 실시간으로 가격 수준을 평가해 매가를 조정한다. 물가가 치솟는 가운데 상품을 저렴하게 공급해 소비자 혜택을 높이겠다는 게 업계의 명분이다. 하지만 수 많은 인터넷의 할인 플랫폼에서 상품이 판매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최저가 장담은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린다. 더 이상 소비자들은 마트 전단지 두세장을 비교해 보고 물건을 사지 않는다. 핫딜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카페에서는 햇반 개당 가격, 콜라 한캔 당 가격까지 세세하게 공유된다. 소비자들은 플랫폼 별로 발행하는 쿠폰, 2+1 행사 적용 가격 등 숨겨진 혜택을 적용해 최저가를 산출하는 반면 유통사들은
"정부 스스로 권한을 깎아먹는 설계다. 아니면 과거 정책을 '관치의 역사'라고 자인하는 꼴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내놓은 '민간주도형 모태펀드'를 접한 자본시장업계 반응은 대부분 비슷하다. '긴 단발'이나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같은 모순된 표현이라고 수근댄다. 일단 모태펀드는 '정부'가 돈을 모아 만들고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한국벤처투자를 통해 조합에 출자해 투자하는 방식이다. 그 자체로 정부 주도 정책 펀드다. 청년, 영화, 여성, 모험, 환경, 도시재생 등 특정 '정책 목적'이 반영된 출자 펀드가 있고 의무 투자비율도 있다. 금융위원회도 모태펀드와 비슷한 구조의 성장금융펀드를 만들고 한국성장금융을 통해 투자한다. 모태펀드와 성장금융 모두 정부 출자금으로 정책 목적 달성을 유도하면서 실제 운용은 자본시장과 기술 혁신 논리를 따른다. 그래서 업계와 시장의 '마중물'로 불린다. 모태펀드란 말엔 정부가 주도하되 민간 방식으로 운용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셈이다.
"경찰이 송어도 아니고, 어찌 1980~1990년대 경찰로 회귀하란 말입니까?" 지난 6월 행정안전부가 경찰을 지휘·감독하는 경찰국 신설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경찰내부망 '현장활력소'에는 이같은 글이 올라왔다. 현직 경찰관이 실명으로 쓴 글이었다. '검수완박'(검찰수사권완전박탈) 추진 당시 김오수 검찰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것을 거론하며 "김창룡 경찰청장이 사표를 내는 등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경찰 수장을 압박하는 글도 실명으로 올라왔다. 경찰국 신설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일련의 추진과정에서 14만 경찰관들은 내부의 자정능력과 비판능력이 살아있음을 보여줬다. 경찰국 논란을 함께 취재하던 기자들 사이에서는 "경찰 아직 살아있네~"라는 반응도 나왔다. 경찰들은 공개적인 비판으로 인해 향후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도 자신들의 이름과 직을 걸고 자신들의 의견을 여과없이 밝혔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경찰청은 이같은 글들이 공론화되자 '복무규정 준수 강조 지시'라는 제목의
"아~잠깐만…아까 산업현장에서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 법과 원칙만 갖고는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지난 17일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장. 윤석열 대통령은 회견을 종결하려는 강인선 대변인을 가로막으며 '노사 문제에서 법과 원칙만 강조하면 자칫 강대강 대결로 갈 수 있지 않느냐'는 앞선 기자의 질문에 대해 부연 설명했다. "법과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한다는 정부의 입장이 중요하고요. 아울러 그런 분규가 발생한 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대안 마련 역시도 정부가 함께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만 갖고 해결되지 않는다고 하면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답한 윤 대통령이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도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대안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인 것이다. 26년간 검사 생활을 한 윤 대통령에게 '법과 원칙'은 신념이다. 정치에 입문하고 대통령이 되고서도 국정의 최우선 순위는 바뀌지 않았다. 출근길 약식 회견(도어스테핑)에서 취재진의 각종 질문에 대한 답으로
최근 프리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한 에듀테크 스타트업 대표는 1년 전 시드투자 이후 10명이 넘었던 직원 수를 5명까지 줄였다. CS(고객응대) 등 인력(人力)에 의존했던 업무를 자동화하고, 회사의 성장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초기 멤버를 정리하는 등 생산성에 중심을 둔 조직으로 개편하면서 오히려 업무 효율을 높였다고 한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쉽게 빠지는 착각 중 하나가 조직의 몸집을 키우면 사업도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자신에게 부족한 영역을 새로 뽑은 사람을 통해 채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지금껏 만난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조직 규모를 키우면 잠깐은 효과가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를 관리하기 위해 상당한 비용과 에너지가 소모됐고, 조직의 비효율성이 커지면서 사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음을 뒤늦게 깨닫는 사례가 많았다. 벤처투자 시장이 얼어붙은 현재 스타트업들은 인력 조정이 불가피하다. 올해 초 시장이 호황이었을 때까지 스타트업 업계에 막대한 투자금이 몰리면서 몸집
"원희룡이 아니라 원현미다." 윤석열 정부의 첫 주택 공급방안인 '8.16 대책'이 나온 직후 생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별명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집은 사는(BUY) 게 아니라 사는(LIVE) 것"이라며 부동산정책을 이끈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과 이름을 합친 것이다. 기대를 모으던 대책이 발표됐지만 정작 시장에 영향을 미칠 만한 알맹이가 하나도 없는 '맹탕 대책'이라는 실망감을 비꼬아서 원현미라고 표현한 셈이다. 지난 정부에서는 스물여덟 번에 걸쳐 크고 작은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지만 결론은 참담했다. 주택공급이 수요를 맞추기엔 턱없이 부족했을뿐더러 전 세계적인 유동성 확대까지 더해지면서 집값은 급등했다. 주거 불안정은 극에 달했다. 정부가 '극약 처방' 같은 대책들을 내놓을 때마다 시장은 더 출렁거리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윤석열 정부의 탄생이 '부동산 심판론'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장을 뒤엎을 만한 강력한 정책을 원하던 사람들에게 이번 8.16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가 지난 16일부터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하이트진로 본사 로비와 옥상에서 사흘째 불법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경찰은 기동대 병력을 배치해 공권력 투입도 배제하지 않는다. 화물연대가 하이트진로 본사로 몰려가게 된 발단은 운임이다. 하이트진로의 소주 공장인 이천·청주공장의 화물 운송 위탁사 수양물류 소속 화물차주 132명이 지난해 12월부터 기름값 인상 등을 이유로 운임을 30% 올려 줄 것을 요구했다. 하이트진로의 100% 자회사인 수양물류와 협상이 여의치 않자 이들은 지난 3월 화물연대에 가입하고 하이트진로에 대해 총파업, 점거농성 등으로 대응했다. 화물연대 자료에 따르면 하이트진로 이천공장 화물차주가 성남까지(64㎞) 소주 2만3760병을 옮길 때 받는 운임는 지난 6월 기준 기름값 포함 10만6920원이다. 2009년 10만8096원보다 1.1% 낮다. 이 기간 리터당 경유값이 1300원대에서 2000원대가 됐으니 운임 인상 요구는 불가
지난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디스플레이 산업전시회에 갔을 때였다. 한 기업 임원은 "한국이 디스플레이 산업의 마지막 보루인데 정부는 지킬 마음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 임원은 중국이 유일한 경쟁자인 한국을 따라잡고 전 세계 디스플레이 산업을 주무르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했다. 중국 기업들의 가격 담합부터 시작해 중국 정부 영향력 아래 놓일 여러 전방 산업이 떠올랐다. 이 말을 들어서일까. 매년 같은 장소에서 열리던 전시회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왠지 모를 치열함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각고의 노력 끝에 국산화를 일궈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들, 가장 큰 규모의 부스를 꾸리고 여전한 기술력을 뽐낸 삼성과 LG가 다시 보였다. 하지만 연단에 올라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하는 기업과 기관 고위 관계자들의 얘기는 공허한 외침 같았다. 정부의 그간 행보가 떠올라서다. 디스플레이 산업은 올해 1월 국회를 통과한 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법에서 결국 제외됐다. 디스플
정부의 '민생안정 금융과제' 발표 이후 '도덕적 해이'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빚 내서 투자한 청년들의 투자손실까지 왜 정부가 떠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번 논란은 오해가 쌓여 생긴 측면이 크다. 금융위원회 해명대로 정부가 다음달 말부터 1년 간 한시 운영하려는 '저신용 청년 특례채무조정'은 기존 신용회복위원회(이하 신복위)의 신속채무조정 제도와 큰 틀에서 다르지 않다. 대상만 '만 34세 이하 신용평점 하위 20% 이하'로 한정했을 뿐, 기존 제도처럼 빚보다 재산이 많으면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다. 이자를 조금 깎아주고, 상환을 늦춰줄 뿐 원금 탕감은 전혀 없다. 무엇보다 채무조정 이후에는 신용카드, 마이너스통장 사용이 금지되는 등 불이익이 따른다. 오히려 정부 발표 내용만 믿고 신복위를 찾았다가 지원 대상이 아니라거나, 기대보다 못한 지원 내용에 실망할 청년들이 생길지 모를 일이다. 되짚어야 할 건 따로 있다. 정부 스스로가 '도덕
"2년 동안 못 봤으니 올해는 가야지." 올해 추석은 코로나19(COVID-19) 팬데믹(대유행) 이후 처음으로 '진짜 명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2주동안 코로나가 크게 확산되지 않는다면 친척들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일 것으로 보인다. 명절 증후군에도 이번에는 고향을 찾겠다는 사람이 많다. 친척과 고향 친구들을 만나는 것은 반갑지만 차례상을 차리는 일까지 즐거울지는 모르겠다. 밥상물가가 심상찮게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7월말 기준 20대 성수품 평균가격은 지난 추석과 비교해 7.1% 올랐다. 품목별로는 △무 42.8% △배추 33.7% △감자 33.6% △양파 25.2% △배 23.7% 등이 두드러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확대된 물가상승 기조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최근 폭우는 성수품 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정부는 지난 12일 비상경제차관회의에서 이번 폭우로 농산물 침수·낙과 879헥타르(ha), 가축폐사 8만6552마리 등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