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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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206 건
1970년 9월6일. 항공기 탑승객이 가장 많은 일요일, 팔레스타인 해방 인민(대중) 전선, 일명 PFLP가 각국의 팔레스타인인들 석방을 요구하며 하루 동안 뉴욕행 비행기를 동시다발로 납치했다.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스카이잭 선데이'(공중납치의 일요일) 사건이다. PFLP는 1967년 6월 중동전쟁에서 아랍이 대패한 직후 생긴 조직이다. 팔레스타인의 문제가 평화적인 협상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생각을 지닌 조직이다. 팔레스타인의 해방은 팔레스타인의 땅을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파멸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급진 단체다. 이들은 이스라엘과 스위스, 서독, 영국에 수감된 PFLP 조직원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비행기를 공중납치를 시도했다. 이들은 각국에 자신들의 요구를 거부할 경우 인질과 함께 항공기를 폭파하겠다고 협박했다. 관련 국가들은 인질이 된 승객과 승무원의 석방을 위해 협상에 나섰다. 타깃이 된 항공기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출발하는 미국 트랜스월드(T
51년 전인 1972년 9월 5일, 올림픽 개막 10일 차를 맞은 독일 뮌헨은 스포츠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당시 서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아픔을 극복하고 부흥에 성공한 '새로운 독일'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올림픽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뮌헨 올림픽은 세계 최초로 위성으로 생중계된 올림픽 대회기도 했다. 특히 이스라엘 선수단까지 대회에 참가, 서독은 뮌헨 올림픽을 통해 과거의 나치 독일과 완전히 결별했음을 알리고자 했다. 그러나 이날 새벽 4시께 세계 스포츠 역사에 남을 비극이 발생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검은 9월단' 소속 테러범 8명이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에 침입했기 때문이다. 검은 9월단은 이스라엘 국가대표팀 선수 5명과 코치 4명, 올림픽 심판 2명 등 모두 11명을 인질로 잡았다. 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이들은 "이스라엘에 구금된 팔레스타인 포로 234명을 석방하라"고 주장했다. 테러리스트들은 대회에 앞서 숙소 건설 현장의 인부로 활동하는 등 치밀한 준비성
1994년 9월4일, 프로야구 감독이 체벌에 나서자 선수 17명이 숙소를 집단 이탈하는 일이 벌어졌다. 일명 'OB 베어스 선수단 집단 이탈 사건'이다. 결국 OB는 2군 선수로 경기를 치렀고 126경기에서 53승 1무 72패의 전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8위는 쌍방울 레이더스가 차지하며 가까스로 꼴찌는 면했다. 시즌 개막에 앞서 우승 후보로 꼽혔던 것과 비교하면 처참한 성적이었다. 선수단 항명 파동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스포츠 폭력 문제에 경종을 울렸다고 평가받는다. 폭행으로 경기력을 끌어올릴 수 있기는커녕 시즌도 제대로 치러내지 못할 수 있다는 사례를 남긴 것. ━KBO 시범경기 1위 팀…8개 구단 7위로 '풀썩'━1994년 개막을 앞두고 OB 베어스는 강력한 우승 후보팀으로 꼽혔다. 그해 시범경기에서 5승 1패로 단독 1위에 올라섰다. 시즌 개막전에서도 쌍방울을 상대로 4-3으로 승리했다. 불행은 개막 이튿날 쌍방울전에서 찾아왔다. 당일은 김영삼 대통령 부부가 경기를 관전하기로
"나는 살인자가 아닙니다." 41년 전인 1982년 9월 3일. 살인 누명으로 옥살이하던 미국 동포 고(故) 이철수씨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듬해 석방된 이씨가 10년간의 복역 끝에 사회로 나올 수 있었던 건 미국에 사는 한인 동포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이 사건은 미국 백인 사회에 홀로 던져진 한국 청년에 대한 차별과 불공정한 사법 제도를 보여준다. 미국 내 한인들을 처음으로 결속시킨 역사적 사건이자 아시아계 민권 운동의 모범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살인 용의자로 몰린 21세 한인 청년…엉터리 증언으로 '무기징역'━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 간 이씨는 학교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또래를 폭행하다 교사에게 적발돼 퇴학 처분을 당했다. 훔친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경찰에 붙잡혀 절도죄로 수감되기도 했다. 이후 경찰은 동네에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씨를 용의자로 잡아들였다. 그러다 1973년 6월 3일, 당시 21세였던 이씨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꾼 사건이 발생했다.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약 6500만년 전 멕시코 유카탄반도에 떨어진 지름 10km의 초대형 소행성은 당시 지구의 지배종이었던 공룡을 멸종시켰다. 엄청난 화재와 지각 변동에 따른 화산 폭발, 먼지 등을 발생시켜 '지구 온난화'를 촉진했기 때문이다. 최근엔 소행성 충돌 대신 인류가 그 역할을 대신해 각종 활동으로 지구 온난화를 촉진하고 있는 가운데 2019~2020년 호주에서 장기간 발생했던 대형 산불이 오존층에 큰 구멍을 뚫는 등 지구 온난화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쳤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지구 재앙'으로 불리는 호주 산불. 2019년에 어떤 일이 벌어진걸까. ━한반도 면적 태우고 코알라 멸종위기━2019년 9월2일. 호주 남동부 지방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불은 호주 전역으로 번지면서 6개월째 호주를 불태우고 2020년 2월13일에서야 진화됐다. 호주 산불과 들불로 생긴 연기와 재가 바람을 타고 날라와 연무를 형성해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하늘을 황색으로 뒤덮어버리기도 했다. 심지어 불똥이 바
"교회, 주택, 모든 것이 불붙어 단숨에 타올랐고, 무시무시한 소음이…" (새뮤얼 피프스의 일기 중) 1666년 9월 2일, 영국 런던교 근처의 한 제과점에서 시작된 화재가 도시의 80%를 전소시켰다. 닷새 동안 이어진 화염은 주택 1만3000채와 교회 88채를 비롯해 영국의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인 세인트 폴 대성당을 불태웠다. 그러나 이토록 엄청난 규모의 화재에도, 이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단 6명으로 기록돼 의문을 자아냈다. ━제과점서 시작된 불…런던을 덮치다━ 화재는 1666년 9월 2일 일요일, 런던교 근처 푸딩 레인의 한 제과점에서 불이 나면서 시작됐다. 화재는 동풍으로 인해 서쪽으로 번져 런던 시내로 확산했다. 25만명가량이 거주 중이던 런던의 대부분 주택은 나무로 지어졌었다. 이에 불은 쉽게 이웃집으로 퍼졌고,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에 17세기 주요 화재 진압 방법은 건물을 철거해 그곳에 방화벽을 설치함으로써 소화를 하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이자, 가장 많은 사망자를 만들어낸 최악의 전쟁" 84년 전인 1939년 9월 1일,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전격 침공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21년 만에 다시 시작된 2차 세계대전의 방아쇠가 당겨진 순간이었다. 2차 세계대전은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 3개국을 중심으로 한 추축국과 연합국(미국, 영국, 소련, 프랑스 등)의 대결이었다. 이 전쟁은 1945년 9월까지 6년에 걸쳐 진행됐다. 전쟁이 이어지는 동안 30여개국에서 1억명이 넘는 군인이 참전했다. 사망자는 5500만명에서 최대 80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망자 대부분은 민간인으로, 홀로코스트 등 학살과 전쟁으로 인한 질병 및 기아 등으로 숨졌다. ━유럽 정복 앞뒀던 나치 독일과 노르망디 상륙작전━ 나치 독일은 폴란드 침공 후 무서운 속도로 유럽을 정복해 나갔다. 폴란드와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를 차례로 점령한 독일은 1940년 6월 당시 막강
1997년 8월 31일 새벽 0시 25분.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비가 세상을 떠났다. 집요하게 쫓아오던 파파라치를 피하려다 발생한 비극적인 사고였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1981년 찰스 왕세자(현 찰스3세)와 결혼하면서 일약 '신데렐라'로 떠오른 영국 왕실 스타였다. 그는 찰스 왕세자와 카밀라 파커볼스(현 카밀라 왕비)의 불륜 등 순탄하지 않은 결혼 생활을 이어가다 1992년 별거 후 1996년 이혼했다. 그리고 이듬해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36년의 짧은 생이었다. ━파파라치 피하려다 '쾅'…늦어진 구조, 결국 다이애나 사망━ 이날 다이애나는 연인이었던 도디 알 파예드와 프랑스 파리 리츠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겼다. 도디 알 파예드는 영국 리츠 호텔, 헤롯 백화점 등을 보유한 이집트 출신 억만장자 도디 알 파예드의 아들이었다. 두 사람은 식사를 마친 뒤 고급 외제차를 타고 알 파예드 집으로 향하던 중 파파라치
2005년 8월30일.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를 강타해 1800명 이상이 사망하고 1000억달러가 넘는 재산 피해가 났다. 카트리나 허리케인은 미국 남동부를 초토화 시킨 미국 역사상 최악의 재난 중 하나로 꼽힌다. ━초강력 허리케인 카트리나 미국 휩쓸어...인재가 키운 재앙 ━2005년 8월29일 카트리나는 루이지애나에 상륙했다. 가장 강력한 5등급 허리케인으로 시속 165마일(230㎞)의 강풍과 폭우를 동반해 30일에는 미국 남부를 강타했다. 강풍은 물론 10인치 이상의 폭우를 쏟아붓고 20피트(6미터) 높이의 파고가 몰아쳤다. 당시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최대풍속은 시속 280km를 기록했다. 카트리나의 위력은 대단했다. 도시 전체가 물바다로 변해 버렸고 한 건물 옥상은 누전으로 불까지 났다. 최대 피해가 우려됐던 뉴올리언즈에서는 이재민들이 머물던 슈퍼돔의 천장이 찢겨나갔고 도시의 80%가 침수됐다. 강풍에 찢겨지고 떨어져 나간 주택의 지붕과 건물의 유리창, 간판
"해방 이래 최악의 대재앙" 2016년 8월 29일. 그해 10호 태풍 라이언록이 함경북도 두만강에 상륙했다. 라이언록은 하루 최대 292㎜의 비를 뿌려대며 두만강 유역을 휩쓸었다. 빗발은 거셌다. 이틀 만에 두만강이 범람했으며, 3층짜리 아파트가 침수됐다. 한 주민은 자유아시아방송 등 외신과 인터뷰에서 "두만강 물이 10m가 넘는 강둑을 넘어 들어왔다"며 "평소보다 수위가 15m는 넘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 OCHA)는 지난 50~60년간 최악의 재앙이라는 분석까지 내놨다. ━138명 숨지고 400여명 실종…최악의 재앙━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매체에 따르면 이 홍수로 138명이 숨지고 400여명이 실종됐다. 마을 전체가 토사에 매몰되는 등 가옥 3만여채가 파손돼 이재민 14만명이 발생했다. 학교, 유치원, 보육원 등 공공건물 900여채가 손상됐고, 도로 180여개 구간과 다리 60여개가 유실됐다. 중국과 국경에 있던 세관 및 교량마저 유실돼 무역
36년 전인 1987년 8월29일. 경기 용인시 오대양 공예품 공장에서 대표 박순자(당시 48세)와 가족, 종업원 등 32명이 변사체로 발견됐다. 구내식당 천장에 겹겹이 쌓여있던 시신 대부분은 속옷 차림에 손과 발이 결박돼 있고, 목에는 뚜렷한 교살 흔적이 남아있었다. 당시 사건 경위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은 채 수사가 마무리됐다. 이후 4년 만에 오대양 공장 직원들의 자백으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다. ━회사로 둔갑한 종교 '오대양'…교주 박순자의 두 얼굴━사건은 박순자가 1984년 5월 오대양이라는 종교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그는 다른 종교단체에서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데리고 나왔다. 오대양이라는 명칭은 박순자가 "난 오대양을 지배할 사람이다. 앞으로 전 세계를 주관할 것"이라고 공언한 데서 나왔다고 알려져 있다. 박순자는 오대양을 민속공예품 제조업체로 위장해 사업을 확장했다. 서울올림픽 공식 협력 업체로 지정되기도 했다. 박순자는 직원들의 자녀를 위한 학사를 지원하는 등
2014년 8월28일. 전남 신안의 '염전노예' 사건 주범들에게 징역 3년6개월 등의 실형이 선고됐다. 그러자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염전노예 사건은 신안의 염전 업주들이 지적 장애인을 상대로 수년간 강제로 일을 시키고 폭행해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사건이다. 특히 주요 외신들이 이 사실을 전 세계에 보도하자 세계인들은 북한이 아닌 남한에서 이런 인권 침해 사건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장애인 인신매매, 임금체불, 학대...강제노역 세상에 알려지기까지━전라남도 신안군 신의도에 있는 염전에서 무슨일이 벌어졌길래 전 세계가 놀랐을까. 2008년 11월.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던 지적장애인 채모씨(당시 48살)는 일자리를 찾다가 무허가 직접소개 업자 고모씨를 만났다. 고씨는 채씨에게 더 좋은 일자리가 있다면서 채씨를 신안 염전으로 데려갔다. 알고보니 고씨는 30만원의 소개비를 받고 채씨를 홍모씨의 염전에 팔아버린 것이었다. 채씨의 고된 일은 이때부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