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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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27일. 이날은 여간첩 원정화(당시 34살)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날이다. 당시 원정화는 국군 장교들에게 성로비를 벌여 군사기밀을 빼오다 붙잡혀 충격을 줬다. 뿐만 아니라 수사를 통해 베일을 벗겨보니 그의 가족 모두 공작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남파 공작원, 조선족 위장해 남한 침입...경찰관·군 장교 교제하며 군사기밀 빼돌려━원정화는 1974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태어났다. 1988년 함북 부령군 고무산여자고등학교 4학년 때 학업성적이 우수해 '이중 영예 붉은기 휘장'을 받았다. 남파 공작원을 기르는 특수부대에서 1989년부터 훈련을 받던 원정화는 3년 뒤 머리 부상을 당해 의병제대했다. 그 후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쳐 교화소에 수감됐고 풀려난 후에도 또다시 아연 5t(톤)을 훔쳤다. 절도가 당국에 적발됐지만 친척의 도움으로 절도 사건이 무마되자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공작원으로 포섭돼 다시 남파 공작원의 길을 걷게 됐다. 2001년 당시 중국에서 활동하던
이슬람 무장 정파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아프간)을 장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아프간을 떠나려는 이들로 가득했던 카불 공항은 IS(이슬람국가)의 폭탄테러로 아비규환이 됐다. 갑작스러운 자살 폭탄 테러에 미군 13명 포함 183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당시 상황을 보도한 영국 가디언은 카불 공항 현장을 두고 "마치 종말의 날 같았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아비규환의 '카불 공항'…자폭 테러에 183명 사망━2021년 8월26일(현지시간) 카불 공항 외곽에서 IS 아프간 지부인 'IS 호라산'(IS-K) 소행의 연쇄 자폭 테러가 발생, 총 183명이 사망했다. 첫 번째 폭발은 공항 외곽의 애비 게이트에서, 두 번째 폭발은 미국인들의 대피를 위해 모이는 공한 인근 배런 호텔에서 벌어졌다. 당시 현장에 있던 이들은 테러범들의 타깃은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을 떠나려는 수천 명의 시민, 그리고 같은 달 31일까지 대피 및 철군 완료를 목표로 두고 있던 미군 등이었다. IS-K는
신림동 번화가에서 '흉기 난동'으로 4명의 사상자를 낸 살인범 조선(33)은 전과 3범이었다. 소년부 송치 전력도 14건이었다. 검거 이후 과거 범죄 전력을 고려해 그의 재범을 일찍이 관리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50년 전인 1973년 8월25일 당시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이종대(당시 38)와 문도석(31)도 전과 3범이 넘는 전과자였다. 이종대는 강도상해, 절도, 불법무기소지 등으로 복역 중 탈옥했다가 붙잡혀 1968년 출소했다. 문도석을 만난 곳은 마지막으로 이감된 안양교도소였다. 문도석은 해병대에 복무하다가 탈영해 불명예 제대한 뒤 폭력, 횡령, 업무상과실치상 등 죄목으로 옥살이했다. 이들은 네 차례 이상 범행을 저지르며 무고한 세 사람을 살해했다. 총 496만원가량을 빼앗았다. 이들은 "범죄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으로 직장을 구하지 못해" 범죄를 저질렀다고 변명했다. ━습관 된 범죄…강도살인 후 "지문채취 열심히 해보슈"━교도소 동기였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의 갑작스러운 폭발로 도시 전체가 화산재로 뒤덮였다. 화산이 휩쓴 도시는 당대 대표적인 휴양지였던 폼페이로, 이 폭발로 당시 폼페이 인구의 약 10%인 2000여명이 도시와 함께 역사에서 사라졌다. ━온화한 기후·비옥한 평야…귀족들의 휴양지━ 폼페이는 지금은 내륙이나 당시에는 베수비오 화산의 남동쪽, 사르누스강 하구에 있는 항구 도시였다.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캄파니아 평야 덕분에 농업 ·상업 중심지로 번창하였으며, 제정로마시대 초기에는 곳곳에 로마 귀족들의 별장이 들어서는 등 휴양지로서 성황을 이루었다. 폼페이는 제정로마시대 초기 전성기를 맞이했다. 당시 이 지역은 고대도시로서는 상당한 규모였으며 인구는 최소 2만~최대 5만명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000년간 침묵하던 화산의 갑작스러운 폭발━ 해발 1300m 규모의 베수비오산은 그다지 험준한 산은 아니었다. 1000년 가까이 화산 활동이 없었기에 위협적인 존재로 고려되지도 않았다. 그러
1971년 8월 23일 오전 6시께 경기 부천군(현 인천 중구) 실미도에서 훈련을 받던 공군 소속 684부대 북파공작원 24명은 교관 및 기간병들을 살해하고 부대를 이탈했다. 북파공작원들은 섬에서 빠져나와 낮 12시께 인천에 무장한 상태로 상륙했다. 육군 해안 경계 부대를 뚫어낸 이들은 인천과 수원을 오가는 버스를 탈취, 서울 영등포를 지나 청와대로 돌격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북파공작원들은 군인, 경찰들과 총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결국 서울 동작구 대방동 거리에서 진압 병력에게 포위됐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북파공작원들은 오후 2시20분께 버스 안에서 수류탄을 터뜨렸다. 실미도에서 숨진 1명을 제외하고 버스 안에는 23명의 북파공작원이 타고 있었다. 수류탄 자폭으로 이들 중 19명이 현장에서 사망했고, 4명은 큰 부상을 입고 체포됐다. 살아남은 4명의 북파공작원은 1972년 1월 군사 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고, 같은해 3월 모두 총살됐다. 이들의 장
2019년 8월 22일 새벽 서울 관악구의 한 재개발지구 빌라에 사는 여성 박모(사망당시 41)씨와 그의 아들(사망당시 6)이 침대 위에서 살해된 채 발견됐다. 범인은 이들에게 깊은 원한이 있었던 듯 여성은 무려 11차례, 아들은 3차례 칼로 찔러 살해했다. 경찰은 그날 새벽 1시쯤 집을 나왔다는 남편 증언에 따라 제3자 침입 가능성을 수사했지만, 물증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초기수사에 어려움을 겪던 경찰이 40여일 만에 범인으로 지목한 사람은 놀랍게도 남편 조모씨(45)였다. ━40여일 만에 특정된 용의자..."집 나올 때는 살아있었다"━사건이 일어난 빌라는 다세대 주택 밀집 지역으로 이웃의 눈을 피해 몰래 침입하기 어려운 여건이었다. 탐문 조사 결과에서도 낯선 사람을 봤거나 수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이는 나오지 않았다. 또 현장에는 외부에서 강제로 침입한 흔적이 없었고 집 안의 귀중품도 그대로 있었다. 수사 기관은 이런 정황을 토대로 외부인에 의한 범죄 가능성 보다는 매우 가까운
2018년 8월 21일 오전 9시31분. "손들어!" 경북 봉화군 소천면사무소에 들어선 70대 남성의 짤막한 외침과 함께 네 번의 총성이 울렸다. 면사무소 직원들을 향해 길다란 엽총을 쏜 건 4년 전 봉화로 귀촌한 김모씨(당시 77세)였다. 김씨가 엽총을 손에 넣게 된 건 사건 2시간 전인 이날 오전 7시50분쯤이다. 김씨는 경북 봉화군 소천파술소에 보관 중이던 엽총을 출고했다. 이 엽총은 이탈리아에서 제조된 산탄식으로, 5연발 총기였다. 이후 그는 곧바로 자신의 그랜저 차를 타고 평소 갈등을 빚어온 이웃인 스님 임모씨(당시 48세)가 있는 암자로 향했다. 임씨를 기다리던 김씨는 오전 9시13분쯤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임씨를 향해 엽총을 쐈다. 어깨에 부상을 입은 임씨는 인근 숲으로 피했고, 김씨는 2발을 더 쐈지만 빗나갔다. 김씨는 임씨와 상수도 문제 및 쓰레기 소각 문제 등으로 여러 차례 갈등을 빚어온 사이였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민원을 파출소와 면사무소에 제기한 바 있
"처음부터 죽일 의도는 없었다. 혼만 내주려고 했는데 죽이게 됐다" 2021년 8월 20일. 미제(未濟)로 묻혀 있던 이승용 변호사 피살 사건이 22년 만에 새 국면을 맞았다. 유력한 용의자 김모(57)씨가 한 방송사와 인터뷰하면서 22년 만에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김씨는 자신이 몸담았던 폭력 조직에서 이 변호사의 살인을 교사했다고 주장했다. 범행에 쓰인 흉기를 정확히 묘사했으며, 이동 동선 등을 설명하기도 했다. 김씨는 수사당국의 눈을 피해 22년 동안 숨어 있었다. 난데없는 인터뷰만 안 했다면 이 변호사의 죽음은 영원히 미제로 묻혔을지도 모른다. 그는 왜 구태여 사건을 다시 들춘 것일까. ━차에서 숨진 채 발견된 변호사…사건은 미궁 속으로━ 피해자 이승용 변호사는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한 수재다. 1984년 검사로 임명돼 서울지검과 부산지검을 거쳤다. 동기로는 채동욱·김진태 전 검찰총장,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홍준표 대구시장 등이 있다. 이 변호사는 1992년 검찰을 떠나
공항을 떠난 지 7분. 기체 후미 부분에서 불길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기장 모하메드 카화이터는 비상사태를 알리고 공항으로 기수를 돌려 비행기를 무사히 착륙시켰지만, 비행기는 착륙 후에도 계속 이동해 활주로 끝 유도로까지 간 뒤 멈췄다. 비행기 엔진은 계속 돌아가다가 비행기가 정지한 지 3분15초가 흐른 후에야 멈췄다. 실내는 이미 불길에 휩싸인 상태였고 안에 있던 승객 287명, 승무원 14명이 전원 사망했다. 사망자 중에는 한국인 4명도 있었다. ━무사 착륙했지만…승객·승무원 '전원 사망'━1980년 8월19일 오전 6시32분. 사우디아라비아 항공 163편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킹 칼리드 국제공항을 이륙했다. 기장은 모하메드 카화이터, 부기장은 사미 압둘라 하사닌이었다. 이륙한 지 7분이 지났을 무렵, 기체 후미의 화물 적재 칸에서 연기가 난다는 경보가 울렸다. 기체 가장 후미 쪽에 불길과 연기가 보였고 평화로웠던 기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승객들은 연기를 피해 밀
"조선 사람의 본때를 보여주라. 단, 남조선 노무자들은 건드리거나 총을 쓰지 말고 미제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줘라." UN군이 시야 확보를 위해 판문점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한다는 보고를 받은 후계자 수업을 받던 김정일이 이같이 말했다. 김정일의 명령을 받고 며칠 뒤인 1976년 8월 18일 오전. 벌목 작업을 지도하던 미국인 UN군 장교 2명이 조선인민군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단순히 미국과 북한의 문제를 넘어 UN에 무력도발을 한 대도발 사건이라는 점에서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했다. ━가지치기 조언하며 화기애애했는데…도끼 휘둘렀다 ━ 1976년 8월 당시 판문점은 물리적인 군사분계선이 존재하지 않는 단어 그대로의 공동경비구역이었다. 유엔군 측 3초소는 조선인민군 육군 초소 3개소에 포위당한 지점에서 항상 위협에 노출돼 있었다. 유엔군은 가장 위에 있는 5초소(OP 5)에 올라서 3초소를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3초소와 5초소 중간에 위치한 미루나무가
"저와 르윈스키의 관계는 적절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옳지 못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저 혼자 책임져야할 부분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예를 보여준다고 봅니다. 제 아내를 포함한 여러분들에게 잘못을 지절렀습니다. 정말로 후회하고 있습니다." 1998년 8월 17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TV로 방영된 대국민 연설을 통해 자신이 전 백악관 직원 모니카 르윈스키와 '적절하지 못한 관계'를 가졌다고 시인하고 가족, 친구와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이로써 미국 제42대 대통령 빌 클린턴은 백악관 인턴 사원이었던 르윈스키와 폰섹스, 성관계 등을 가진 사실을 부인했으나 독립검사 케네스 스타의 집요한 추적 끝에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 이 사건은 '지퍼게이트'로 불린다. ━대통령 비서실장 인턴직원과 사랑에 빠진 대통령━클린턴 대통령과 르윈스키의 관계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1995년 7월. 대통령 비서실장의 인턴 직원으로 백악관에 입사한 르윈스키는 클린턴 대통령
1977년 8월16일. '로큰롤의 황제' '로큰롤의 슈퍼스타'로 불리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사망했다. 그는 정크푸드와 진통제, 수면제, 안정제에 절어 테네시주 멤피스에 있는 자신의 저택 그레이슬랜드의 화장실에서 발견됐다. 하지만 엘비스의 사망 이후 사망원인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다. 공식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하지만 그의 주치의는 엘비스의 진짜 사망원인을 '만성변비'라고 주장했다. 부검기록 결과에 따르면 엘비스의 모든 기관들은 망가져 있었다. 엘비스는 죽기전, 7개월 동안 9000정(pill)에 달하는 먹는 약, 주사제를 처방받았다 한다. 이렇게 많은 약을 처방했던 의사(DR. Nick)는 엘비스가 죽은 후 비윤리적 약물처방 이유로 기소당하기도 했다. 엘비스가 그 많은 약을 먹었던 이유는 과도한 욕망, 스트레스, 과로, 우울증, 두통, 어지럼증, 불면증 등 여러 질병과 증상에 시달렸기 때문이었다. 엘비스의 평소 식습관에도 문제가 있었다. 그는 말년엔 치즈버거를 달고 살 정도였다고.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