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첨단 기술, 사회 변화, 지역 현장, 문화와 예술, 경제 이슈 등 우리 일상 곳곳의 다양한 현장을 깊이 있게 취재해 생생한 목소리와 트렌드를 전하는 뉴스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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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 이리 와~ 나랑 같이 사진 찍자." 5000여 마리의 나비가 날아 오르자 화관을 쓴 자매가 달콤한 향이 나는 꽃다발을 건네며 손짓했다.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아이도 나비를 좇느라 여념이 없다. 어린 자녀들을 지켜보며 연신 사진을 찍던 30~40대 부모들 마저 어느새 동심으로 돌아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톺아보기 시작했다. 지난 19일 찾은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 마련된 '라이브 나비체험관'(이하 나비체험관)의 풍경이다. 계묘년(癸卯年) 새해 들어서도 동장군이 심술을 부리고 있지만, 이날 에버랜드를 찾은 관람객들의 표정엔 포근함이 감돌았다. '봄의 전령사'들의 날갯짓에 찬바람이 물러났기 때문이다. 어린 자녀들과 함께 이 곳을 찾은 한 30대 관람객은 "한 겨울에 나비를 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오게 됐다"며 "요즘 나비 보기가 쉽지 않은데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겨울에 춤추는 나비…'히든카드' 뽑은 에버랜드━이달 6일 문을 연 나비체험관은 에버랜드 랜드마크
"네 집이 불타고 있어." 20일 오전 5시40분 서울 강남구 강남역 인근 매장에서 청소 일을 하고 있는 A씨는 집에서 나와 일터로 향했다. 한창 청소를 하던 중에 "네 집이 타고 있다"는 주민의 전화를 받았다. A씨는 하던 청소를 마무리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A씨가 마을 초입에 도착했을 때 대피한 주민들은 급하게 나와 점퍼 없이 내복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A씨는 "설에 애들 아빠 산소도 가야 하는데…"라며 추위에 붉어진 얼굴로 눈물을 훔쳤다. 불은 오전 6시쯤 발화 지점 아래 집에 살고 있었던 주민 노순표씨(75)가 최초 발견했다. 노씨는 연탄을 교체하려고 집 밖에 나오며 화재 현장을 목격했다. 자신의 집이 다 타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 신고할 새 없이 자체 진화에 나섰다. 근처에 있는 소화기 10여개를 다 소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영하의 날씨에 전날 밤 내려 지붕에 쌓여 언 눈과 비에도 불은 속절없이 옆 집으로 붙어갔다. 오전 6시33분 소방서 개포대가 선착대
설 연휴를 하루 앞둔 20일 오전, 서울역과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 터미널은 귀성객과 역귀성객으로 붐볐다. 이날 아침 서울의 최저기온은 영하3℃(도). 시민들은 연휴기간 예고된 폭설과 세민 한파로 두꺼운 롱패딩에 장갑까지 끼고 배낭과 쇼핑백, 캐리어를 끌며 버스와 기차에 탔다. 서울역 내 전광판에는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5시39분까지 대전·울산·부산·창원·마산·부산 등으로 향하는 주요 기차들이 매진됐다는 글이 빨갛게 적혀 있었다. 오전 9시를 넘긴 시각이지만 플랫폼에 배치된 60여개 의자엔 이미 시민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다. 서울에서 자취를 하는 직장인 이모씨(29)는 1년 만에 가족들을 만나러 울산에 간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취업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고 코로나도 심해서 고향을 가지 못했다"며 "오랜만에 가족들, 고향 친구들을 만난다고 생각하 설렌다"고 말했다. 설 명절을 앞두고 강원도 강릉의 군부대로 복귀한다는 이상민씨(23)는 "지난 추석에는 휴가를 나와 가족들과 보냈다
"당장 우리 딸부터 인터넷으로 주문하는데 다른 젊은 손님이 오겠어요?" 20일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한편의 3평 남짓한 가게에서 25년간 채소를 팔아온 이종남씨(57)는 "대목이 죽었다"는 말을 되뇌었다. 전기난로를 켠 가게 안에는 이씨의 딸이 부추 손질을 돕고 있었다. 이씨는 "평일보다 정말 조금 낫다"며 "손님들은 재래시장을 갈수록 더 안 찾는다"고 말했다. 설을 하루 앞둔 전통시장이었지만 '명절 대목'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온라인 마켓의 발달과 명절 차례상을 간소하게 치르려는 분위기에 시장을 찾는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시장을 찾는 손님 숫자가 평일과 다르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오전 11시쯤 남대문시장 식료품 골목에 문을 연 점포는 24곳이었고 골목을 지나는 손님들은 20명이 채 안 됐다. 점포의 점원들은 체감온도 섭씨 영하 10도의 날씨에 장갑과 털모자로 추위를 버티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17년째 남대문시장에서 식료품 가게 직원으로
지난 16일 오후 2시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대형마트에 두 남성이 30cm자와 전자정밀측정기를 들고 나타났다. 이들은 마트에 진열된 설 명절 선물 세트 제품 하나를 꺼내서 사이즈를 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마포구청과 한국환경공단에서 나온 관계자로 설 연휴를 앞두고 '과대포장' 합동점검을 나왔다. 이날 한국환경공단 직원은 식품 코너에 진열된 더덕 선물 박스 앞에 멈춰 섰다. 그는 제품이 담긴 박스에 손바닥을 집어넣더니 빈 공간이 얼마나 되는지 체크했다. 제품이 박스 높이까지 차있지 않은 것을 보고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는 함께 점검에 나선 마포구청 공무원에게 포장검사명령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육안으로 제품을 먼저 살펴보고 과대포장이 의심되는 경우는 지자체를 통해 포장 검사를 의뢰한다"며 "더덕, 인삼처럼 제품별로 사이즈가 들쭉 날쭉인 것들은 전체 제품의 평균 사이즈를 구해서 그 평균값이 포장 기준치를 넘어서는지 체크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서울시는 매년 설·추석 명
지난 17일 낮 경기 화성시 팔탄면의 물류센터 신축 공사 현장은 을씨년스러웠다. 9000평 남짓 공사 부지는 5m 높이 철제 가림벽이 둘러쌌고 2차선 도로에 접한 차량 출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다. 낮 11시쯤부터 한시간쯤 기다렸지만 트럭 한대도 공사장에 진입하지 않았다. 가림벽 너머 공사장에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차량 출입구 옆에는 작업자들이 다니는 2m 높이 통로가 있었다. 통로 양 옆에 '여기서부터 안전이 시작됩니다' '안전은 행복을 약속합니다' 문구가 써 있었다. 통로 오른편에 노란색 '작업중지 명령서'가 붙어 있었다. 명령서 '작업중지 사유'를 보니 "중대재해 발생"이라 적혀 있었다. 이곳 공사장에선 지난 14일 오전 7시49분쯤 큰 사고가 발생했다. 크레인이 틀비계(이동형 발판 계단)를 인양하던 중 철근 구조물을 건드려 무너뜨렸다. 신호수로 일하던 60대 남성 A씨는 무너진 철근에 깔려 숨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A씨를 부검하고 '다발성 골절로 사망했다'고 구두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수송동 도심 한복판에 있는 사찰 조계사에 눈이 내렸다. 눈은 쌓이지 않고 대웅전 앞마당에 녹아 물웅덩이를 만들었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박모씨(68·여)는 물웅덩이 옆에 비켜서서 기도했다. 이날은 조계사가 정한 관음재일. 중생을 구제한다는 관세음보살에게 기도하는 날이다. 박씨는 "가족 건강을 위해 기도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평생 불자였다. 1955년 조계사 뒤편의, 지금은 없어진 단독주택에서 태어났다. 대웅전 앞마당에서 동네 친구들과 소꿉놀이했고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매주 토요일 밤 조계사 불경 강의를 들었다. 29세에 결혼해 40여년 전에 낳은 딸은 지금 호주에 산다. 박씨는 매주 일요일 조계사에서 7~8시간을 보낸다. 오전 9시쯤 조계사를 찾아 오전 10시쯤 법회에 참석한다. 공양하고 점심을 먹고 친구들과 커피 한잔도 먹는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며 박씨가 쓰는 돈은 1만원을 넘지 않는다. 조계사 공양은 종류가 여러 가지다. 그중 초와 향 공양이 대표적
#"휘잉~ 치익" 굉음으로 가득한 공장 안으로 들어가자 수십대의 커다란 다관절 로봇들이 커다란 강판을 받침대 위에 올려 옮겨 놓자 판금 기계가 꾸욱 눌러 세탁기 통 안쪽에 요철을 찍어낸다. 이는 다시 로봇팔에 들려 형태를 잡는 틀로 이동,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그란 세탁기통 모양으로 말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용접까지 이뤄진다. 즉석에서 만들어진 세탁기, 건조기 부품들은 무인운반차(AGV)와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조립 라인으로 이동한다. 사람의 손길을 거치는 건 일부 볼트 조립과 검수 등에 불과하다.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한 라인에서 제조하는 '완결형 통합생산체제'를 갖춘 LG전자 테네시 공장은 LG전자의 스마트팩토리(지능화공장) 기술력의 정수가 집약된 곳이다. 지난 9일(현지 시각) 미국 남동부 테네시의 주도 내슈빌에서 한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작은 마을 클락스빌에는 2018년 LG전자가 3억6000만달러(약 4470억원)를 투자해 건설한 테네시 공장이 있다. 테네시 주 정부는
"5. 4. 3. 2. 1. 제로." 12일 오전 현대자동차·기아 남양연구소 안전시험동.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어두운 시험동 사이로 밧줄이 갈수록 빠르게 당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아이오닉5가 쏜살같이 달려와 귓가를 울리는 굉음을 내며 회색벽 앞에 준비된 파란색 충돌 장벽에 부딪혔다. 차량 앞으로 파편이 튀어올랐고, 이내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오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충돌 직후 남양연구소 직원들이 순식간에 달려와 에어백·안전벨트를 비롯해 문 개폐 여부와 절연저항, 배터리 파손 여부 등을 확인한 뒤 차량에 노트북을 연결했다. 차량 내 배치된 인체 모형(더미)에 부착된 센서가 사고로 얼마나 큰 피해를 감지했는지 그 데이터를 받는 작업이다. 이날 현대차그룹은 '2열 여성 승객에 가해지는 충격'의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충돌평가를 진행했다. 이는 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 협회(IIHS) 충돌 상품성 평가에 신규 추가되는 항목이다. 지난해까지는 운전자석에 남성 승객 인체 모형만 평가 대상이었
"명절 물량이 평소보다 5배 이상 늘어서 힘들지만, 기분은 너무 좋습니다. 직원도 더 뽑아 매출을 늘릴 겁니다." 11일 경기도 안성시의 한 건강보조식품 공장. 흰색 위생복과 모자, 마스크를 쓴 직원들이 분주하게 손을 놀리면서 끊임없이 생산 라인을 오갔다. 설 명절을 10일 앞두고 쉴 틈 없이 몰려드는 주문에 제품 상자가 창고 천장까지 쌓여 있었으나 직원들의 눈빛은 밝았다. 이 공장의 전 직원은 8명에 불과하지만, 스마트공장을 도입해 생산 효율화를 달성하면서 연매출이 6배 이상 뛰고 해외 수출까지 성공시켰다. 이 기업의 자그마한 '성공 신화'에는 삼성전자의 도움이 컸다. 삼성전자는 2015년부터 국내 중소·중견 기업의 동반 성장을 위해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혁신 기술과 성공 노하우를 지원하는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 사업'을 운용 중이다. '풀뿌리 기업'의 성장을 도와 일자리 창출과 매출 개선을 돕고, 나아가서 국내 산업 생태계 전반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대상 기업도 매출 증가와 고
10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어느 아파트 밀집 지역. 아파트 두 단지 사이로 난 차도(車道)에 아스팔트가 '쩍쩍' 갈라져 있었다. 흡사 거북 등껍질 같았다. 아스팔트 한가운데는 움푹 가라앉아 있었다. 깨진 부분을 두 발로 밟아봤다. 아스팔트가 스펀지처럼 내려앉았다. 깨진 부분을 차로 지나면 '울렁거린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주민들은 이 깨진 도로에 아스팔트 보수가 필요한 게 아니라고 한다. 이들은 '땅꺼짐(싱크홀)' 전조 증상을 의심했다. 주민들에게 땅꺼짐은 낯선 사고가 아니다. 지난해 7~8월 깨진 도로 반경 50m 안에서 세차례 땅꺼짐 사고가 있었다. 깨진 도로 옆으로 10m쯤 눈을 돌리면 땅이 절벽처럼 꺼져 있다. 지면에서 약 5m쯤 내려앉은 곳에 폭 2m 물길이 있었다. 물은 누렜고 달걀 썩은 냄새가 났다. 이 땅은 지난해 8월10일 내려앉았다. 당시 서울에는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마포구는 한강 이남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비가 적게 온 편이었지만 땅 밑에 있던 노후화한 배
지난달 28일 오후 3시30분쯤 찾은 서울 구로구 종합사회복지관. 이 건물 2층에 '시끄러운 도서관'이 있다. 계단을 오르자 아이 여러 명이 입 밖으로 소리 내 책 읽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서로 다른 책을 읽는 듯했다. 책 읽는 소리가 뒤섞여 계단이 울렸다. 시끄러운도서관은 2021년 12월 개관했다. '소곤소곤 말해라' '사뿐사뿐 걸으라' '얌전히 앉아라' 이런 규칙이 없다. 이날 한 여자아이가 김예은씨(가명·24)에게 다가가 "안녕하세요"라며 인사했다. 여자아이는 "저는 △△초등학교에 다니고요. 제 이야기를 들어주실래요"라며 말을 붙였다. 얼핏 보면 어린이 도서관 같지만 도서관은 '전체이용가'다. 하루 평균 30여명의 성인과 어린이가 책도 읽고 어울려 놀기도 한다. 나이는 달라도 도서관 이용객에게 한 가지 같은 점이 있다. IQ(지능지수)가 70 이하인 발달장애인이거나, 71~84에 속하는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점이다. 교육학계는 이런 이들을 아울러 '느린학습자'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