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인물들을 만나 그들의 경험과 통찰을 깊이 있게 전합니다. 생생한 이야기와 진솔한 답변을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제공하는 뉴스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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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서혜림 기자 (서울=뉴스1) 서혜림 기자 = "살아있는 사람의 눈동자라고 느꼈대요." 어머니는 아직도 그 사진만은 보지 못한다. 해경한테 받아낸 아들의 마지막 사진을 보고 남편은 한참 말이 없었다. 어머니는 그 사진을 영원히 보지 않기로 했다. 2014년 4월16일 오후 5시24분 3번째로 발견된 희생자 임경빈군(당시 고2)의 어머니 전인숙씨를 12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고 4.16기억교실에서 만났다. 최근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아들의 맥이 잡히는데도 헬기로 바로 이송되지 못했고, 4시간 넘게 배로 이송됐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인숙씨는 아들이 주검이 되어가는 영상을 그날 지켜봤다. "아이들 위해서도 참아야겠다. 발이 안 떨어져도 용기를 내서 갔는데, 화면을 보기가 너무나 힘들었죠. 보고 나서 쓰러질 것 같아 피신했어요."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전인숙씨는 아들을 허망하게 진도에서 잃은 후 의문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참사 첫날 병원에 가서
"우리 사회 불평등과 차별을 외치는 청년의 목소리는 49년 전 전태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겉모습은 많이 달라졌지만 속은 여전히 곪아 있습니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70)은 12일 불평등에 분노하는 요즘 청년들이 "전태일 같다"고 했다. 교사 출신 노동계 원로인 그는 2015년부터 재단법인 전태일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전태일 열사는 13일 타계 49주기를 맞는다. 내년이면 50주기다. 올해 4월 전태일기념관이 문을 열고 처음 맞는 기일이다. 이 이사장은 기념관 초대 관장도 맡았다. 기념관은 이 이사장이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건립을 제안해 지어졌다. 전태일 열사 추모 열기가 뜨거운 가운데 불평등과 차별이 사회적 쟁점이 됐다. 이 이사장은 "최근 분노하는 청년들이 딱 49년 전 전태일 열사 또래"라며 씁쓸한 미소를 내비쳤다. 49년 전 평화시장 재단사였던 전태일은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과 근로기준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정부에 목소리를 냈다. 집회가 무산될 위기에
그는 남는 시간에 게임을 즐긴다며 “이런 거 자랑해도 될지 모르겠다”고 웃었다. “‘문명’이라는 게임을 하는데, 최고 레벨 단계에 5차례나 올랐어요.” 어린애처럼 으스대다, 다음 한마디로 마주 앉은 이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아니, 솔직히 게임 좋아한다고 ‘커밍아웃’한 스님이 있나요?” 29일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원제 스님은 종단의 눈치를 보거나 기존 수행의 흐름을 마냥 좇는 평범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진리는 찾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라고 설파하고 자신의 말은 ‘힐링’이 아닌 ‘킬링’이라고 쏘아붙이기 일쑤다. 13년의 수행일기를 정리한 책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를 출간한 자리에서 그는 깊이와 넓이로 모든 물음에 반응했다. ‘진리’로 시작한 얘기는 ‘진짜’를 거쳐 ‘게임’으로 빠졌다가 결국 ‘진정성’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이 재미있고 복잡하고 미로 같은 대화를 한참 듣고 나니, 삶에 대한 희미한 성찰 한 가닥이 심장 한 켠에 꽂히는 것 같기도 했다. 책
"청소년을 청소년으로서 주권을 가진 동일한 주권자로 생각해달라" 2016년 12월, 전국 청소년이 한자리에 모였다.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그 때 학생들의 모임에 사회를 맡았던 김상천군(17)이 있었다. 그날은 김군에게 부끄러운 하루면서도 잊지 못할 추억이기도 했다. 당시 김군은 처음 사회를 맡아서인지 연설자를 잘못 소개하는 등 실수를 반복했다. 위축될 수 있었지만 참가 학생들과 행진할 때 그 두려움은 사라졌다고 한다. 사는 곳은 다르지만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서로를 응원하며 함께했기 때문이다.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 90주년을 기념해, 청소년 인권과 학생주권과 관련해 학생운동가 김군을 만났다. 김군은 2016년 그날을 계기로 학생 운동에 더욱 열심히 참여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나갔다.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에서 활동하며 장미혁명, 청소년 참정권 캠페인 등 수많은 집회에 참여했다. 김군에게는 당장 앞에 놓인 공부보다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게 더욱
"사실 큰 기대를 안 했는데, 미 국무부가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제재 면제 문제에 아주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여서 놀랐다. 미 상원도 적극적으로 지지를 표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관계자들 역시 실무적으로 도울 수 있는 건 돕겠다고 했다." 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기자와 만난 신명섭 경기도 평화협력국장은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끌어내기 위해 4일까지 6박7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한 신 국장은 미국 행정부와 의회, 유엔과의 면담 결과를 전하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신 국장을 비롯한 경기도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대표단은 지난달 30일 워싱턴에서 미 국무부의 마크 램버트 대북특별부대표, 미 상원의 마이클 시퍼 외교관계위원회 수석전문위원 등을 만나 대북 인도적 지원을 위한 협력을 호소했다. 이튿날엔 뉴욕 유엔에서 소냐 바흐만 아시아태평양국 팀장 등을 면담했다. 신 국장은 "국무부를 찾아가 한국의 대북
피부 보습제품 브랜드인 '세타필'로 잘알려진 갈더마는 지난 7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야심차게 개발한 신제품 세타필 바디워시를 한국에서 전세계 처음 출시한 것. 글로벌 소비재 업체가 신제품을 한국에 먼저 선보이는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 1일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갈더마 코리아의 르네 위퍼리치(Rene Wipperich) 대표는 "한국은 아시아 뷰티시장의 '트렌드 세터'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K뷰티의 본고장인 한국에서 인정 받으면 다른 국가에서도 주목도가 높아지는 '등대효과'를 노렸다는 것이다. 실제 세타필의 신제품은 출시이후 호평 받으며 전세계적인 주목도를 높이고 있다. 갈더마는 1981년 글로벌 식품기업 네슬레와 화장품 기업 로레알이 합작해 출발한 피부과학 전문업체다. 피부과 처방의약품 등을 주력으로하는 메디컬솔루션사업부와 세타필 중심 컨수머솔루션 사업부로 나뉜다. 지난해 글로벌 매출만 연 3조 4000억원 규모에 5000여명의 임직원이 근무한다. 최근 사모펀드에 매각됐다
"이번 3분기가 저점이라고 봅니다. 내년 중국법인, 대만지사를 활용한 OEM(제조자개발생산), ODM(주문자상표부착)발주가 본격화되면 20% 이상 외형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 30일 경기 성남 씨티케이코스메틱스 본사에서 만난 최선영 대표는 "3분기 글로벌 코스메틱그룹인 L사 산하 주요고객사 발주 감소로 실적이 부진했다"며 "그간 특정 고객사 의존도가 높았다면 신규 비즈니스로 여러 곳의 주요 고객사를 확보하는 것이 향후 1~2년간의 중점 사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1년 설립된 씨티케이코스메틱스는 화장품 생산 관련 모든 과정을 턴키로 제공하는 '풀서비스' 기업이다. 지난 7월 공동 대표로 선임된 최선영 대표는 지난 2009년 씨티케이코스메틱스에 합류해 제품 기획 및 영업 총괄직을 역임했다. 최대주주인 정인용 대표와는 신세계인터내셔널에 매각한 비디비치코스메틱 시절부터 경영일선에서 손발을 맞추고 있다. 씨티케이코스메틱스는 올 3분기 연결기준 매출액으로
“한국에 와서 사실 깜짝 놀랐어요. 좌우 진영 논리, 이념 대립이 미국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한국에도 갈등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거든요. 그런 상황은 영국이나 이탈리아 등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비슷해요. 하지만 국내 갈등은 어느 정도 관리가 가능한 편이죠.” 베스트셀러 ‘총, 균, 쇠’를 쓴 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 UCLA(지리학) 교수는 31일 서울 중구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대변동’ 출간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좌파든 우파든 국민을 한마음으로 모으는 자긍심을 안겨줄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의 ‘단합’ 제안은 식민지 시절을 이기고 경제 기적을 이룬 ‘자긍의 순간들’, 우수한 문자인 한글날이나 광복절 같은 기념일을 통해 리더가 주도하는 역할론에 방점이 찍혔다. 방법은 제각각이지만 중요한 건 ‘리더가 국민의 단합을 이끌며 자랑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을 계획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부 위협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그는 핀란
직접 음식점도, 프랜차이즈 본사도 경영해봤다. 지금도 골목시장 상인의 아들이다. 그가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의 최연소 기관장이 되었다. 지난 28일 개원한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이하 경상원) 임진 원장은 우리나라 자영업의 현실에 대해 “태어날 때부터 상인은 없지만 언젠가는 자영업자가 되어야 하는 나라”라며 말문은 열었다.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은 골목경제를 살리기 위해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주도적으로 추진한 사업이다. 이재명 지사는 개원식에서 “시장은 경제의 모세혈관이다. 시장에 피가 돌아야 한다”고 했다. 임진 원장은 “정부주도의 지원방식은 골목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며 “지방자치·재정 분권 시대에 맞춰 해당 업무와 예산을 자치단체로 이관하고 경상원과 같은 전담기관을 통해 체계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상원의 제 1목표를 ‘휴·폐업으로부터 자영업자를 지켜내는 것’이며 캐치프레이즈로 ‘혜민서(惠民署)스럽다‘를 내걸었다. 이를 위해 올해 중 권역별 경영지원센터 3곳에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란 작품으로 세계 1000만부 이상 팔아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스웨덴 출신 요나스 요나손은 ‘역사’ 대신 ‘풍자’를 넣어 일반 대중을 단숨에 끌어모았다. 기자 출신이면 ‘팩트’에 충실할 법한데, 그는 더 큰 ‘상상력’의 세계와 만났다. 이 작품 후속으로 9년 만에 내놓은 최근 작품 ‘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도 그 결은 비슷하다. 나이는 1살 더 먹었을 뿐 ‘도망치는’ 행위의 재미는 고스란히 살아 숨 쉰다. 신간 출간 기념으로 방한한 요나손은 25일 서울 광화문의 한 음식점에서 다소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기자들과 인사했다. 신간에 나오는 주요 등장인물이 유럽 작가에겐 낯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어서 그런 듯했다. “유럽에선 (김정은 캐릭터를) 속이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닌데, 한국에선 좀 무섭네요. 하하. 그만큼 제가 잘 모르기 때문이죠. 김정은에 대한 자료 조사를 충분히 했지만, 아무리 잘해도 허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이제 간단한 개인화가 아닙니다. 복수의 가면을 쓴 초개인화 시대에 접어들었어요. 강한 유대감보다 느슨한 연대의 움직임이 본격화할 겁니다.” 소비 패턴을 통해 그해 중요한 트렌드를 분석해온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트렌드 코리아 2020’을 통해 ‘작은 히어로’에 주목했다. 내년 쥐띠 해를 맞아 내세운 10개 키워드는 ‘MIGHTY MICE’(마이티 마이스)‘다. 김 교수는 2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간 간담회에서 “유목적 사회가 되면서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멀티 페르소나’(복수의 가면) 움직임이 심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를 풀어내는 키워드로 영어 알파벳 10개를 쥐띠 해에 맞게 내놓았다. M(Me and Myselves, 멀티 페르소나‘, I(Immediate Satisfaction:the ’Last Fit Economy’, 라스트핏 이코노미) 등 단축 키워드에는 소유보다 경험에 관심이 많은 밀레니얼 세대들의 다양한 정체성을 다룬 흐름이 응축돼 있다.
현재 한국 프로야구의 ‘국보’로 통하는 그가 처음 야구에 손을 댄 건 초등학교 6년 때. 친형이 백혈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캐치볼 하며 놀던 게 시작이었다. 그렇게 재미를 들일수록 형의 삶도 점점 줄어들었다. 죽음을 앞두고 형이 남긴 한 마디는 선수 생활 내내 격언이 됐다. “이왕 나 대신 시작했으니, 최고가 돼야 한다” 1980년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최우수투수상, 1985년 해태 타이거즈 입단 이후 91년까지 7년 연속 평균자책점 1위(0점대 평균자책점 3번 기록) 등 기록에 기록을 거듭한 선동열(56) 전 야구대표팀 감독 얘기다. 형의 유언처럼 그는 ‘최고’가 됐고 ‘국보’급 투수로 기억되는 중이다. 지난 48년 야구 인생을 오롯이 담아 22일 내놓은 책 ‘야구는 선동열’은 그런 역사에서 설득력 있는 자부심으로 비쳤다. 그는 이날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출판 간담회에서 “나는 국보가 아니다”는 ‘해명’으로 말문을 열었다. “96년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스에 진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