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인물들을 만나 그들의 경험과 통찰을 깊이 있게 전합니다. 생생한 이야기와 진솔한 답변을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제공하는 뉴스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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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원이 넘는 한국 커피전문점 산업에서 글로벌 브랜드와 당당하게 겨룰 한국 브랜드가 필요합니다. 2018년 20주년을 맞는 할리스가 그 역할을 해낼 것입니다." 할리스커피(이하 할리스)를 운영하는 김유진 할리스에프앤비 대표이사(37·사진)는 지난해 12월26일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2018년 창립 20주년을 맞아 내실과 성장을 강조했다. 매각 문제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라는 입장도 밝혔다. 할리스는 1998년 6월 국내 최초의 에스프레소 커피전문점이다. 지난해 2월 CEO(최고경영자)로 부임한 김 대표는 2013년 할리스를 인수한 PEF(사모펀드) 운용사 IMM PE(프라이빗에쿼티)의 투자본부 임원출신이다. 김 대표는 "20년동안 단 한 차례의 정체기 없이 매년 꾸준히 성장했다는 것이 할리스가 이룬 가장 큰 성과"라며 "이는 할리스의 미래 성장을 예측하게 하는 바로미터"라고 말했다. 할리스의 2017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400억원, 150억원으로 예상된다. 최근 5년사이 매출
"군산에서 가장 컸던 현대중공업과 한국GM이 함께 어려워지고 여기에 1·2차 협력업체까지 위기가 전이되다 보니 그나마 취업이 잘되던 지역 국립대까지 취업률이 3~4% 줄어 우려가 큽니다." 김동익 군산대 산학협력단장(신소재공학과 교수·사진)은 지난 20일 인터뷰에서 지역 거점 기업들의 고전으로 인한 지역의 젊은 인재 이탈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정부가 수도권 외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업체 지원도 필요하지만, 인재 양성을 위해 더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는 제언도 했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에 한국GM 철수설이 지역 사회에 미친 파장은. ▶젊은이들이 거주지 등 기반을 형성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게 안정적 직장이다. 지역의 커다란 축이 돼 온 기업들의 변화가 주민 생활에도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제 지역 경쟁력을 확보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선 대기업 유치도 중요하지만, 1·2차 협력업체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대기업 의존도가 낮은)
(서울=뉴스1) 장우성 기자 = 농아인들의 소통수단인 수화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언어다. 많은 사람들이 수화를 만국공용어로 알고있지만 나라별로도 다 다르다. 일반 언어보다 사용하는 단어수도 훨씬 적어 표현 제한도 적지않다. 표정, 몸짓 하나에 따라서도 의미가 달라지는 등 관용적인 용법도 많다. 처음 배우기도 쉽지않지만 끝없이 공부해야 하는 게 바로 수화다. 하지만 수화는 한번 빠져들면 벗어나기 힘든 매력이 있다. 새내기 수화통역사 노수연씨(34)의 말을 들어보면 그건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는 즐거움”이다. 노수연씨에게 수화는 서서히 찾아왔다. 가끔 수화로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면서 궁금했다. ‘저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호기심은 자기도 모르는 새 켜켜히 쌓여갔다. 수화를 배우기 전 노씨는 지상파방송, 케이블TV 등에서 방송 연출 일을 했다. 오래 꿈꿨던 일이었다. 일 자체는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고 보람을 줬다. 다만 양지 이상으로 음지도 큼직
(서울=뉴스1) 김재현 기자 = "지금까지 우리나라 교육은 '교사가 학생에게 지식을 주기만 하는 수동적 교육'이었어요. 물론 그런 교육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다가올 미래를 보면 마냥 좋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이제 달라져야 해요. '학생이 스스로 꿈을 찾고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으로요. 오디세이학교가 그런 새로운 교육의 '싹'을 틔울 것입니다." 내년 3월 정식개교하는 오디세이학교의 명예교장으로 위촉된 박재동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교수는 20일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확신에 찬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오디세이학교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1년간 공부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다양한 프로젝트나 창의적인 자율 교육과정에 따라 자유롭게 배우고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학교를 말한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추진하는 핵심정책이다. 박 명예교장은 유명 시사만화가이자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다. 요즘에는 '학생들의 꿈을 응원하는 교육'에 관심을 쏟고 있다. 학생이 원하는 분야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성 베네딕도 수녀회. 기자 간담회 분위기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이해인 수녀(72)라는 묵직한 존재감 때문인지 자판 치는 소리조차 내면 안 될 것 같은 엄숙한 분위기가 계속됐다. 적막을 깬 건 이해인 수녀. 그는 5분간 어제 부산에서 만들었다는 각종 선물을 공개하며 어린아이처럼 들뜬 목소리로 깨알 같은 설명을 잊지 않았다. 암 투병 10년째, 다시 만난 그의 목소리는 낭랑했고 말은 여전히 빨랐다. 달라진 게 있다면 재미가 곱절 늘었다. “작년에 제가 부산에서 강의하고 있는데, 그날 죽었다는 소문이 인터넷에 올라오고 추모글까지 나오는 걸 봤어요. 제가 살아있다고 어디 가서 항변하기도 그렇고….” 이해인 수녀는 이 ‘황당한’ 얘기를 재미있게 버무리며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아프다는 것, 그것이 주는 느낌 뒤편에는 역설적으로 기쁨, 즐거움, 행복 같은 단어를 더 많이 애용하고 깊이 들여다보는 기회와 만날 수 있었다.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이후
'빛의 고을' 광주는 지난해말 대통령 탄핵 국면 속 촛불 대신 더 밝은 '횃불'을 들었다. 5·18 민주화 운동 당시 희생자들의 아픔이 서린 도시였기 때문일까. 이후 지방행정에서도 암암리에 소외됐던 시민의 울분이 빛고을을 밝혔다. 윤장현 광주시장은 5·18 민주화 운동과 촛불, 아니 '횃불'을 모두 경험한 빛고을 토박이다. 그는 세상을 밝히려 안과의사가 됐다가 시민운동가로 변신해 시민 속으로 뛰어들었다. 광주에 대한 애정을 갖고 3년6개월 전 시장이 됐다. 그를 지난 5일 광주시청 집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다음 세대가 살게 될 세상을 준비하기 위한 '무한 책임'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보수 정권 하에서 야당 소속의 광역단체장으로 지냈던 애환도 허심탄회 털어놨다. 바뀐 정권에서 달라질 광주의 모습에 기대도 나타냈다. 윤 시장은 이렇게 말했다. 취임 직후 첫 결재가 생각난다. 루게릭병 환자 같이 몸이 마비되는 중증근육장애인들에 대해 시에서 간병인을 24시간 붙일 수 있게 하는 사업이
"안 되면 안 되는 거지, 그걸 어떻게 그리고 왜 되게 해야 하나요? 울고 있는 친구에게 '울지 마' 라고 하는 것보다 '울어도 돼' 라는 말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다 보면 될 것이라는 식의 조언만큼 무책임한 말이 또 있을까. 소망하던 일을 이루지 못한 것은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엔 어떻게 해도 안 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아프니까 청춘인거라며, 힘든 게 당연하고 더 큰 노력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식의 위로에 반기를 든 작가가 있다. 주인공은 제2회 머니투데이 과학문학상에서 '마지막 로그'라는 소설로 중단편 가작을 수상한 오정연 씨(39). 그녀는 소설에서 안락사 시설과 서비스가 일반화된 미래, 인생의 마지막 일주일을 앞둔 인간이 담당 안드로이드와 교감하며 삶을 마무리할 용기를 얻는 이야기를 그렸다. "살아남기 위해 혹은 안 되는 걸 되게 하기 위해 너무 애쓰다보면 오히려 사람이 망가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무조건 매사에 열심
"경리 업무의 본질은 돈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회사 운영의 가장 중요한 업무를 정확하면서도 편리한 방식으로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 우리의 슬로건입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경리 업무 전문 솔루션을 출시한 웹케시의 윤완수 대표(사진)는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온 지금 경리 업무에도 효율화가 가능해진 시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웹케시는 B2B(기업간거래) 핀테크 서비스 시장 선두주자를 자처하며 중소기업 시장을 공략 중이다. 웹케시가 이달 초 출시한 'SERP경리나라' 솔루션은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서도 없던 모델이다. 2008년부터 웹케시 중소기업 경리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해오며 현장에서 전해 들은 경리 담당자들의 목소리에서 태동한 현장형 서비스다. 경리나라라는 브랜드명은 10년간 웹케시가 운영해 온 인터넷카페 이름에서 따왔다. 윤 대표는 "신규 거래처가 생길 때마다 사업자 등록증 사본과 통장사본을 팩스로 보내는 일에서부터 직원들의 급여를 입력할 때 행여 실수라도 할까 걱
SF(공상과학소설)가 차갑고 딱딱하다는 건 편견에 불과하다. 지난 9월 제2회 머니투데이 과학문학상 수상작도 디스토피아의 위기 속에서 인간다움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중단편 가작을 수상한 이루카(36·필명)씨의 '독립의 오단계'는 '인권'이 아닌 '기계권'에 주목한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머니투데이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사람들이 AI(인공지능)의 필요성에 관해서만 이야기하지, 책임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초인공지능 시대에 기계와 인간이 비슷해졌을 때도 효용만 생각한다면 과거 노예시대랑 다를 게 없지 않을까요?" '독립의 오단계'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일정 비율로 섞이는 미래를 상상한다. 인간 가재민의 신체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안드로이드가 인공지능을 통해 가재민의 뇌와 교감하며 존재 이유를 찾는 내용을 그린다. 안드로이드는 가재민의 지능을 무단 탈취해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다. 습작을 제외하면 첫 SF임에도 기계언어와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낮은 수준이어서 금리인상 속도와 폭은 제한적이다. 장기채 금리도 크게 오를 것 같지 않아 수익(인컴)을 위한 대안을 찾아야 할 때다. " 스튜어트 럼블 피델리티자산운용 멀티에셋부문 투자디렉터는 14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금리인상기 투자전략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전날 미국이 기준금리를 1.25~1.5%로 0.25%포인트 인상했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어서 그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는 자산에 투자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는 성장 모멘텀이 올해 고점을 치고 내년에 둔화될수 있지만 여전히 긍정적이라고 판단해 위험자산 투자가 유망할 것으로 봤다. 다만 올해 여러 자산군 가격이 비싸져 과거만큼의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럼블 디렉터가 담당하는 피델리티 글로벌멀티에셋인컴 펀드는 내년 다소 방어적인 전략으로 시장 배당수익 대비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인헨스드(enhanced) 인컴 전략을 사용할 계획이다. 가장 선호하는 투자자산
'더는 견딜 수 없다'고 느낄 때 선물처럼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작가는 10여 년 동안 연극 외길을 걷다가 소설, 그중에서도 가장 생소한 장르인 SF(공상과학소설)에 다다랐다. 그는 마흔을 앞두고 큰 선물을 받았다며 아이처럼 기뻐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머니투데이 본사에서 SF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로 제2회 머니투데이 과학문학상 중단편 가작을 수상한 김혜진(38)씨를 만났다. 김씨는 성균관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다. 대학로를 오가다 보니 연극은 자연스레 일상이 됐다. 대학 때 친구들과 극단을 만들어 활동하며 극작가라는 꿈을 키웠다. 졸업 후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좀 더 전문적인 연극 공부를 했다. 김씨에게 희곡은 일기 같은 것이었다. 극단에서 잡일을 할 때도, 2011년 '플랫폼 문화비평상'에 당선돼 비평가로 활동할 때도, 대안학교에서 강사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늘 작품을 썼다. 하지만 작품은 서랍 속에서 좀처럼 빛을 보지 못했다. "30대에 접어든 후로 아르바이트
큰 나무 위에 작은 나무집을 짓는 일은 '톰 소여의 모험' 같은 소설 속 이야기일까. 이용선 생활건축가(53)는 어린 시절 누구나 상상해보지만 이룰 수 없었던 꿈을 현실로 만들어 준 키다리 아저씨다. 아이들이 직접 나무를 들고 사다리부터 하나하나 만들어 나갈 수 있게 돕는다. "스스로 자기만의 공간을 만드는 일은 제 어릴 적 '로망'이기도 했죠. 아이들을 대상으로 목공수업을 하며 대화를 하다 보니 요즘 아이들도 그런 꿈이 있더라고요. 집도 만들 수 있느냐는 아이들에게 답해주고 싶었고 트리하우스(나무집·살아있는 나무를 중심으로 나무로 만든 일종의 놀이공간)를 만들게 됐어요." 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한 이용선씨가 처음부터 목공 선생님이었던 건 아니다. 삼성중공업에서 현장 업무를 맡아 약 12년을 일했다. 직장에서도 인정받아 남들보다 빠른 승진을 눈앞에 둔 대기업 과장이었다. 그런 이씨가 회사를 떠나 2003년 경북 상주로 내려온 결정적 계기는 아이들이었다. 이씨는 "매일 같이 야근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