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의 웰빙에세이
일상 속 건강과 행복을 위한 다양한 정보와 실천법을 쉽고 친근하게 전달합니다. 몸과 마음의 균형, 웰빙 트렌드, 자기관리 팁 등 삶의 질을 높이는 유익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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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 가져가지 못하는 재산을 삶의 잔고라 하자. 이 잔고를 얼마로 하고 싶은가?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 잔고를 늘린다. 죽을 때까지 더 벌고 덜 쓴다. 둘, 잔고를 지킨다. 죽을 때까지 버는 만큼 쓴다. 셋, 잔고를 줄인다. 죽을 때까지 덜 벌고 더 쓴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잔고를 늘리는 쪽이라면 당신은 타고는 장사꾼이거나 구두쇠다. 또는 억세게 운이 좋거나 복이 많은 사람이다. 잔고를 지키는 쪽이라면 당신은 머리가 아주 좋거나 많이 굴리는 사람이다. 잔고를 줄이는 쪽이라면 당신은 능력이 달리거나 용감한 사람이다. 나는 잔고를 줄이는 쪽이다. 능력이 달리거나 용감하다. 나도 처음에는 잔고를 늘리려 했다. 그게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았을 때 잔고를 지키는 쪽으로 바꿨고, 그것도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았을 때 잔고를 줄이는 쪽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깨달았다. 잔고를 줄이는 쪽이 가장 쉽고 편하고 즐거운 길이라는 것을. 잔고의 양과 욕망의 양이 같다는 것을. 내가 원하
우리는 인생의 아침에 세운 계획에 따라 인생의 오후를 살 수 없다. 왜냐 하면 아침에 위대했던 것이 저녁에 미미해지고, 아침에 진실했던 것이 저녁에는 거짓이 되기 때문이다. 칼 융은 란 책에서 이렇게 썼다. 원문을 확인하지는 못했는데 뉘앙스가 조금 다른 번역도 있다. 인생의 아침 프로그램에 따라 인생의 오후를 살 수는 없다. 아침에는 위대했던 것들이 오후에는 보잘 것 없어지고, 아침에 진리였던 것이 오후에는 거짓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앞의 것이 좋다. 그러나 뜻은 뒤의 것이 더 분명하다. 융은 인생의 곡선은 반으로 나누어진다고 했다. 오전과 오후, 또는 전반과 후반. 이중 오전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이고, 오후는 자기를 향해 다가가는 시간이다. 전반은 '세상 밖으로'이고, 후반은 '내 안으로'다. 과연 그런가? 인생은 오전과 오후가 달라야 하나? 나는 동의한다. 인생의 오후는 오전과 달라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그러지 못한다. 융은 "사람들이 완전한 무방비 상태에서
나는 삶을 살지 않는다. 자꾸 뒤로 미룬다.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살려고 한다. 다음에 살려고 한다. 원하는 일은 뭐든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 하고픈 일은 뭐든 다음에 다음에 다음에. 그래서 미련이 남는다. 여한이 쌓인다. 그 미련과 여한의 양만큼 나는 잘못 살고 있다. 오쇼 라즈니쉬는 말한다. "우리는 항상 삶을 연기한다." 그리고 경고한다. "그렇게 살면 어느 순간 죽음이 찾아와서 삶이라는 선물을 앗아갈 것이다." 나는 너무 바빠 시간이 없다. 놀 시간이 없다. 쉴 시간이 없다. 즐길 시간이 없다. 어울릴 시간이 없다. 사랑할 시간이 없다. 한 마디로 살 시간이 없다! '인생 90년'에서 30년은 잠으로 빠진다. 30년은 공부로 빠진다. 30년은 일로 빠진다. 남는 것은 무엇인가? 한평생 나는 무엇을 했던가? 나는 삶을 살았던가? 내가 한 공부와 내가 이룬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시인 위스턴 오든은 초대한다. 삶의 무도회로 나를 부른다. 별들이 서까래에서 내려올 때까지 춤추
나무와 나는 형제다. 우리는 한 날 한 시에 한 곳에서 나왔다. 138억 년 전 조그만 우주 알이 꽝 하고 터질 때 같이 태어났다. 그때 집을 나서 먼 여행을 떠난 우리가 다시 만난 건 언제였던가? 불덩어리 지구가 잦아들어 이산화탄소로 가득할 때 너는 이 땅에 왔다. 너의 숨결로 지구에 산소가 넉넉해질 즈음 나도 이 땅에 왔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만나 둘도 없는 형제가 됐다. 지구별에서 너는 형이고, 나는 아우다. 너는 위대했다. 너는 지구를 식히고, 이산화탄소를 가두고, 물을 거르고, 땅을 길들였다. 네가 있어 나는 산다. 나는 네가 뿜어 낸 산소로 숨을 쉰다. 네가 키운 잎과 열매, 씨와 뿌리를 먹는다. 너의 몸으로 집을 짓고 불을 지핀다. 네가 땅 속에 가둔 탄소로 풍요를 누린다. 석탄을 꺼내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석유를 꺼내 문명의 탑을 쌓아 올린다. 삼림과 밀림을 베어 내 배를 불린다. 너는 정말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생명의 나무다. 아우는 욕심 사납다. 끝도 없이 탐
부드럽게, 편하게, 순순하게! 삶이 이렇게 풀리면 얼마나 좋을까? 강물처럼 흐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려면 나부터 물처럼 부드러워져야 한다. 어떤 일이든 편하게 받아들이고, 순순하게 나아가야 한다. 막히면 기다리고, 걸리면 돌아가야 한다. 나는 그럴 수 있나? 막히면 기다리고, 걸리면 돌아갈 수 있나? 어렵다. 그러니 연습을 하자. 훈련을 하자. 다음은 나만의 훈련법.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마다 쓰는 방법이다. · 이번 마지막 승객이 다음 번 첫 승객보다 빠르다. · '잘못하면 마지막'인지 '잘못해도 다음 번 처음보다 먼저'인지는 내가 선택한다. 나는 잘못하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버스만 보면 달려간다. 지하철만 보면 몰려간다. 재빨리 줄을 선다. 새치기를 경계한다. 주춤하면 제친다. 얼른 빈자리를 찾아 주저 없이 앉는다. 빈자리가 없으면 곧 일어날 만한 사람을 찾는다. 그 앞으로 가서 자리를 지킨다. 그리고 다시 살핀다. 더 나은 자리는 없는지, 자기 앞에 빈자리가 나는데
제주냐, 화천이냐? "도시여 안녕"을 외칠 때 나는 마지막까지 고민했습니다. 아! 제주로 가야 하는데, 첫 눈에 나를 홀렸던 위미로 가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나는 강원도 산골로 왔습니다. 더 질기게 나를 끌어당기는 인연의 힘을 받아들였습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습니다. 화천에 아무 연고가 없습니다. 친구도 없습니다. 군 복무를 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홍천 분이고, 어머니는 강릉 분이니 내 몸에 흐르는 강원의 피를 어떻게 거부하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바다가 아니라 강으로 왔습니다. 산으로 왔습니다. 그 이후 마음 한 켠에 진하게 남아 있는 향수, 제주의 바다와 바람과 한라산과 오름과 억새와 햇살과 숲과 동백과 길. 십여 년 전 아들과 제주를 여행할 때 나는 위미의 한 골목길에서 앗! 하며 차를 멈췄습니다. "여기, 이곳은 내가 살 곳이다! 내 영혼이 머물고 싶은 곳이다!" 내 안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3년 전이던가. 화천으로 귀촌한 다음
나는 얼마나 자연과 가깝나? 얼마나 깊이 자연을 느끼나? 인디언들은 부족마다 달에 붙이는 이름이 달랐다. 1월, 2월, 3월…. 하나 같이 이런 식이 아니었다. 1월의 이름은 1월을 특징짓는 것, 그것이 내 마음에 남기는 것이었다. 다음은 그 이름들이다. 여러 이름 가운데 비교적 쉽게 그 달이 연상되는 것으로 두세 개씩 골랐다. 무작위로 배열했으니 순서대로 맞춰보자. 많이 맞출수록 당신은 자연과 가까운 사람이다. 자연을 깊이 느끼는 사람이다. 1.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달 / 강풍이 죽은 나뭇가지 쓸어가 새순 돋는 달 2.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 물이 나뭇잎으로 검어지는 달 / 샛강 가장자리가 어는 달 3. 천막 안에 앉아 있을 수 없는 달 / 풀 베는 달 / 조금 거두는 달 4. 나뭇잎이 짙어지는 달 / 산딸기 익어가는 달 / 옥수수수염 나는 달 5. 산이 불타는 달 / 양식을 갈무리하는 달 / 첫서리 내리는 달 6. 뽕나무 오디 따먹는 달 / 구멍에다 씨앗 심는 달 7
산골로 오면서 세 가지 생활 원칙을 세웠습니다. 하나, 덜 벌고 더 살기 둘, 꼭 하고 싶은 일과 꼭 해야 할 일만 하기 셋, 삶과 공부와 글을 일치시키기 이렇게 살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질문이 생겼습니다. 하나, 덜 벌고 더 사는 게 아니라 덜 벌고 덜 사는 건 아닌가? 둘, 꼭 하고 싶은 일과 꼭 해야 할 일만 하는 게 혼자만 잘 살려는 건 아닌가? 셋, 삶과 공부와 글을 일치시킨다고 했는데 감당할 만한가? 이런 물음에 답하면서 3년을 지냈습니다. 그 답은 어떤 것일까요? 벌이를 내려놓았으니 덜 버는 건 분명합니다. 그 대신 더 사나? 왠지 허전한 날 묻습니다. 혹시 덜 사는 게 아닌가? 세상을 너무 등지지 않았나? 사는 게 너무 싱겁지 않나? 하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전에는 삶과 다투느라 고단했습니다. 지금은 삶을 즐깁니다. 나는 편안합니다. 즐겁습니다. 설레며 아침을 맞습니다. 그러면 더 사는 거겠지요. 꼭 하고 싶은 일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입니다.
벌거벗은 몸으로 세상을 떠도는 사람들이 있다. 속옷조차 입은 않은 완전 맨 몸이다. 털채 같은 것 하나만 달랑 들고 있다. 그것으로 조심조심 발치나 앉을 자리를 쓸곤 한다. 인도 자이나교 수도승이다. 그들은 어떠한 생명도 해치지 않겠다는 서원을 지킨다. 그것은 지독한 고행이다. 다큐멘터리 은 그들을 다뤘다. 여기에 나오는 한 수도승의 모습을 보자. ◆ 자이나교 수도승의 누드 행진 데비시 사가라지. 세속의 일을 모두 마치고 예순 아홉에 출가했다. 대지주이자 성공한 재력가로 아내와 두 아들을 뒀지만 모두 내려놓는다. 그게 벌써 10여 년 전이다. 지금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다. 오직 털채와 주전자뿐이다. 머무는 집착을 떨치기 위해 매일 떠난다. 맨몸 맨발로 하루 20여 km를 걷는다. 차를 타지 않는다. 밥은 하루 한 끼 아침만 먹는다. 물도 이때만 마신다. 그릇도 수저도 없어 그냥 서서 손으로 받아먹는다. 맛을 탐하지 않는다. 음식은 완전 채식이다. 그나마 감자 양파 마늘 생강 같은
나는 '하다'에 파묻혀 산다. '하다'의 파도로 철썩거린다. 'Doing'의 구름으로 떠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나는 일부러 일을 만들어 일에 빠진다. 그러면서 "어떻게 노냐, 어떻게 쉬냐, 어떻게 그냥 있냐"고 묻는다. "가만히 있으면 탈난다. 놀면 늙는다. 쉬면 병난다"고 겁낸다. 일중독에 빠져 일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일을 멈추면 어쩔 줄 모른다. 밀려드는 공복감! 뭘 해야 하나? 뭘 먹고 사나? 막막하다. 불안하다. 초조하다. 겁난다. 금단 증세다. 나는 이 고비를 넘지 못하고 다시 일로 돌아간다. 정신없이 분주한 일 속으로 숨는다. 소란한 Doing으로 두려움을 덮는다. Being에 뿌리 내린 Doing은 진실하다. 충만하다. 그것은 Being의 놀이다. Being의 자기표현이다. 하지만 Being에 뿌리 내리지 못한 Doing은 덧없다. 힘겹다. 삶은 중심을 잃고 표면에서 겉돈다. 다들 그렇게 산다. 이 시대의 삶은 'Being' 없는'
"시골에서 심심해서 어떻게 살아요?" "일도 없이 뭐하고 지내요?" 이렇게 묻는 분들이 많다. 나는 대답한다. "하나도 안 심심해요." "그냥 즐겁게 지내요." 그러면 대개 고개를 갸우뚱한다. 아마 이런 뜻이리라. 설마 그럴 리가. 어쩌면 그럴 수가. 이런 분들은 정신없이 바쁜 것보다 일없이 한가한 것이 더 괴롭다. 무얼 하는 것보다 그냥 있는 것이 더 난감하다. '하다' 보다 '있다', 'Doing' 보다 'Being'이 더 어렵다. 평생 일에 매어 일만 하면서 살다보니 일이 배어 일 없이 못산다. 그래서 나타나는 증상. 첫째,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둘째, 일이 없으면 어쩔 줄 모른다. 셋째, 이 일 저 일 자꾸 만든다. 넷째, 쉴 줄 모른다. 다섯째, 놀 줄 모른다. 노는 것도 일하는 식이다. 여섯째, 다른 사람도 다 그런 줄 안다. 한 마디로 일 중독증이다. 내가 보기에 이 여섯 가지 증상 가운데 두 가지 이상 걸리면 일중독이다. 나는 어떤가? 나도 그랬다. 일 중독증이
'tree hugger' 나무를 껴안는 사람이다. 나무와 가슴과 체온을 나누는 사람이다. 나무를 느끼고 아끼고 보듬는 사람이다. 나는 나무를 껴안아 보았나? 아니, 흉내만 냈다. 시늉만 했다. 식물학자 조안 말루프. 그녀의 별명이 'tree hugger'다. 그녀는 진짜 나무를 껴안는다. 나무와 가슴과 체온을 나눈다. 나무를 느끼고 아끼고 보듬는다. ◇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생태학을 가르치는 그녀의 연구실은 숲이다. 숲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그녀의 연구 대상이다. 그녀는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나무와 어떤 관계를 맺고 더불어 살아가는지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녀의 결론은 분명하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식물학자로서 그녀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가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한 그루를 벨 예정이라면 어쩌면 그 나무 위에서 자신의 꿈을 찾게 될 아이 하나와 최소한 다섯 종류의 곤충들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소나무를 더 많이 심는다면 아마 호랑가시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