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의 웰빙에세이
일상 속 건강과 행복을 위한 다양한 정보와 실천법을 쉽고 친근하게 전달합니다. 몸과 마음의 균형, 웰빙 트렌드, 자기관리 팁 등 삶의 질을 높이는 유익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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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두 남자가 있다. 한 남자는 행복한 남자, 또 한 남자는 불행한 남자다. 먼저 행복한 남자. 나이 89살에 싱글이 된 프랑스 할아버지다. 평생의 반려자를 사별한 마음이 짠하지만 사실 호시탐탐 바람을 피우며 살았다. 상처한 이후까지 남은 애인은 넷. 이 '돌싱' 할아버지는 선언한다. "드디어 나는 자유다!" 그는 열여섯살 때인 1927년 1월1일부터 평생 일기를 쓴다. 그가 아흔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바로 이틀 전인 2004년 4월24까지 77년간 쓴 일기는 총 60권. 그중 상처한 이후 4년간의 일기가 책으로 엮여 공개됐다. 그런데 정말 애인이 넷이다. 가까운 순서로 첫째 애인은 82살이고, 둘째 애인인 81살, 셋째 애인은 78살, 넷째 애인은 86살이다. 첫째 애인은 50년 이상 오래 사귀었는데 이 할머니가 너무 정열적이다. 그들의 잠자리는 요란하다. 어느 정도냐고? 다음은 그가 죽기 딱 1년 전인 92살에 쓴 야한 일기 한 토막. "무슨 바람이 불었나? 토요일 저녁부터
조용필은 21세기가 간절히 원해서 이 세상을 살고 있다고 노래했던가. 하지만 나는 무엇이 날 간절히 원하는지 모른다. 세상에 왜 왔는지 모른다. 아마 신의 뜻이리라. 우주의 뜻이리라. 누구나 얼떨결에 인생 무대에 선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다. 물론 그렇지 않다는 가르침도 있다. 불가에서 생은 내가 쌓은 업과 인연에 따라 윤회한다. 억만 겁의 윤회를 벗어나는 것, 그것이 해탈이다. 윤회에서 벗어나면 인생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을 수 있다. 이번 생의 고해(苦海)드라마가 너무 버겁다면 이 길을 잘 모색해보자. 생전에 그 방법을 다 깨우치지 못하면 어쩌나? 나는 또 원치 않는 드라마에 출연해야 하나? 다행히 사후에 한번 더 기회가 있다. 죽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냐고? 앞서 돌아가신 티베트 사자(死者)의 길안내가 있지 않은가. 그는 사후 49일 간의 여정을 생생히 전해준다. 이 저승길에 각자의 업에 따라 여러 가지 형상과 빛, 소리가 나타나는데, 이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해탈할 수 있는지 가르
인생은 드라마다. 한 편의 드라마다. 나도 지금 찍고 있다. 이 드라마에는 3가지 원칙이 있다. 원칙에 예외는 없다. 첫째, 강제 출연이다. 누구나 얼떨결에 무대에 선다. 울면서 선다. 자기 의지로 웃으면서 세상에 나온 사람은 없다. 둘째, 모두 죽는다. 안 죽는 사람은 없다. 다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하지만 언제 죽을지 모른다. 셋째, 생방송이다. 재방송은 없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어떤 장르인가? 일일연속극이다. 하루도 빼먹지 않는다. 쉬는 날이 없다. 밥 먹는 장면이 꼭 나온다. 전화하는 장면도 꼭 나온다. 매일 티격태격한다. 사랑하고 미워한다. 사건이 일어나고 갈등을 빚는다. 다투고 화해한다. 만나고 헤어진다. 울고 웃는다. 어제가 오늘같다. 시시하고 지루하다. 은근히 재미있다. 사람에 따라 훨씬 극적인 내용도 나온다. 어떤 사람은 한 시대를 풍미하는 대하드라마를 쓴다. 또 어떤 사람은 감동의 휴먼스토리를 만든다. 서스펜스, 스릴러, 멜로, 어드벤처, 액션, 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행복할 것이다. 그는 일을 놀이처럼 할 것이다. 일이 놀이고, 놀이가 일일 것이다. 일하는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할 것이다. 일하는 게 좋으니 일인지 놀이인지 구별하고, 잘했니 못했니 따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나에게 일은 일이고, 놀이는 놀이다. 즉 일과 놀이는 분리됐다. 일에서는 결과가 중요하고, 놀이에서는 재미가 중요하다. 어쨌든 일할 때 열심히 일하고, 놀 때 열심히 논다면 그것도 괜찮아 보인다. 거기에도 집중과 몰두의 기쁨이 있으니까. 그런데 솔직히 그것도 아니다. 일할 때 열심히 일하지 않고, 놀 때 열심히 놀지 않는다. 일은 하는 둥 마는 둥, 놀이는 노는 둥 마는 둥 한다. 일할 때 노는 것을 생각하고, 놀 때 일하는 것을 생각한다. 일과 놀이의 충돌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양반이다. 더 안 좋은 경우도 있다. 일하고 싶은데 할 일이 없는 사람, 놀고 싶은데 놀 시간이 없는 사람, 이런 사람은 불행하다. 일과 놀이의 실종
당신은 개보다 행복한가? 뭐라, 개보다? 너무 불쾌하게 생각하지 마시라. 혹시 미국의 저명한 철학교수가 던진 질문이라면 조금 용서가 되려나. 매트 와인스타인이라는 유명 경영컨설턴트와 루크 바버라는 대학 철학과 교수는 정말로 이 질문을 던진다. 답은 어떻게 나왔을까. 아마 당신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즉, 개가 더 행복하다. 개들은 사실 이 질문에 전혀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그냥 행복하니까. 어떻게 행복한지 그 내용이 책 한 권이니 요령껏 10가지만 간추려 보겠다. 1)개들은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 있지 않는다. 불만스런 일은 금방 잊어버린다. 반면 우리는 행복을 금방 잊어버린다. 2)개들은 변화에 잘 적응한다. 3)개들은 애정을 숨김없이 표현한다. 4)개들은 놀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지녔다. 일을 놀이로 바꿀 줄 안다. 5)개들은 열린 마음으로 인사를 나눈다. 그들의 환영 세레모니는 감동적이다. 6)개들은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듣는다. 7)개들은 쉽게 용서한다. 8)개
아무래도 너무 힘주고 산다. 목 뻣뻣이 세우고, 배에 힘준다. 머리 열나게 돌리고, 시선 째려 본다. 이 악물고, 주먹 불끈 쥔다. 험한 세상에 생존경쟁 치열하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저녁이 되면 머리 쥐난다. 맥 풀리고 가슴 답답하다. 뒷목, 어깨, 허리, 아랫배 모두 뻣뻣하다. 몸이 굳어 긴장도 잘 안 풀린다. 긴장을 풀지 않으면 병이 된다. 암을 부른다. 그러니 힘 빼는 연습을 하자. 항상 힘주고 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힘 빼기 왕도, 잘 자자. 누구나 하루에 4분의1은 힘 빼고 산다. 몸에 힘주고 자는 사람은 없다. 꿈자리 뒤숭숭하면 모를까 잘 때 힘들이지 않는다. 이때야 말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무념, 무상, 무위, 무아다. 너무 바빠 잠자는 것도 아깝다고? 최단 시간에 최대 수면 효과를 거둬야 한다고? 어찌 그런 험한 말씀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있어야 뭐든 할 수 있다. 잠이 삶의 배경이다. 그러니 잠자는 시간은 소중하다. 잠자는 것은 '생명공장'에
넥타이 왜 매나? 20년 넘게 넥타이를 매왔지만 나는 지금도 이유를 모른다. 이유도 모른 채 그 오랜 날들을 그냥 따라했다는 게 이상하다. 하지만 무작정 따라하는 게 넥타이뿐이랴. 먹고, 놀고, 일하는 일상이 거의 매뉴얼대로 따라하기다. 매일 면도하고, 머리 빗고, 양복을 차려입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남들 모양으로 따라하는 것이다. 그래도 면도하고 머리 빗고 양복을 입는 것은 실용적인 면이 있다고 치자. 그러나 넥타이만큼은 도무지 그 필요를 모르겠다. 혹시 급하면 손수건으로 쓸까 싶은데 아직까지 그런 적이 없다. 유사시 허리띠로 쓸까 싶은데 그런 경우도 없었다. 한겨울 바람막이는 어떨까. 그거야 목도리를 두를 일이다. 가끔 진한 술자리에서 넥타이를 풀어 머리띠로 쓰는 사람을 보는데 내가 그런 적은 없다. 그러니 넥타이는 실용적인 면에서 정말 쓸데 없는 물건이다. 쓸데 없는 정도가 아니라 매우 해로운 물건이다. 목줄을 단단히 매 숨통을 죄는 것이 몸에 좋을 리 없다. 이 더운 여름날 다
노무현의 죽음을 생각한다. 그의 죽음에 가슴 아프다. 슬프고, 안타깝고, 미안하다. 슬픈 것은 그를 잃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의 아픔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미안한 것은 그의 죽음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이쯤 말하면 당장 '노빠'라는 딱지가 붙을지 모르겠다. "야단법석 떨지 말라"고 나무라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나는 화가 난다. 분노와 원망의 감정이 솟는다. 그러나 그러지 말자. 대신 노무현의 죽음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그는 두번 죽었다. 첫번째는 정치적 타살이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그랬으면 했다. 하지만 먼지 같은 게 난 모양이다. 그걸 가지고 그를 궁지로 몰았다. 나는 먼지가 많아 그에게 돌을 던지지 못하겠다. 하지만 검찰의 칼날은 시위를 떠난 화살이었다. 과녁을 뚫을 때까지 아무도 멈출 수 없었다.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두번째는 자살이다. 그의 자살도 정치적 승부수라고
마음이 무엇인지 그 답이 쉽지는 않으리라. 다들 "내 마음 나도 모른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바로 답을 구하지 말고 애둘러 가보자. 잘 살펴보면 힌트가 많다. 우선 가장 아름다운 비유, 마음은 호수다. 마음은 호수여서 잔잔하기도 하고, 물결이 일기도 한다. 맑기도 하고, 탁하기도 한다. 맑고 잔잔한 호수에 달이 비치듯 맑고 잔잔한 마음에 지혜의 달이 뜬다. 마음을 가라앉히면 마음에 가렸던 내가 드러난다. 둘째, 마음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호수와 비슷한 비유다. 거울이 맑아야 나를 제대로 비출 수 있다. 거울이 더러우면 나도 더러워진다. 거울이 울퉁불퉁하면 나는 기형이 된다. 마음이 더러우면 나도 더럽고, 마음이 비뚤면 나도 비뚤어진다. 셋째, 마음은 바다다. 바다처럼 넓고 깊다. 호수에 비할 바 아니다. 위에서는 항상 파도가 친다. 때로 격랑이 인다. 그러나 깊은 바닷속은 언제나 평온하다. 마음이 얕은 사람은 파도가 된다. 이리저리 세파에 밀려다니면서 부서지고 또 부서진다.
삶의 의미란 스스로 찾아내고, 스스로 부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의미가 없고, 부여할 의미도 없다면 진짜 살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그래도 살라고 우기면 그건 억지 아닌가? 탤런트 최진실의 죽음에 쇼크를 받고 몇 달 동안 그녀가 살아야 할 삶의 이유를 찾아 고민고민하는데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솔직히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왜 사나? 내 마음 깊은 곳에도 항상 삶의 허무가 자리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어느 날 심각하게 불거지면 나는 나를 다스릴 수 있을까? 지금도 나는 답이 없다. 다만 최근에 한가지 깨달은 것은 내가 최진실의 자살을 말린다며 이런저런 설득의 논리만 찾았지 그녀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사실은 놓쳤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녀의 자살을 말리려면 그녀의 얘기부터 들어야 한다. 진심으로 들어야 한다. 그래서 그녀가 마음이 열고 고민을 다 털어놓았다면 그것만으로 크게 위로받았을 것이다. 그것으로 인생의 짐을 덜고, 죽음의 갑작스런 충
한때 이런 결심을 했다. '내가 어떤 계기로 절망에 빠져 삶의 의욕을 모두 잃었을 때, '죽고 싶다' '살기 싫다' '삶의 의미가 전혀 없다' '죽어버려야겠다' 이런 마음뿐이어서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하게 될 때, 그래서 정말 자살을 하려고 할 때, 그때 나는 절대 자살하지 말자. 대신 모든 것을 다 떨쳐버리고 적도의 어느 원시 바다로 가자. 죽을 용기가 있는데 어찌 다 버리고 떠날 용기가 없겠는가. 아무도 모르는 외딴 바다에서 무조건 살아보자. 항상 내 꿈의 낙원 같은, 다다를 수 없는 천국 같은 그 깊고 푸른 산호바다에서 잊혀진 사람으로, 나름 행복하든 행복하지 않든 살아보자. 아마 죽지 않고 살기로 한 것을 다행이라 여기고 거기서 행복을 찾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런 결심을 해두었으니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살이란 것은 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인생사 어찌 풀릴지 장담할 수 없겠지만 나는 분명 자살과는 인연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더구나 요즘들어 나는 '삶이란 살 만한 것이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야생초 편지' 황대권 선생의 말씀처럼 민들레는 민들레여서 예쁘고, 장미는 장미여서 예쁘다. 민들레가 되려는 장미가 없고, 장미가 되려는 민들레가 없을 것이다. 민들레가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듯 장미는 민들레를 만만히 보지 않을 것이다. 각자 알아서 꽃을 피우고 어우러지면 그만이니까. 서로 분별하고, 겨루고, 가격을 매기는 일 따위를 그들은 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사람 만이 장미를 꽃 중의 꽃이니, 꽃의 여왕이니 하면서 우열을 가르고, 값어치를 따질 뿐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민들레가 분수를 아니 다행"이라고 하겠지. 또 누군가는 "장미처럼 될 생각은 안하고 적당주의와 패배주의에 빠져 있다"고 꾸짖을 것이다. 아니면 조금 더 창의적으로 '금딱지 같은 민들레도 잘 꾸미면 돈이 되지 않을까' 궁리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꽃집을 하던 동생이 어느 날 백운호숫가 한쪽에 늘어선 야생 부들을 보더니 깜짝 놀란다. "어머, 저거 비싼 건데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