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의 웰빙에세이
일상 속 건강과 행복을 위한 다양한 정보와 실천법을 쉽고 친근하게 전달합니다. 몸과 마음의 균형, 웰빙 트렌드, 자기관리 팁 등 삶의 질을 높이는 유익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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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 자매. 얼굴도 같고 성격도 같은 둘은 같은 집에서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생각을 하며 늘 붙어 다니다가 또 한날한시에 결혼을 한다. 그런데 하나같은 두 운명은 여기서부터 엇갈린다. 언니는 주정뱅이 남편에 팔자가 꼬여 시장 통에서 아등바등 산다. 동생은 반듯하게 성공한 남편에 팔자가 피어 하릴없이 우아하게 산다. 양귀자의 소설 은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로 전개된다. 화자는 언니의 딸 안진진이다. 스물다섯 그녀가 보기에 세상은 온통 모순투성이다. 엄마와 이모의 인생부터 도대체 말이 안 된다. 엄마는 잘못한 것도 없는 데 지지리 궁상이고, 이모는 잘한 것도 없는 데 날마다 봄날이다. 덩달아 자기 인생까지 그늘이 지어 고달프기 짝이 없다. 그녀는 이제 온 인생을 걸고 그 이유를 탐구하기로 마음먹는다. 엄마와 이모를 탐구하고, 아버지와 이모부를 탐구하고, 불량배 남동생과 범생 사촌
“세상 사람들의 98퍼센트가 중요하지 않은 일에 시간의 98퍼센트를 소비하고 있다.” 나는 어느 쪽인가? 삶을 낭비하는 98% 쪽인가? 나머지 2% 쪽인가? 닐 도날드 월시는 “오늘날 지구상에는 필사적으로 어딘가에 도달하고 싶어 하지만 실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수십 억 명이나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하고 있는 여행의 특성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며 원하는 행선지에 도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더욱 오리무중”이라고 한다. 그가 당부한다.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98%를 걷어내고 가장 중요한 2%를 발견하라. 영혼에 눈 뜨고 그의 메시지를 들어라. 내 안에서 나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끄는 것들을 찾아서 하라. 삶을 낭비하는 사람이 98%가 아니라 99%라는 분도 있다. “누군가가 먼 별들에서 우리의 지구와 그 위에 거주하고 있는 불안한 동물을 관찰한다면, 그는 아름다운 거처를 가진 존경할 만한 인물을 단 한 명만 발견하고, 아
“인간은 행복을 원하기 때문에 불행하다." 그럴 리가? 그렇다면 행복을 바라지도 말라는 말이냐? 그런 말이다. 인도의 명상가 오쇼 라즈니쉬는 "인간은 행복해지기를 원하고, 그럼으로써 불행을 창조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니 "불행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행복에 대한 욕구에서도 벗어나라"고 당부한다. "행복을 바라는 순간에 그대는 현재로부터 떠났다. 그대는 존재로부터 떠났다. 그 어디에도 없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로 옮겨가 버렸다. 그대는 꿈속으로 옮겨갔다. 그런데 꿈은 절대로 충족되지 않는다. 행복에 대한 욕구는 꿈이다. 꿈은 실재가 아니다. 꿈을 통해서는 아무도 실재에 도달할 수 없다. 그대는 기차를 잘못 탔다." 나는 '행복열차'를 탔다. 그런데 엉뚱한 곳으로 달려간다. 행복은 안보이고 불행만 보인다. 혹시 잘못 탔나? 내려서 다시 탄다. 잘 보고 틀림없는 행복열차를 탄다. 그런데 이번에도 엉뚱한 곳으로 달려간다. 행복은 꿈처럼 아득하고 불행만 다가온다. 또 잘못 탔나? 할 수
“논리는 창녀나 변호사 같다. 돈만 낸다면 누구와도 함께 갈 수 있다." 요즘 변호사들이 정말 그렇다. 돈만 내면 뭐든 다 변호해준다. 그들의 논리에 없던 죄도 생겨나고 있던 죄도 사라진다. 그들이야말로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마술사들이다. 그들은 오로지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 그들은 장사꾼이다. 법의 논리를 파는 장사꾼이다. 그들은 돈의 무게로 법의 정의를 잰다. 그들이 들고 있는 저울의 한쪽 편엔 돈뭉치가 올라간다. 돈다발만 두툼하면 정의의 논리는 그쪽에 착 달라붙는다. 그래서 오쇼 라즈니쉬는 "논리는 창녀나 변호사 같다"고 한다. "그것은 자기편에도 붙지만 적에게도 돌아간다"고 한다. 하여 논리는 얼마나 천박한가? 믿을 수 없는 자여, 그대 이름은 논리! "논리적인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인간이다. 삶이 논리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랑은 비논리적이다. 삶과 인생의 아주 적은 부분만이, 표면의 피상적인 부분만이 논리적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것임을. 내 사랑은 '나만 바라봐'다. "나는 너만 바라봐. 그러니 너도 나만 바라봐!" 너와 나는 다정하게 마주본다. 뜨겁게 마주한다. 내 사랑은 이러다가 망가진다. 우리는 마주보다 돌아선다. 째려보다 등 돌린다. 더 이상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생텍쥐페리는 ‘사랑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바라보는 것’이라 한다. 나는 이런 사랑을 잘 모른다. 당신은 어떤가? 나는 마주보는 사랑에만 익숙하다. 너와 나의 만남은 언제나 마주보기다. 우리는 마주보고 속삭인다. 내가 말하면 너는 답한다. 네가 말하면 나는 답한다. 우리 사랑은 대화형이다. 수다형이다. 아무 말이 없으면 문제가 생긴 것이다. 말 없는 전쟁! 우리는 침묵을 견딜 수 없다. 우리는 떨어져 있어도 마주본다. 스마트폰으로 마주본다. 귀와 입에 대고 연결한다. 손바닥에 놓고 접속한다. 전화가 오면
비오는 바람에 눈 오는 바람에 외로운 바람에 쓸쓸한 바람에 이 바람에를 잘 활용하는 사람은 멋진 인생을 살고 잘못 하는 사람은 폐가 망신한다 나는 '바람에'를 어떻게 활용하나? 나는 주로 '때문에'로 활용한다. 비 때문에, 눈 때문에, 외로움 때문에, 쓸쓸함 때문에…. 그 때문에 폐가 망신한다. 이 '바람에'를 '덕분에'로 활용하기로 하자. 비 오는 덕분에, 눈 오는 덕분에, 외로운 덕분에, 쓸쓸한 덕분에…. 그 덕분에 멋진 인생을 살리라. 아래 세 가지 경우가 있다. 바람 부는 바람에 바람 잡는 바람에 바람 피는 바람에 이 '바람에'에도 다 '덕분에'를 쓸 수 있을까? 글쎄, 첫 번째는 가능하고, 두 번째는 헷갈리고, 세 번째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멋진 인생을 살려면 두 번째에도 웬만하면 '덕분에'를 써야 하리라. 세 번째에서도 무언가 '덕분에'를 찾아내야 하리라. 그것이 쓰디쓴 배반이든 이별이든 인내든 용서든 결국은 덕분에 덕분에 덕분에! 하여 바람아 불어라~ 그대는 바람
인생이란 당신이 다른 계획을 세우느라 분주한 동안에 슬그머니 일어나는 일이다. Life is what happens to you while you're busy making other plans. 존 레논이 노래한다.란 곡에서다. 'Darling Boy'라 했듯이 다섯 살 난 아들, 숀을 위해 손수 지은 노래다. 다음은 이 가사가 나오는 대목. Out on the ocean sailing away I can hardly wait To see you come of age But I guess we'll both Just have to be patient 'Cause it's a long way to go A hard row to hoe Yes, it's a long way to go But in the meantime Before you cross the street Take my hand Life is what happens to
 옳은 일, 그른 일이라는 생각 저 너머에 들판이 있네. 우리 거기서 만나세. 13세기 페르시아 시인 루미의 초대다. 그래 우리 가자. 저 들판으로. 한 점 걸림 없는 자유의 들판으로. 어떻게 가나? 여기 길잡이가 있다. 마셜 로젠버그가 고안한 비폭력 대화법이다. 그럼 간다! 먼저 옳은 일이라는 생각을 '기린'이라고 하자. 기린은 육지 동물 중에서 가장 큰 심장을 가졌다. 그 무게가 17Kg이나 된다. 이렇게 큰 가슴으로 상대를 품고, 긴 목으로 주변 사정을 살핀다. 기린은 사랑과 공감을 나누는 비폭력 대화의 상징이다. 그른 일이라는 생각은 '자칼'이라고 하자. 자칼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상대를 공격한다. 네 잘못을 따지면서 으르렁거리고 할퀴고 물어뜯는다. 자칼은 상처뿐인 폭력 대화의 상징이다. 내 안에 기린과 자칼이 있다. 당신 안에도 기린과 자칼이 있다. 이제 우리는 기린과 자칼을 넘어 저 너른 들판으로 가야 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화살을 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화살이 날아온다. 나를 꿰뚫으려는 분노의 화살, 증오의 화살, 비난의 화살, 원망의 화살, 시기의 화살, 질투의 화살, 폭력의 화살…. 그 화살들이 내 앞에서 꽃으로 떨어진다. 이해의 꽃, 자비의 꽃, 사랑의 꽃, 용서의 꽃, 화해의 꽃, 감사의 꽃, 평화의 꽃…. 깨달음의 문에 이른 붓다에게 유혹자 마라가 수천 개의 화살을 쏟아 붓는다. 마왕의 마지막 공격이다. 하지만 그 화살들은 붓다 앞에서 꽃으로 낙화한다. 꽃비로 내린다. 강렬하고 아름다운 이미지! 깊은 명상에 든 붓다의 마음 안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으리라. 틱낫한 스님은 "우리도 화살을 꽃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나를 겨냥해 날아오는 폭력적인 말과 행동을 받아들여 꽃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이해와 자비의 힘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한다. 명심하자. 이해와 자비의 힘으로다. 스님에 따르면 자비는 언제나 이해에서 태어나고, 이해는 언제나 깊이 들여다보는 데서
부모가, 자녀가, 친구가, 이웃이,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가, 때로는 나의 적이 나의 믿음에 도전할 때, ​딱 하나만 스스로에게 묻자. "혹시 내가 착각하는 거 아니야?" 맞다. 착각하는 거다. 모든 믿음은 착각이다. 다 내 식으로 옳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 옳은지 나는 모른다. 정말 옳은지 알면 믿을 리 없다. 진실은 그냥 아는 거다. 나는 사과가 빨갛다고 믿지 않는다. 그냥 빨간 지 안다. 나는 하늘이 파랗다고 믿지 않는다. 그냥 파란지 안다. 믿는다는 것은 내가 모른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오쇼는 "믿음은 무지의 일부"라고 한다. "뭔가를 믿는다는 것은 그대가 알지도 못하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누구나 믿는 건 자유다. 하지만 믿음이 곧 옮음은 아니다. 둘을 같다고 여기면 곤란하다. 둘을 같다고 우기면 더 곤란하다. 그건 착각 속에서 살고, 착각 위에서 다투는 것이다. 심리학자인 허태균 교수는 "내가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을
"그대가 도무지 미소 짓기 어려운 사람에게 하루에 다섯 번 미소 짓도록 애쓰십시오." 마더 테레사. 가난한 자, 배고픈 자, 병든 자, 버림받은 자에게서 그리스도를 보고 가난한 그리스도, 배고픈 그리스도, 병든 그리스도, 버림받은 그리스도를 보살피고 섬긴 분. 이 분의 말씀은 ​쉽다. 구체적이다. 실천적이다. 한 마디로 줄이면 이것이다. 기도하고 사랑하고 봉사하라!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가 아니다. '기도하고 사랑하고 봉사하라'다. 테레사 수녀가 당신의 명함에 새겼던 글로 옮기면 이것이다. '침묵의 열매는 기도, 기도의 열매는 사랑, 사랑의 열매는 섬김, 섬김의 열매는 평화'. 이제 기승전결이 더 분명해졌다. 침묵함으로써 기도할 수 있고, 기도함으로써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함으로써 섬길 수 있고, 섬김으로써 평화로울 수 있다! 하루에 다섯 번 미소 짓기 어려운 사람에게 미소 짓기. 이건 섬김에 속한다. 쉽고 구체적인 당부지만 실천은 어렵다. 섬김을 하려면 침묵으로써
우리는 노동자를 불렀는데 사람들이 왔다. - 막스 프리쉬 영화 는 이런 말로 막을 내린다. 어찌 안 그럴까. 노동자도 다 인간인데. 그걸 자꾸 까먹으니까 노동자를 불렀는데 사람들이 오는 일이 생긴다. 1960년대 전후 재건 사업에 경기가 후근 달아오른 독일이 대대적인 노동자 수입에 나선다. 영화는 당시 독일로 일하러 간 한 터키 이민자의 가족사를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있다. 우리의 주인공 후세인 일마즈. 낯선 나라 낯선 거리 낯선 사람들 속에서 빡세게 산 그는 이제 인생 황혼기다. 이주한 지 45년이 흘러 독일 시민권을 얻었고, 아들 셋 딸 하나에 손자 손녀까지 일가를 이뤘다. 그런 그가 갑자기 고향 마을에 집을 샀다며 다 같이 가족 여행을 가자고 한다. 독일 사람이 다 된 자식들은 구시렁거린다. 막내 손자 첸크는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묻는다. "우린 어느 나라 사람이야?" 엄마와 아빠가 동시에 답한다. 독일인 엄마는 "독일!" 터키인 아빠는 "터키!" 첸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