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교도소 역사의 뒤안길로…"아픔 모두 가져가길"

영등포교도소 역사의 뒤안길로…"아픔 모두 가져가길"

최동수 기자
2014.04.03 17:57

[르포]철거 직전 시민에게 개방한 영등포교도소…김근태·김지하·이근안·전경환 등 거쳐가

3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촉동 옛 영등포교도소에서 '굿바이! 영등포교도소' 주민 개방 행사가 열렸다. 사진은 이날 일반에 공개된 독방 모습. 

지난 1949년 부천형무소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던 영등포교도소에는 김근태 전 민주당 고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김지하 시인,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씨, 고문전문가 이근안 씨 등이 수감생활을 한 곳으로 65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2014.4.3/사진=뉴스1
3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촉동 옛 영등포교도소에서 '굿바이! 영등포교도소' 주민 개방 행사가 열렸다. 사진은 이날 일반에 공개된 독방 모습. 지난 1949년 부천형무소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던 영등포교도소에는 김근태 전 민주당 고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김지하 시인,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씨, 고문전문가 이근안 씨 등이 수감생활을 한 곳으로 65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2014.4.3/사진=뉴스1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3일 오후 찾아간 서울 구로구 영등포교도소. 이날 구로구청은 철거를 앞두고 시민들에게 교도소를 개방했다. 군데군데 출입금지 테이프를 두른 구치소를 지나 교도소로 들어가는 입구에 들어섰다.

무엇을 감추려는 것일까. 교도소는 7m 정도 되는 출입구 위로 10m 높이의 시멘트 장벽에 둘러싸여 있었다.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해 온 교도소는 수감자들의 회한과 고통이 스며 있는 듯 이날 날씨만큼이나 을씨년스러웠다.

교도소 철문을 통과해 50m쯤 안으로 들어가자 독방이 보였다. 성인 남성 한명이 겨우 들어가 누울 정도의 크기. 독방 뒤쪽에 있는 60cm 높이의 나무판자가 화장실과 방을 나누는 유일한 기준이었다. 창문의 빛은 방안을 환히 비추지 못했다.

고(故) 김근태 전 고문은 이곳에서 '민주주의'를 외쳤고. 김지하 시인은 독재타도를 노래했다.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은 이 곳에서 한국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듣고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전달했다. '통일운동의 대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도 이곳을 거쳤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 역시 이 교도소에 머물렀다. 이 경감은 고 김근태 전 고문을 직접 물고문·전기고문했던 장본인이다. 때마침 이날은 김 전 고문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에 대한 첫 재심 공판이 열린 날이기도 하다. 5공 독재를 주도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도 이 곳을 거쳤고, 최근에는 신정아씨도 수감됐었다.

온갖 쓰레기가 널부러져 있는 독방에는 군데군데 수감자들의 흔적도 남아 있었다. 벽에는 '바를 정(正)'자를 새겨져 있었고, '나 자신을 뒤돌아보며 신중하게 살아가길'이라는 문구도 보였다.

독방을 지켜보던 시민 김모씨(64)는 "80년대 중반쯤 여기 구치소에 왔었는데 구치소는 그래도 살 만했네"라며 "그 때 여기 왔던 사람들은 얼마나 고생했을까. 가슴이 먹먹하다"라며 눈물을 훔쳤다.

영등포교도소는 65년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영등포교도소는 제1공화국 수립 직후인 1949년 12월 경기 부천 소사읍 고척리(현 서울 구로구 고척동)에 부천형무소라는 이름으로 개청했다.

해당 지역이 영등포구로 편입되며 1968년 영등포교도소로 개명됐다. 선거때마다 이전공약이 나오던 영등포 교도소는 2011년 구로구 천왕동으로 이전, 명칭이 서울 남부교도소로 변경됐다. 향후 영등포교도소와 일대 주택들은 2015년까지 모두 철거되고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독방을 지나자 다인실이 나타났다. 10명이 정원이지만 다인실 앞에 있는 수감자들 이름표는 16개까지 꽂을 수 있었다. 수감자들이 많았을 때는 4평 남짓한 이 방에 16명이 생활했다고 구로구 관계자는 전했다. 화장실과 창문도 단 한 개 뿐이었다.

수감자들의 끼니를 만드는 취사장과 이발소, 작업장도 보였다. 수감자들이 잠시나마 자유시간을 즐기던 운동장에는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운동장을 지나자 수감자와 수감자 가족들이 만날 수 있는 접견실이 나왔다. 약 10개 정도 되는 접견실을 두고 창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마이크를 누르는 자재들은 땅에 버려져 있었고 한 접견실은 온 유리창에 금이 가 있었다.

한 바퀴를 돌고 나오자 교도소 문 앞에서 만난 이모씨(67)는 "85년인가 86년인가 싸움을 하다가 잡혀온 적이 있다"라며 "그 때 사람 대접도 못 받았는데 그 때 아픔이 지금까지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없어진다길래 30년만에 다시 와봤다"며 "다시는 오기 싫다"며 자리를 떴다. 구로구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약 3만명의 시민들이 영등포 교도소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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